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이제 미래의 이름이에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
등록 : 2019-05-24 13:38 수정 : 2019-05-24 14:21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주기 추도식 중 추모객들이 전남 함평에서 가져온 나비 1004마리를 하늘로 날려보냈다. 공동취재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가한 추모객들이 노 전 대통령 묘소에 참배하려고 너럭바위부터 사저 앞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국민에게 돌려주다
노무현을 담은 과거는 10년을 돌아 미래로 향하고 있다. <한겨레21>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자취를 되짚어 ‘청남대 반환’과 ‘검사들과의 대화’ ‘남북 정상회담’ ‘대연정’ 등의 장면에 담긴 의미를 짚어봤다.
시작은 취임 53일 만에 이뤄진 청남대 반환이다. 그는 “청남대는 너무 아름다워 누구라도 독점하고 싶은 맘을 가질 만한 곳”이라고 했다. “대통령도 쉴 곳이 있어야 한다는 참모들의 만류도 있었고, 국가 통치권자에게 별장 하나 있는 것이 뭐 문제냐는 국민 여러분의 생각도 알지만”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데도 “사사로운 노무현을 버리기 위해서”라며 반환의 이유를 더했다.
그날 청남대 너른 잔디밭을 내달리는 자전거 페달에 힘이 느껴진다. 들판을 가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날 그는 “앞으로 국민 여러분의 사사로운 이익이나 집단의 이기로 보면 참 인기 없는 대통령이 될지도 모릅니다”라는 말로 순탄치 않았던 자신의 임기를 예견했다. 청남대에서 쓰기 시작한 국민에게 드리는 편지는 “저를 흔드는 사람들까지 가슴에 안고 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나아갈 것입니다”로 마무리된다. 그는 노무현답게 나아갔다. 닫혔던 청남대를 국민에게 돌려준 뒤 지금껏 다녀간 시민은 1193만854명에 이른다.
미완의 개혁, 패스트트랙에 올라타다
노 전 대통령이 후회, 미련, 실망 등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미완의 개혁이 있다. 바로 검찰이다. “검찰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가운데 검찰은 임기 내내 청와대 참모들과 대통령의 친인척들, 후원자와 측근들을 집요하게 공격했다”며 “정권이 바뀌자 검찰은 정치적 중립은 물론이요 정치적 독립마저 스스로 팽개쳐버렸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 이러한 제도 개혁을 하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고 했다.
유시민 작가가 대신한 자서전에서지만 “퇴임한 후 나와 동지들이 검찰에서 당한 모욕과 박해는 그런 미련한 짓을 한 대가라고 생각한다”는 말은 평소 현실을 에두르지 않고 직격하는 그의 말처럼 뼈아프다. “공수처 수사 대상에 국회의원을 포함시킨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면 국회의원을 빼고서라도 제도 개혁을 했어야 옳았다”는 노 전 대통령의 간절함은 2019년 봄 패스트트랙에 올라타면서 이어지고 있다. 꺼질 듯 위태롭던 회한의 불씨가 살아날 수 있을까.
평화의 시계 다시 돌다
“시기를 놓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욕심을 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몸을 사리거나 금기를 두지도 않을 것입니다. 역사가 저의 책임으로 맡긴 몫이 있을 것입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10월2일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서울을 출발하면서 남긴 대국민 인사말이다. 당시 정상회담준비위원장은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만난 노 대통령은 10·4 남북 공동선언문에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한반도에서 긴장 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나가기로 하였다”는 종전의 뜻을 담았던 선언은 11년 뒤인 2018년 4월27일 판문점선언으로 이어졌다. 핵심은 “첨예한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노력”과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적극 협력해나갈 것”이다. 10년 동안 멈춰 섰던 한반도 평화 시계는 종전을 향해 다시 가고 있다.
평생의 꿈, 미래로 향하다
2005년 7월29일. 청와대 춘추관에 노무현 대통령이 등장했다. 이 자리에서 “연정 하니까 대연정만 생각하는데, 원하는 것은 대연정보다는 선거제도 개혁입니다. 정권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선거제도는 꼭 고치고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지역주의를 해소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만들고 싶다”는 뜻도 함께 밝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뜻은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독일식 국회의원 선거제도 또는 중대선거구제로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목표였다. 노 전 대통령의 진심은 현실 정치공학의 덫에 걸려 질식했다. 그는 “야당과 언론은 아예 토론도 하지 않고 담합해서 덮어버렸다. 끔찍한 일이었다”고 떠올렸다.
다시 2019년 봄, 노 전 대통령이 바라던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패스트트랙에 올랐다. 상황은 달라졌다. 한나라당에서 이름을 두 번 바꾼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반대가 분명하고, 바른미래당은 혼란스럽다. 그래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움직이고, 민주평화당·정의당이 함께한다. 노 전 대통령이 “내가 너무 낭만적이고 이상주의적이었던 것 같다”며 “좌절감을 느꼈다”던 개혁은 지금 되살아나, 이제 미래를 향하고 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참고 문헌 <노무현 전집>(돌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