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촌에 남겨진 진폐증 환자들… “합병증이 얼른 생겨야 보조라도 받을 텐데”
▣ 태백=사진·글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수십년의 한이 서린 남녘 최대의 탄광, 장성갱과 금천갱. 탄광이 있던 황지와 장성, 철암은 태백시가 됐다. 1981년 두 차례의 석유 파동으로 에너지 정책이 급전환됐고, 매장된 석탄을 캐내느라 광부들은 밤낮이 없었다. 탄먼지를 삼키며 가파른 갱도를 포복하던 수많은 광부들이 갇혀 죽었다. 어느 날 갑자기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이 실시되면서 탄광들은 문을 닫았지만, 사람들은 급조된 광산의 사택촌이 퇴락해도 갈 곳이 없다. 태백은 오늘도 기침을 한다.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탄광 생활을 했습니다. 동생들 공부시키느라 결혼도 못한 채 형편이 풀리면 그만둔다는 것이….” 태백시의 태백중앙병원에서 10년째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김우연(84)·재균(52)씨 부자는 불치병인 진폐증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성치 않은 몸으로 남편과 아들의 수발을 들고 있는 임분선(74) 할머니도 같은 진폐증 환자다.
그나마 김씨 부자는 운이 좋은 편이다. 병원비 전액을 국가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광부 생활 때 받던 월급의 70%를 휴업급여 명목으로 매달 받고 있다. “진폐증이 있다고 해서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폐결핵 등 진폐증으로 인한 8가지의 합병증이 생겨야만 혜택을 볼 수 있죠.” 이 때문에 재균씨는 “어머니도 빨리 합병증이 생기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그는 “합병증의 범위가 확대돼 더 많은 진폐증 환자가 입원치료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하면서 “정부가 재가 환자들에게 치료 혜택을 주기 어렵다면 최저생계비라도 지급하거나 요양시설을 더 많이 지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철암은 1980년대 말까지 석탄 산업의 심장부였으나, 지금은 한집 건너 빈집이다. 인근의 사북과 고한, 황지가 카지노 관련 사업으로 살 길을 찾고 있지만, 그마저도 소외된 이곳은 급격히 슬럼화되고 있다. 철암초등학교 백산분교장 1학년생들(왼쪽부터 정종훈·양정민·이주리)과 하은영 교사가 체육 수업을 하고 있다.
태백광업소 탄광휴게실에서 한 광부가 전어전으로 간식을 때우고 있다.
태백에서 진폐에 걸린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홀로 도시락을 먹고 있는 최일영(62)씨는 1988년 폐광 뒤 일자리를 구하러 대구에 갔다가 이틀 만에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쳤다.
가운데에 있는 문종만(51)씨 생일이라 동네 사람들이 낮 소주를 나누고 있다.
태백 인구의 절반이 넘었던 예전 광부의 아내들은 병든 남편을 먹여살리느라 악전고투하고 있다. 아내의 눈물이 촛농처럼 사늘하니 방바닥에 떨어진다.
사택들은 모두 연탄을 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