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고된 몸의 마지막 안식처, 만화방

624
등록 : 2006-08-23 00:00 수정 : 2008-11-21 16:57

크게 작게

서울역 앞 ‘천국만화’에서 잠자고 빨래하고 라면을 먹는 사람들… 80년대 중반까지 많았던 만화가게도 대여섯 집만 남아 명맥 유지

▣ 사진·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글·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1960년대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을 안고 도시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청계천 주변에 ‘하꼬방’을 지었고, 서울 근교 야산에 무허가 건물 숲을 일궈냈으며, 급격한 도시화가 이뤄진 강남 곳곳 자투리땅에 비닐하우스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청계천에는 새 생명이 흐르고, 산동네들은 초고층 아파트 숲으로 탈바꿈했는데, 비닐하우스촌들은 주변의 개발 붐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천국만화는 서울역 광장에서 지하철 숙대입구역 쪽으로 100m 떨어져 있다.

천국만화 주인 김동순(51)씨는 “욕심이 없어서 그런지 우리 식구들은 참 소박하다”고 말했다. 그는 4년 전 우연한 기회에 가게를 인수하게 됐다. 서울역 앞 만화가게에는 하꼬방과 판잣집과 비닐하우스촌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모여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천국만화는 2층에서는 만화를 보고, 3층에서는 잠을 자는 구조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은 만화방에서 잠을 자고, 빨래를 하고, 라면을 먹고, 일자리를 구했다. 김씨는 “심성이 고운 사람들과 같이 살다 보니 별로 고단한 것을 모른다”고 말했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울역 앞에는 천국만화·경일만화·제일만화 등 24시간 동안 누워 뒹굴며 만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 많았지만 이젠 겨우 대여섯 집 남아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입장료는 3시간 기본에 2천원, 하루 종일 머무르려면 8천원이다.

서울역 앞 만화방들이 사라지고 나면, 이제 그들은 어디에서 고단한 영혼을 달랠 수 있을까. 해가 졌는데도 날은 계속 더웠고, 사람들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주인 아주머니가 손님이 출근하느라 바빠 부탁한 세탁물을 널어주고 있다.

만화를 보다 소파에 누워 잠드는 사람도 많다.

제일만화의 사물함은 35개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짐을 맡기는데, 이용료가 없는 대신 물건이 없어져도 가게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화장실에서 면도부터 샤워까지 해결한다.

밤에는 더운 만화방 대신 시원한 오락실로 향한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