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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폭력과 아편의 승리, 어둠의 휴일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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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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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고문 자행하고 아편 불러들인 무자헤딘 사령관들의 ‘승전 기념일’

▣ 카불·낭가르하르·페샤와르=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소련 점령보다 괴로웠고, 탈레반 통치보다 잔인했다.”

1992년 4월28일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 무력으로 입성한 무자헤딘은 더 이상 대소 항쟁의 해방군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 4년 반 동안 종파와 인종으로 갈린 무장 권력투쟁을 벌여 카불을 쑥대밭으로 만든 장본인들이다. 그리고 15년이 흘렀다. 팡파르가 울려퍼지고, 군 퍼레이드가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날은 무자헤딘 승전 기념일이다. 납치, 강간, 절도 그리고 머리에 못을 박는 끔찍한 고문을 자행하던 사령관들을 기억하는 카불 시민들에게 이날은 ‘블랙 홀리데이’다.

멀리 우람한 산맥이 바라다 보이는 아프가니스탄 동부 낭가르하르의 들판에서 아편 박멸작업이 한창이다. 가난한 아프간 농민에게 아편재배는 때로 유일한 생계수단이다.


전범재판에 세워도 시원찮은 그들은 ‘민주화된’ 아프간에서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장관이고, 국회의원이고, 지역 군벌들이다. 국내외 인권단체들이 전범 기록을 꺼내들 때면 ‘대소 항쟁’을 들이대며 입 닥치라고 협박하는 ‘성스러운 전사’들이다. 사령관들의 컴백.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게 다시 아편을 불러들였다. 국제사회가 퍼부어댄 돈이 사령관들의 주머니와 배를 채우는 사이, 그때나 지금이나 배고픈 농민들은 아편 재배로 몰리고 있다. ‘아편 박멸’ 작업으로 이따금 쑥대밭이 되기도 하지만 아편이 박멸될 것 같진 않다. 가난한 밭을 ‘골라’ 박멸하고, 사령관들의 밥줄은 건드리지 않는 게 단속반의 비공식 규율이기 때문이다. 사령관들을 권좌에 다시 불러들인 ‘해방전쟁’ 5년 반. 그 전쟁이 낳은 사생아 ‘아프간 마약대국’은 이제 곧 여섯 살이 된다.

한 아프간 농부가 수확한 양귀비 열매에서 채취한 붉으스름한 생아편 즙을 들어 보이고 있다. 농민들은 수확기에 이렇게 긁어 모은 생아편을 밀수조직에 넘겨 얻은 수익으로 한해살이를 한다.

지난 4월29일 아프간 동부 카니켈의 쉬르겔 마을에 들이닥친 미군의 공격으로 아버지를 잃은 아지즈 굴(8)은 여전히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도 양귀비 꽃이 곱게 피어 있었다.

4월29일 미군의 공격으로 6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은 쉬르겔 마을에선 ‘어린이 부상자’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한 어린이가 채 아물지 않은 그날의 상처를 내보이고 있다.

아편 박멸작업은 아프간에서 ‘공무’다. 10여 명의 일꾼들이 작업에 나선 현장에도 중무장한 경찰 병력이 어김없이 동원된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이 지난 4월28일 무자헤딘 승전 15주년 기념일을 맞아 수도 카불에서 군 수뇌부와 함께 퍼레이드에 나섰다. 아프간 민중을 옥죄어온 군벌들은 ‘성스러운 전사’로 둔갑해 이날 카르자이 대통령에게 훈장을 받았다.

외국 군대의 지원 없인 수도 카불의 치안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아프간 군대는 무자헤딘 승전 기념일을 경축하기 위해 군악대까지 동원하는 ‘대범함’을 선보였다.

아프간 동부 낭가르하르주 주도인 잘랄라바드의 시립병원 아편중독자 치료병동에서 입원 치료 중인 아편중독 환자들. 이들 대부분은 긴 내전 기간동안 난민으로 떠돌면서 아편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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