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받아들여야 하는 고향과의 이별,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맨션의 삶’
▣ 평택=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 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기사 마감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던 4월13일, 시인 서수찬씨가 등기로 보내온 우편물 하나를 받아들게 됐다. <시금치 학교>라고 적힌 그의 시집이 들어 있었다. 뜨겁던 지난해 봄과 여름 내내 그는 미군기지 확장반대 운동이 한창이던 평택 대추리의 담벼락에 마을 사람들의 사연을 담은 시편을 적으며 울었다. 그는 대추리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 앞에서 울먹이는 방효태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철조망에 갖힌 대추리의 285만 평 너른 들판’을 떠올리고, 김택균 사무국장의 듬직한 모습에서 ‘홀로 남아 무너져가는 집을 버티고 선 서까래’를 기억해낸다. 그의 시들은 대추리의 담벼락과 함께 무너졌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갔다. 주민들이 떠난 대추리의 빈집 마당 한구석에 개나리며 목련이 흐드러졌다. 대추리에서 밀려난 주민들은 팽성읍 송화리 맨션에 새 둥지를 틀었다. 할머니들은 “새 집이 익숙지 않다”고 말했다. 맨션에는 나른한 오후의 심심함을 달래줄 텃밭도 없고, 계단은 오르내리기 힘들었다. 노인정은 맨션 105동 101호로 정해졌다. 그 위에 방승률(71) 할아버지네가 살고 그 윗집은 다시 송재국(70) 할아버지네다. 108동 101호에 사는 이순희 할머니는 “베란다에 나가는 창문을 열 줄 몰라 빨래를 며칠 동안 널지 못했다”고 말했다.
황사가 잠시 주춤하던 4월7일 할머니들은 다시 황새울 들판을 찾았다. 마을에서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며칠 만에 다시 모인 대추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사람들은 곡식을 내다 팔 때 썼던 됫박,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 낱알, 성모상, 옷, 손때 묻은 도장 등을 꺼내 항아리에 담아 운동장에 묻었다. 신종원 대추리 이장은 “꼭 다시 돌아와 항아리를 캐겠다”고 말하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지난 4년 동안 이어진 고통스런 투쟁을 겪으며 그는 많이 좌절했고 많이 울어야 했는데, 대한민국이 그에게, 또 대추리 주민들에게 너무 큰 짐을 지운 게 아닌가 싶은 생각에 늘 죄스러웠다. “그 사람이 논둑이 되어 있네요/ 표시도 안 나는 자리에/ 그는 늘 있습니다” 서수찬씨가 신종원 이장을 지켜보며 쓴 시구다. 주민들은 고향과의 이별을 끝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타임캡슐에 담긴 향나무 판에 하얀 머리가 고운 김월순 할머니는 “대추리를 떠나기 싫다”고 썼고, 송재국 아저씨는 “황새울 들판이여 영원하시오. 우리 모두는 꼭 돌아오리니. 사랑한다”고 적었다. 주민들과 2년 넘게 동고동락했던 지킴이들은 4월9일 대추리를 떠났다. 그들은 대추리에서 대한민국이 저지른 만행을 고발하기 위해 걸어서 서울로 향했다. 마을은 이제 국방부의 포클레인에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주민들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우리는 떳떳하게 잠잘 수 있을까.
▣ 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기사 마감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던 4월13일, 시인 서수찬씨가 등기로 보내온 우편물 하나를 받아들게 됐다. <시금치 학교>라고 적힌 그의 시집이 들어 있었다. 뜨겁던 지난해 봄과 여름 내내 그는 미군기지 확장반대 운동이 한창이던 평택 대추리의 담벼락에 마을 사람들의 사연을 담은 시편을 적으며 울었다. 그는 대추리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 앞에서 울먹이는 방효태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철조망에 갖힌 대추리의 285만 평 너른 들판’을 떠올리고, 김택균 사무국장의 듬직한 모습에서 ‘홀로 남아 무너져가는 집을 버티고 선 서까래’를 기억해낸다. 그의 시들은 대추리의 담벼락과 함께 무너졌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갔다. 주민들이 떠난 대추리의 빈집 마당 한구석에 개나리며 목련이 흐드러졌다. 대추리에서 밀려난 주민들은 팽성읍 송화리 맨션에 새 둥지를 틀었다. 할머니들은 “새 집이 익숙지 않다”고 말했다. 맨션에는 나른한 오후의 심심함을 달래줄 텃밭도 없고, 계단은 오르내리기 힘들었다. 노인정은 맨션 105동 101호로 정해졌다. 그 위에 방승률(71) 할아버지네가 살고 그 윗집은 다시 송재국(70) 할아버지네다. 108동 101호에 사는 이순희 할머니는 “베란다에 나가는 창문을 열 줄 몰라 빨래를 며칠 동안 널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추초등학교 운동장에 파놓은 깊이 150cm 정도의 직사각형 구덩이에 주민들의 소중한 물건을 담은 항아리와 소원을 담은 향나무 판을 넣고 묻었다.
황사가 잠시 주춤하던 4월7일 할머니들은 다시 황새울 들판을 찾았다. 마을에서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며칠 만에 다시 모인 대추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사람들은 곡식을 내다 팔 때 썼던 됫박,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 낱알, 성모상, 옷, 손때 묻은 도장 등을 꺼내 항아리에 담아 운동장에 묻었다. 신종원 대추리 이장은 “꼭 다시 돌아와 항아리를 캐겠다”고 말하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지난 4년 동안 이어진 고통스런 투쟁을 겪으며 그는 많이 좌절했고 많이 울어야 했는데, 대한민국이 그에게, 또 대추리 주민들에게 너무 큰 짐을 지운 게 아닌가 싶은 생각에 늘 죄스러웠다. “그 사람이 논둑이 되어 있네요/ 표시도 안 나는 자리에/ 그는 늘 있습니다” 서수찬씨가 신종원 이장을 지켜보며 쓴 시구다. 주민들은 고향과의 이별을 끝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타임캡슐에 담긴 향나무 판에 하얀 머리가 고운 김월순 할머니는 “대추리를 떠나기 싫다”고 썼고, 송재국 아저씨는 “황새울 들판이여 영원하시오. 우리 모두는 꼭 돌아오리니. 사랑한다”고 적었다. 주민들과 2년 넘게 동고동락했던 지킴이들은 4월9일 대추리를 떠났다. 그들은 대추리에서 대한민국이 저지른 만행을 고발하기 위해 걸어서 서울로 향했다. 마을은 이제 국방부의 포클레인에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주민들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우리는 떳떳하게 잠잘 수 있을까.

화가 이윤섭씨가 그림을 포클레인을 이용해 철거하고 있다. 2년 뒤 주민들의 이주단지가 조성될 노와리의 ‘신대추리 평화마을’(가칭)에 다시 설치할 예정이다.

2003년 설치예술가 최평곤씨가 대추리·도두리를 지키라고 세운 문무인(文武人)상이 저 멀리 노을을 배경 삼아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