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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순대가 있는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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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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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불빛 아래서 사람 얼굴 그리는 포장마차의 화가 아줌마…칼 내려놓고 연필 잡으면 2평 남짓한 공간은 어느새 화실로

▣ 사진·글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전북 김제 시립도서관 모퉁이를 8년째 지키며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박성연(54)씨는 이곳에선 이름난 화가다. 2평 남짓한 포장마차에서 한 무리의 학생 손님들이 빠져나가자 순대 썰던 칼과 도마를 치우고 스케치북을 펼친 뒤, 선 자세 그대로 요즘 작업 중인 배우 오광록씨를 그린다.

그림에 대한 정규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박씨는 6년 전 어느 날 포장마차에 걸려 있던 달력의 그림이 멋있어 보여 수첩에 연필로 그려본 게 계기가 됐다. 그 뒤 주고객인 학생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그림을 그리다 인물화의 매력에 푹 빠져 지금은 주로 사람만을 그린다.

지나가는 차량들의 불빛이 포장마차 주변의 어둠을 가르고 있다.


“사람 그리기가 제일 어려워요. 일단 비슷해야 하면서도 그 사람의 특징이 잘 나타나야 하거든요.” 희미한 불빛 아래서 연필을 놀리는 그의 손길이 섬세하다. 지난해 11월엔 김제 문화예술회관에서 짬짬이 5년간 그린 그림 500여 점을 모아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박씨에게 절대적인 도움을 준 사람은 바로 남편 송기수(58)씨였다. 원래 그림을 잘 그려 화가의 길로 나서려던 남편은 1993년 신경계 질환으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그 꿈을 접었다.

“남편이 못 이룬 꿈을 대신 이은 셈이죠. 남편의 격려와 질책이 그림에 대한 의욕을 불어넣어줍니다.”

힘 닿는 데까지 좋아하는 그림을 맘껏 그려보고 싶다는 박씨. 손님이 들어오자 이내 그리던 그림을 치우며 떡볶이를 젓는다.

2평 남짓한 포장마차는 박성연씨의 일터이자 전시장이다.

박씨가 오랜만에 가게에 나온 남편 송기수씨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다.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인 ‘김순덕’. 김순덕은 김밥, 순대, 떡볶이를 한 접시에 담은 것이다.

박씨가 거실에서 그동안 그린 작품들을 정리하고 있다.

요즘 한창 작업 중인 배우 오광록.

밤늦게까지 문을 닫지 않는 포장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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