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대박’은 문화를 타고…

492
등록 : 2004-01-09 00:00 수정 :

크게 작게

2003 히트 상품을 통해 예측해본 2004년…건강한 삶 추구하는 문화와 함께 ‘웰빙’ 인기 이어질 듯

많이 알려진 건 아니지만, 몇년 전에 MP3 기능을 갖춘 휴대전화가 국내 시장에 나왔다. 그러나 획기적인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고 이내 쑥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반면 카메라 달린 휴대전화는 2003년에 공전의 빅히트를 기록했다. 사실 지난해는 전반적인 휴대전화 교체 시기도 아니었고 단말기 보조금 제공도 없었다. 무엇이 두 휴대전화의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 것일까?

한겨레 자료사진.

퓨전사극,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자

LG경제연구원 김상일 연구위원은 “기술만으로 히트작이 나오는 것은 아니고 문화가 히트상품을 만들어낸다”며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는 문화가 카메라 달린 휴대전화의 히트를 뒷받침했다”고 설명했다.


문화를 키워드로 2003년 히트상품(삼성경제연구소 선정)을 보면 △돈과 부(로또·재테크 서적·수입차) △답답한 현실로부터의 탈출(퓨전사극·이민상품) △뉴디지털 라이프 스타일의 대두(디지털 포토·신가전) △건강과 지식 추구로 미래에 대비(웰빙상품·지식검색·지하철신문)가 꼽혔다. TV드라마 <대장금>과 <다모>, 영화 <스캔들>과 <황산벌> 등 퓨전사극들이 대중에게 어필한 이유는 무엇일까? 퓨전사극은 기존 정통사극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판타지, 영상미, 에로티시즘, 패러디, 유머 등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한 것이 그대로 적중했다. 정치·왕·귀족·남성 중심에서 탈피해 문화(음식), 서민 그리고 주체적 여성을 부각시킨 것도 히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어려운 현실을 잊고자 하는 대중에게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해 ‘사극의 옷을 입힌 대중적 판타지’를 제공한 것이 제대로 먹혀들었다. 한편 TV 홈쇼핑의 이민상품 히트는 경쟁 격화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 고조로 우리 사회에 탈한국 분위기가 퍼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거꾸로 히트상품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내기도 한다. 카메라폰·디지털 카메라 등 디지털 포토 상품은 ‘얼짱’(최고의 얼굴이란 뜻의 인터넷 신조어로, 검색포털 사이트 네이버가 꼽은 2003년 인터넷 유행어 1위)이라는 새로운 디지털 포토 문화를 만들어냈다.

웰빙상품 소비 열풍은 올해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왼쪽부터 LG전자의 트롬세탁기와 삼성전자의 공기청정기. 양문형 지펠냉장고.
그러나 문화 맥락에서 본 2003년 최대 히트상품은 단연 ‘웰빙’(Well-being)이다. 웰빙은 지난해 소리소문없이 등장했다. 지난해 상반기에 명품족이 과시적 소비 성향으로 인기를 끌었다면, 웰빙은 하반기부터 소비 트렌드의 전면에 갑자기 부상했다. 몸뿐 아니라 정신적 건강까지 실질적인 가치를 중시한다는 게 웰빙의 특성이다. 이는 값비싼 소비문화를 통해 남에게 드러내보이기 좋아하는 명품족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치열한 경쟁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쾌적한 삶을 추구하려는 웰빙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유기농 야채, 검은콩 음료와 같은 웰빙식품에서부터 웰빙의류·웰빙화장품까지 등장했다. 공기청정기·음이온 가습기·비데 등 건강가전과 명상·요가상품 히트는 몸과 마음의 건강까지 추구하는 웰빙 트렌드를 그대로 보여준다.

2003년 한쪽에서는 웰빙이 뚜렷한 흐름을 이뤘지만, 다른 쪽에서는 재테크 실용서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인터넷서점 YES24에 따르면 <한국의 부자들>(3위), <나의 꿈 10억 만들기>(7위), <30대에 꼭 알아야 할 돈 관리법 30가지>(10위), <행복한 부자들의 돈버는 습관>(19위) 등이 2003년 베스트셀러 50에 올랐다. 다음카페 ‘맞벌이 부부 10년 10억 모으기’는 회원 수가 무려 16만명에 이른다. 지난해 히트한 이색상품으로는 ‘지하철 무료신문’과 ‘지식검색’을 빼놓을 수 없다. <메트로> <포커스> 등 지하철 무료신문은 새로운 매체로 급부상했는데, 이런 3개 지하철 신문이 매일 아침 150만부 이상 배포되고 있다.

