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발견된 6·25 전사자 유해들, 드디어 전쟁터에서 떠나다
▣ 포항=사진·글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한반도를 할퀸 한국전쟁의 총성이 이 땅에 울린 지도 어느새 55년이 지났다. 그러나 10만3천여명의 참전 전사자들은 여전히 주검이 발견되지 못한 채 흙 속에 방치되고 있다. 뒤늦게 1999년부터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이 시작됐지만, 2004년까지 발견된 유해는 총 1106구. 전체 발굴 대상 유해의 1%에 불과하다. 이에 정부는 2007년 1월 국방 유해발굴감식단을 창설해 더욱 적극적으로 발굴작업을 펼쳐나가기로 했다.
2005년 첫 발굴 대상지인 경북 포항시 흥해읍 도음산 정상. 3월24일, 육군 전사자유해발굴단 소속 부대원들과 포항지역 해병대 제1사단 소속 장병들이 작업 시작 열흘 만에 나무뿌리와 뒤엉킨 유골 더미를 발견했다. 200여평에 달하는 가매장 추정지에서 장병들이 키높이만큼 땅을 파며 수색을 진행했지만 뼛조각 하나 나오지 않던 상황이었다. 전문 감식단이 유골들을 수습한 뒤 해병 제1사단 병사들이 유골이 담긴 나무상자를 들어올렸다. 현장의 장병 모두 거수경례로 예를 갖췄다. 발굴 기간 내내 내리던 비와 눈은 가시고, 파랗게 열린 하늘에서 햇볕이 비쳤다.
사자(死者)가 된 지 55년 만에 말라버린 몇 마디의 뼛조각이 되어 고지에서 내려오는 용사들. 이들을 운구하는 해병대원들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육군 전사자유해발굴단 소속 부대원들이 나무뿌리에 엉킨 뼛조각들을 분리해내고 있다.
2005년 첫 발굴 대상지인 경북 포항시 흥해읍 도음산 정상. 3월24일, 육군 전사자유해발굴단 소속 부대원들과 포항지역 해병대 제1사단 소속 장병들이 작업 시작 열흘 만에 나무뿌리와 뒤엉킨 유골 더미를 발견했다. 200여평에 달하는 가매장 추정지에서 장병들이 키높이만큼 땅을 파며 수색을 진행했지만 뼛조각 하나 나오지 않던 상황이었다. 전문 감식단이 유골들을 수습한 뒤 해병 제1사단 병사들이 유골이 담긴 나무상자를 들어올렸다. 현장의 장병 모두 거수경례로 예를 갖췄다. 발굴 기간 내내 내리던 비와 눈은 가시고, 파랗게 열린 하늘에서 햇볕이 비쳤다.
사자(死者)가 된 지 55년 만에 말라버린 몇 마디의 뼛조각이 되어 고지에서 내려오는 용사들. 이들을 운구하는 해병대원들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학천리 도음산 정상에서 해병대 제1사단 병사들이 55년 만에 발굴된 6·25 전사자 20여명의 유골을 태극기로 덮은 작은 관으로 운구하고 있다.

발굴된 전사자들의 유골 중 15∼20살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허벅지 뼈. 이들은 군번도 없이 싸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육군 전사자유해발굴단 부대원들이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개인 장비들. 고고학에서 쓰는 것과 같다.

경북 포항시 흥해읍 천마산 일대에서 해병 제1사단 장병들이 전사자 유해 발굴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 현충원의 영현승천상 주위를 견학온 군인들이 둘러보고 있다. 영현승천상은 6700여구의 무명용사 유골이 봉안된 곳이다.

발굴된 유해들에서 DNA 추출을 마친 뒤 입관시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