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글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8888민주항쟁이란 말을 들어봤는가? 1988년 8월8일 버마에서 시민들이 군부독재에 저항하며 들고일어선 민주화운동을 기념해 부르는 말이다. 8888민주항쟁 20돌이 되던 날, 한국에서는 888항쟁이라고 기록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을 몰아내기 위해 검찰과 감사원 등이 총동원된 끝에, 그 마지막 수순으로 한국방송 이사회에서 정 사장 해임제청안을 의결한 것이다.
2008년 8월8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 본관에서 열린 이사회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정권의 압력에 의한 사장 퇴진에 반대하는 피디·기자·경영직 등 직원 수백 명이 이사회를 막기 위해 모였고, 사복경찰 100여 명이 이사회 호위에 동원됐다. 한국방송 본관 1층 로비와 3·4층 복도 등은 직원들과 경찰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됐다. 지하주차장을 통해 본관 3층 회의실로 들어선 유재천 이사장 등은 해임제청안 상정을 밀어붙였지만, 4명의 이사들은 “공영방송 역사상 경찰력을 부른 채 이사회를 연다는 것은 치욕이다”(남윤인순 이사), “방송법상 이사회는 사장 임명제청권만 있을 뿐 해임제청권은 없어 법에 어긋난 상정이다”(이기욱 이사) 등의 말을 남기고 퇴장했다. 남은 이사 6명은 해임제청안을 가결한 뒤 한 대의 승합차에 한꺼번에 올라타고 사복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한국방송를 빠져나갔다.
‘작전’이 종료되고 직원들이 허탈감에 빠져있을 때, 한 직원은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분노까지 모두 메말라버린 듯한 그의 얼굴은 무표정에 가까웠지만, 눈물에 젖은 눈동자에는 공영방송을 권력에 빼앗겨야만 하는 회한이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