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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채소와 함께 스매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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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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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으로도 뛰어난 스포츠맨이 될 수 있다는 탁구소년 원성완군… “학교 급식도 돈가스 대신 야채와 과일로 차려 주실 수 없나요”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쉴 새 없이 공을 쫓고 난 뒤의 휴식 시간. 간식으로 싸온 방울토마토와 오이를 게 눈 감추듯이 먹어치운다.


원성완(16·원주 대성고 1)군은 채식으로도 뛰어난 스포츠맨이 될 수 있다는 꿈에 부푼 채식 탁구소년이다. 원군은 식물을 분해해 얻은 푸른 에너지로 라켓을 휘두른다. 지난해 12월엔 서울에서 열린 인터넷 동호회 탁구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원군이 채식을 시작한 건 지난해 9월. 시립도서관에 공부하러 갔다가 우연히 펴든 존 로빈스의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는 책 때문이었다. 이미 채식인들에게는 고전이 되어 있는 책.

“평소에 먹을거리와 건강에 관심이 많기도 했지만, 그 책을 읽고 공감이 갔어요. 채식을 하면 내 건강에도 좋고, 지구를 위해서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끊은 고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처음 일주일은 계란과 우유에서 입을 뗐다. 탄력이 붙으니 자연스레 고기도 끊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운동을 하면 응당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는 인식도 깨고 싶었다. “권영철씨인가요? 격투기 세계챔피언도 채식을 한다잖아요.”

원군의 일상은 대학 입시를 향해 바지런히 쳇바퀴를 돌리는 대한민국 수험생의 모습과 같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밥을 먹고 아침 7시30분에 집을 나선다. 첫 수업은 8시20분. 정규 수업에 야간 자율학습까지, 집에 돌아오면 밤 10시가 넘는다.

“학교 급식이 가장 힘들어요. 한번은 쌀밥에 돈가스, 생선가스, 김치… 이렇게 나온 적이 있었다니까요. 그럴 땐 김치와 국만 먹어야 하지요.”

안 먹는 고기를 나눠주면 친구들이야 좋아하지만, 원군은 불만이다. 그래서 3월 초 급식업체에 건의서를 보냈다. 냉동·가공식품 위주의 반찬을 줄이고 흰쌀밥 대신 잡곡·현미를 섞어달라고. 그리고 야채와 과일을 좀더 많이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탁구장에 달려가 동호회원들과 운동을 할 수 있고, 마음껏 채식을 할 수 있는 주말이 좋다. 가끔씩 시내의 ‘아름다운 가게’에 가서 중고용품 쇼핑을 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채식 탁구소년 원군은 지난해 우승으로 4부 리그에서 3부 리그로 올라갈 수 있게 됐고, 올해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 대학은 사회체육학과로 갈 생각이다.

“아직도 채식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게 아니에요. 고기는 기호품이에요. 술이나 담배처럼.”

“고기도 먹어야지.” 어머니는 걱정이 되지만 결국 아들의 편이다. 어머니는 육식을 하지 않는 원군을 위해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도록 콩으로 된 음식을 많이 준비한다.

아침 7시30분 등굣길의 원성완군. 여느 고등학생처럼 밤 10시가 넘어야 집에 돌아온다.

격렬한 운동에 체력이 달리기는커녕 채식을 한 뒤로 몸이 더 가볍고 공에 대한 집중력도 좋아졌다.

채식을 해서일까. 원성완군의 미소는 유난히 해맑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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