한편 2003년 인터넷 업계 화두는 ‘지식검색’(알고 싶은 것을 인터넷에 등록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려주는 서비스로, 답변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최고의 답으로 선정하고 선정된 횟수가 많을수록 ‘지식내공’이 높은 것으로 평가)이었다. 2002년 10월 ‘지식인’(지식iN) 서비스를 처음 시작한 네이버의 경우 하루 평균 1만5천건의 질문이 올라오고 있으며, 질문과 대답으로 이뤄진 지식 데이터베이스(DB)가 230만건에 달한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의 수록 항목(총 11만건)보다 훨씬 많다.

‘휴(休)개념 웰빙’까지 등장할 것

2004년에는 어떤 상품들이 히트할까? 우선 웰빙상품의 소비 열풍이 여전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신체적·심리적 건강을 구매 기준으로 삼는 웰빙족도 이미 등장했다. 주목할 점은 웰빙이 한때 일어났다 사라지거나 일부 소비자에만 국한된 새로운 소비 트렌드가 아니라는 것이다. 브랜드 위주의 비싼 상품을 과시하는 게 아니라 심신의 건강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웰빙족은 호사스러운 명품 소비와는 다른 실속형 소비자들이다. LG경제연구원 김상일 연구위원은 “올해 웰빙은 더 대중화된 소비 코드로 자리잡으면서 소비층이 넓어질 가능성이 많다”며 “2004년에도 웰빙의 기세가 계속되고 이른바 ‘토털 웰빙’으로 대상 영역이 더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웰빙 트렌드가 먹을거리나 공기청정기 등 일부 제품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주 전역으로 확대된다는 얘기다. 주거 공간에서는 입주자 소유의 피트니스센터, 나무가 우거진 산책로 등 웰빙 컨셉트들이 이미 도입되고 있다.

여기에다 올해부터 주5일제가 본격 실시되면 레저나 가족단위 여행 등 조용한 공간을 찾아 정신적 안정과 만족감을 찾는 ‘휴(休)개념 웰빙’까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또 적극적인 정보탐색을 통해 ‘생각하면서 소비하는’ 이른바 ‘스마트 웰빙’ 경향도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검은콩이 좋다고 너도나도 먹는 게 아니라 소비자 자신이 인터넷 검색으로 뭐가 좋은지 하나하나 따져보는 식으로 알뜰 소비를 하는 것이다. 물론 몸에 좋은 것에 대한 관심은 과거에도 많았다. 그러나 예전에는 전문가나 남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말하는 것을 듣고, 또 새로운 것이 나왔다고 해서 우르르 특정 상품으로 몰려가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제는 생각하는 소비로 바뀐 것이다.

지난해 새로운 유망 상품으로 부상한 신가전 제품(드럼형 세탁기·양문형 냉장고·디지털TV·PDP·LCD-TV 등)은 올해 아테네 올림픽 특수를 맞아 또다시 히트상품 대열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고성능·다기능으로 무장한 신가전은 기존 가전제품에서 한 단계 진화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가전시장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특히 올해 프리미엄급 신가전제품의 값이 인하되면서 잠재 수요층이 빠르게 실제 구매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신가전 중에서 드럼세탁기는 베란다나 화장실 한구석에 감춰야 하는 가전에서 거실에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싶은 품목으로 세탁기 개념을 전환시켰다. 이처럼 세련된 감각을 무기로 하는 ‘가구형 가전’ 컨셉트가 올해도 인기몰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실속형 중·고가 프리미엄 제품인 매스티지(Masstige)도 유행할 전망이다. 매스티지는 일반 대중제품(Mass)과 명품(Prestige) 사이에 걸쳐 있는 대중적인 중·고가 명품을 뜻하는데 명품 생산·공급자들이 단가를 낮춰 중산층에게 접근하면서 새 히트상품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누드 프로젝트’도 인기 이어갈 듯

이동통신 분야에서는 위성을 통해 휴대전화로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이 제공되는 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 서비스가 ‘손안의 TV’라는 컨셉트로 히트상품으로 등장할 전망이다. 한편 연예인 모바일 콘텐츠를 파는 ‘누드 프로젝트’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 히트작이 될 것으로 점쳐진다. 연예인 누드 프로젝트의 경우 예전에는 컬러화보 인쇄로 찍어내야 했지만 지금은 모바일 콘텐츠로 전달하기 때문에 복제 및 유통을 위한 추가 비용이 크게 낮아졌다. 여성 연예인한테 수억원을 개런티로 줘도 장사가 되는 것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