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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햇볕 쨍한 날, 국수가 웃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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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10-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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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식 국수의 명맥을 잇는 충북 영동 ‘은진국수’… 이틀 동안 햇볕 먹은 면발 쫄깃쫄깃해

▣ 영동=사진·글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3.5kg 가격이 6천원이다.
라면과 포장국수가 시장을 점령하는 동안 31년간이나 손으로 면발을 뽑아내며 재래식 국수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충북 영동군 영동읍 영산동 시장에서 ‘은진국수’라는 상호를 내걸고 오늘도 콩가루를 넣은 국수를 손으로 직접 썰고 있는 장순이(67)·임성천(66)씨 부부. 1973년 문을 연 뒤 하루도 빠짐없이 국수를 만들어왔다. 임씨가 국수 장사를 시작한 건 새마을사업으로 곳곳에 공사장이 벌어지던 무렵 대구에서 국수 빼는 기계를 구입하면서부터다. 이후 가는 국수, 누릉국수(칼국수), 콩국수 등 계절에 따라 다양한 국수를 만들어내며 재미를 보았다. 특히 면발을 뽑은 뒤 이틀 동안 햇볕에 내놓아 꼬들꼬들해질 때까지 말리는 것이 쫄깃쫄깃한 면발을 만드는 비결이다.

그때만 해도 먹을거리가 귀했고 국수는 계절을 가리지 않는 최고의 인기 식품이어서 영동군만 해도 4∼5개의 국수 공장이 있었지만, 영동읍은 물론 황간·양강·학산·양산 등지에서도 ‘은진국수’의 국수를 사러 사람들이 몰려왔다. “장날엔 하루에 밀가루 10포 이상을 작업하느라 점심을 거르며 일을 해야 할 정도로 바빴어요.”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사흘 동안 계속 내린 비 때문에 말리던 국수에 곰팡이가 생겨 모두 폐기 처분해야 할 때는 가슴이 미어졌고,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에 몇날 며칠 혓바늘이 돋기도 했다. 그래도 국수틀을 놓지 못하고 있었지만, 80년대 중반까지 호황을 누리던 국수시장은 대형 슈퍼가 들어서고 이동판매 차량이 시골 구석구석까지 누비기 시작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어영부영 천직이려니 하고 이어오다 보니 어느덧 30년이 넘고 말았다고 너털웃음을 짓는 부부는 “지금도 장날이면 시골에서 국수를 사러 오는 단골 노인들이 있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쫄깃한 국수를 쑥쑥 뽑고 있다(왼쪽). 기계로 반죽을 하고 있는 임성천씨(오른쪽).

국수를 만들기 전에 밀가루를 섞고 있다.

실내에서 한나절 건조시킨 국수를 햇볕에 내놓아 이틀 동안 말린다.

재래식 국수를 먹고 있는 아이.

꾸준히 ‘은진국수’를 찾는 단골손님이 있기에 가게 문을 닫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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