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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그믐밤 재밌는 거 나온당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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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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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터잡고 노는 충북 영동군 자계 예술촌 ‘산골공연 예술잔치’
폐교 공연장의 ‘들놀음’엔 부침개와 단골 관객이 있다

▣ 영동=사진 ·글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충북 영동군 용화면 자계리. 60여 가구 100여명, 옆집 숟가락이 몇개인지 알 정도로 옹기종기 모여사는 작은 산골 마을이 한달에 한번 시끌벅적해진다. 1991년 문을 닫으면서 황량해진 자계초등학교에 2002년 극단 ‘터’(대표 박창호)가 들어와 ‘자계 예술촌’을 가꾸면서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지난해 문화관광부의 생활·친환경적 문화환경조성 사업에 선정된 뒤 공사비를 지원받아 야외 공연장, 소극장, 다목적실까지 마련했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 밤에 열리는 ‘그믐밤의 들놀음’에선 연극, 품바, 그림자놀이, 풍물, 춤 등 다양한 공연을 올린다. 이젠 영동을 넘어 옥천, 대전, 무주, 보은, 금산, 청주 등 주변 지역에서도 찾아올 만큼 인기가 높다.


7월30일부터 8월4일까지 엿새 동안 열린 ‘제2회 산골공연 예술잔치’에선 잔치판이 커졌다. 예술촌이 연극과 춤으로 주민들을 대접한다면, 주민들은 부침개와 막걸리, 국수 등 간단한 먹을거리로 보답한다. 이번에도 마을 주민들이 화물차 가득 부침개를 준비해 관람객들에게 나눠줬다.

박창호(42) 대표는 “도시 위주의 공연문화를 농촌에 접목해 모두가 함께하는 열린 무대로 마련했다”며 “소박하지만 추억에 남을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참가비는 내키는 대로 내라고 한다. 10월엔 극단 ‘터’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1월엔 음악회 ‘시와 만나는 소리 향기’ 등이 준비돼 있다(문의 자계예술촌 043-743-0004).

7월30일 밤하늘 가득 별이 흐르는 산골 오지 마을에서 펼쳐진 산골 공연예술 잔치에 300여명의 주민·관객들이 참가했다.

“촌 사람들 웃겨주고 잘해요. 재미있는 것 나온당께 앉아 있어야지.” 농부의 거친 손을 가진 김영만(72)씨는 공연장을 떠날 줄 모른다.

‘나무닭움직임연구소’의 장소익씨가 인형과 탈을 이용해 1인극 <거인의 그림자>를 선보이고 있다.

경희궁기천예무단의 무예극 <하나에 모든 것이 있다>. 무대에 초대된 관객들이 전통 무예 '기천'의 부드럽고도 강한 몸짓을 느껴보고 있다.

박태이씨의 즉흥 선무는 ‘춤 명상’이다. 인도 무용의 한 종류인 무드라로 침묵과 우주의 언어를 명상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한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열리는 ‘그믐밤의 들놀음’은 소박한 상설 공연의 모범사례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파울로 코엘료의 장편소설 <연금술사>를 각색한 극단 ‘낮은 산’의 그림자극 <양치기 소녀>. 모래와 종이, 실물을 이용한 흑백과 컬러 그림자들이 살아 움직인다.

마을 부녀회에서 준비한 부침개는 산골마을의 잔치에서 빠뜨릴 수 없는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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