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타국에서 조국의 민주주의 기다리는 버마민족민주동맹 사람들
“군부독재 극복한 한국, 우릴 정치적 난민으로 인정해줄 수 없나요" ▣ 사진·글=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민중들이 거리로 나오고 오랫동안 짓눌려서 펴보지도 못한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드높았다. 그러나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군부가 집권하고 이후 열린 총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야당의 당수는 가택연금당한 채 국회는 제대로 꾸려보지도 못했고, 모든 집회와 시위는 금지됐으며, 시위 전력이 있는 학생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갔다.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일이 아니다. 1988년 8월8일 민주화운동 이후 버마(현재 미얀마)에서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1990년대 각종 시위경력으로 인한 학정을 못 이기고 한국으로 탈출한 한국 내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회원들은 자신들의 조국 버마의 민주화를 손꼽아 기다린다. 총 22명 중 7명만 한국 정부에서 망명자로 인정받았고 나머지는 거부당했다. 현재는 정치적인 난민 신청 문제로 소송 중이지만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거친 노동과 사회적 무관심으로 한국 생활이 힘들지만 조국 버마의 상황도 희망적이지 않다. 야권은 분열됐고 국제사회의 관심도 많이 줄었다. 그러나 절망 속에도 희망을 버리진 않을 것이다. 민중의 힘으로 군부독재 정권의 무릎을 꿇게 한 한국에 살면서 배운 점은 결국 새벽이 온다는 것이다. 이역만리 외국에서 오늘도 이들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의 신새벽을 부른다. 
 
 
 
 
 
 
 
 
 
 
 
 
 
 
 
 
 
 
 
 
 
 
“군부독재 극복한 한국, 우릴 정치적 난민으로 인정해줄 수 없나요" ▣ 사진·글=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회의 중간에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는 조샤린씨는 2003년 한국에서 난민 신청이 취소됐지만 다음해 유엔에서 난민 인정을 받았다.

매주 목요일 오전에는 회원들이 돌아가며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버마 민주화를 위한 1인시위를 한다.

망명자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출국권고서를 받은 상태다.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버마민족민주동맹의 깃발.

사무실 운영비와 생활을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그나마 요즘엔 일거리 구하기도 쉽지 않다.

각종 시위 때 가지고 가는 핸드마이크.

12월3일 한국에서 결혼한 윈민(남)씨와 닝닝애씨가 국회 앞 1인시위 순서를 기다리며 음료를 나누고 있다. 

불교 국가인 버마에서는 가정집마다 불상이 모셔져 있다. 회비로 운영된다. 부천의 월세방 한켠에 불상을 가꾸는 저모아씨.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심곡동의 작든 사무실에 마련된 버마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 박봉을 쪼개 내놓는 회비로 운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