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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누가 뭐래도 나는 여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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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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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과장’ 자리 박차고 나와 댄스스포츠 불사르는 장진욱씨… 마음의 감기 치료해주는 춤, 노인도 환자도 모두 추실래요?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장진욱씨는 경북 구미의 국민건강 관리공단에서 스트레칭 춤 강습을 한다. “할머니들은요, 손 안잡아드리면 삐져요. 꼭 애들 같으시죠?"

“몸의 감각이 깨어나면 육체는 정신적 부담감에서 해방되고 어색한 몸짓이 자연스러워집니다. 몸은 자신의 리듬과 파동을 따라 움직인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일생 동안 몇 가지 동작만 반복한다는 걸 깨닫게 되고, 다른 움직임을 경험하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되죠.”


대학에서 일문과를 전공하고, 선망의 직장인 은행에 재깍 입사했던 새침데기 장진욱(34·경북 구미시 형곡동)씨. 취미가 ‘공부’라 입사 뒤에도 열심히 ‘취미생활’을 하며 승진시험에 매달린 결과 30대 초반에 과장으로 진급했다. 상상해보시라. 따로 마련된 뒷자석에서 도장을 찍는 커리어우먼의 모습을.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지점장 자리도 바라볼 수 있었다.

춤을 배우는 사람은 학생에서부터 직장인, 주부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별·연령대를 자랑한다.

그러던 그는 뒤늦게 춤의 매력을 발견한다. 오빠와 올케가 운영하는 댄스학원에 우연히 들렀다가 ‘필’이 꽂힌 것. “춤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쿵쾅거리는 음악에 맞춰 춤추는 선수들을 보니 정말 멋진 거예요. 지금까지 너무 팍팍하게만 살아온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 길로 오빠의 특기적성연구소 댄스스포츠 지도자 과정에 등록했다. 온몸의 근육이 뭉치고 발뒤꿈치가 까져 굳은살이 박여도 매일 학원에서 춤을 췄다. 집에선 갓 태어난 둘째를 업고 몸을 흔들었다. 핏속을 타고 흐르는 ‘끼’는 속이지 못했다. 연습을 거듭할수록 자신에게도 가슴속 깊이 감춰둔 열정이 이글거리고 있음을 발견한다.

무대 위에서만은 최고가 되고 싶다는 일념에 그는 은행에 사표를 내고 연습에 매진했다. 그리고 댄스스포츠 경연대회에 나갔다. “대회에서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여기서만큼은 내가 여왕이다. 무대 위에서만큼은 누가 뭐래도 여왕이다.” 그는 혈전 끝에 마침내 대상을 수상한다. 은행을 그만두고 댄스를 한다고 반대했던 엄마와 남편이 이때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는 후문이 있다.

“이제 시작이에요. 감기 걸리면 약국에 가듯, 정신이 피로할 때 편하게 찾아가 처방받을 곳이 필요해요. 꽉 막힌 정신병원 말고요. 스트레스로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감기 환자만큼이나 많거든요.” 그는 4월에 문을 여는 경북 구미 ‘꼬미한의원’에서 춤치료 과정을 개설할 예정이다. 그는 이미 한 달에 두 번 구미 선산에 위치한 성심요양원을 방문해 치매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댄스강습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노인과 함께 손을 맞잡고 춤추면서 노인성 질환에 도움을 주는 ‘건강댄스 봉사활동’은 계속될 예정이다.

장진욱씨와 손을 잡은 유현수(초등5년) 어린이는 성장크리닉 댄스과정 3개월만에 살이 4Kg 빠졌다고 한다.

장진욱씨는 “은행 다닐 때 보다 두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다"고 말한다.

7살 어린이의 스트레칭을 도와주는 장진욱씨. 춤은 몸을 읽어내는 과정이다.

경북 구미 선산에 위치한 성심요양원. 치매노인들에게 댄스 강습은 육체적, 정신적 치료과정이자 놀이가 된다.

몸을 움직여라.동작의 변주는 내가 몰랐던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장인욱씨가 운영하는 ‘잼 공연예술 아카데미’의 수업 장면.

다음 달 경북 구미 꼬미한의원에서 춤치료 교실을 개설한다. 홍재화 원장과 논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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