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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간판 화가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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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2-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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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홍보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던 간판화가의 오늘… 디지털 실사 사진에 밀려나 일감 찾기도 어려워

관객 100만이 꿈이던 시절, 극장 전면에 가득 찬 화려한 채색의 극장 간판은 행인들을 환상과 모험 세상으로 이끌었다. 영화가 끝난 뒤 다시 한번 극장 간판을 바라보면서 영화의 감동을 가슴에 새기기도 했다. 그 당시 극장 간판은 극장의 얼굴이었고 홍보의 전부였다. 1천만 관객이 현실이 된 지금, 요즘의 복합상영관에는 그 자리를 디지털 실사 사진들이 대신하고 있지만, 예전의 간판만한 위치를 차지하지는 못한다.

여럿이 바쁘게 움직이던 작업장. 이젠 혼자서 작업하는 공간이 휑하게 보인다.
영화산업의 환경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 속에서 아랑곳없이 30년간 극장 간판을 그려온 서울 신촌 그랜드극장의 이찬영(52) 미술부장.

“80년대가 극장 간판의 전성기였죠. 개봉일이면 영화 관계자들이 올라가는 간판을 보며 흥행이 잘 되길 빌고, 주연 배우들은 간판의 자기 얼굴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이젠 볼 수 없는 풍경이죠.”

극장 간판이 실사 사진으로 교체되면서 극장 미술가들 중 대부분은 수출 그림을 제작하는 서울 삼각지로 자리를 옮겼다. 1주일에 2~3편씩 극장 간판을 그리는 이 부장은 그림에 대한 후회나 미련은 없다고 한다.

빠르고 간편하다는 이유로 실사 사진을 사용하지만 시간과 정성을 들여 수작업한 간판과 비교가 되겠는가. 디지털이 효율성은 높을지라도 아날로그의 감성은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관객이 줄어드는 영화는 내려지고 다음 개봉작의 간판이 올라가고 있다(왼쪽). 흔히 페인트로 극장 간판을 그리는 줄 알지만, 사실은 선명한 인쇄용 오프셋 잉크를 사용한다.

데생을 하기 위해 원화를 베껴내고 있다(왼쪽). 수백번의 붓질을 거쳐 미세한 주름과 섬세한 표정을 그려낸다.

원화에서 베껴낸 그림을 환등기에 비춰 데생을 한다.

내려진 간판은 작업실 한쪽에 놓여 있다가 다음 영화로 덧칠해진다.

사진 · 글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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