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본 올해 우리 경제의 우울한 자화상…로또 열풍부터 노동자와 정몽헌의 자살까지
사오정? “마흔다섯살이 정년!”
오륙도? “쉰여섯살까지도 회사에 붙어 있으면 도둑놈!”
삼팔선? “서른여덟이면 명예퇴직 시작할 나이!”
그럼 이태백은? “이십대는 태반이 백수!”
이라크전과 사스의 악몽 2003년 경제기사를 수놓은 용어들은 이렇듯 대체로 슬픈 것들이었다. 그 슬픔은 쪼그라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수치로 요약돼 이제 한해를 정리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제연구소는 우리 경제가 올해 3%를 밑도는 성장을 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성장률 3%는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인정되고 있는 5%에 단지 ‘2%’ 부족할 뿐이지만, 그 2%는 단순히 갈증을 유발하는 정도가 아니다. 세명의 자식을 아파트 창밖으로 내던지고 자신도 뛰어내려 목숨을 끊은 엄마의 아픔이 녹아 있는 2%다. 2003년은 ‘로또’와 함께 문을 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2002년 12월 첫선을 보인 로또는 경기침체와 함께 이미 성공이 예약돼 있었다. 당첨자가 없어 당첨금이 이월되는 일이 몇 차례 발생하면서, 홍보 효과를 노린 조작이라는 의혹까지 일부에서 제기될 정도였다.
그러나 희망 잃은 사람들에게 로또는 광고 문구 그대로 ‘인생역전’의 길로 보였을 것이 틀림없다. 로또 판매금액은 점점 늘어났고, 마침내 제19회차 추첨일인 4월12일 전국은 숨을 죽였다. ‘6, 30, 38, 39, 40, 43’ 아무도 고를 것 같지 않던 여섯 자리의 숫자 조합. 컴퓨터의 도움으로 그 번호를 산 강원도 춘천경찰서 박아무개(39) 경사가 1등 당첨금 407억원(실수령액 317억원)의 주인공이 됐다. 국내 복권 사상 최대 당첨금이고 아시아 최고 기록이며, 당분간은 깨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대기록이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로또 등장 이후 지금까지 팔린 로또 복권은 모두 3조6천억여원어치다. 성인 한명당 1만원어치씩을 산 셈이다. 그럼 인생역전에 성공한 사람은? 1등에 당첨된 사람은 모두 202명에 불과하다. 1등 당첨 금액은 평균 41억7400만원이었다.
로또 복권을 ‘올해의 히트상품’으로 만드는 데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도 한몫했다. 미국은 지난해말부터 이라크 공격을 예고하면서, 올 들어 국제유가가 치솟아 걸프전 이후 12년 만에 최고가를 새로 썼다. 고유가는 단기간에 그치긴 했지만, 어려워지고 있던 한국 경제에 큰 짐이 됐다. 미군은 3월20일 새벽 이라크를 침공해, 불과 20일 만인 4월11일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사담 후세인을 권좌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저항세력의 공격 속에 세계 경제는 본격 회복을 뒤로 미뤄야만 했다.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또 하나의 불운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였다. 4~6월 사이 중국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에서 창궐한 사스는 우리나라까지는 상륙하지 않았지만, 동아시아의 물류망을 극도로 위축시키고 여행·레저산업을 마비시켰다.
정부의 ‘땜질’은 불행을 낳고
경기는 점점 나빠졌고 경제연구소들은 성장률 전망치를 계속 낮췄다. ‘세계 경제의 회복’이란 메시아는 오지 않았다. 신용카드 대출, 금융기관의 가계대출 남발로 가계가 소득을 앞당겨쓴 후유증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카드회사들은 올 들어 연체의 늪에서 허덕이기 시작했다. 이미 예고된 사태였지만, 관료들은 무능했고 근본적인 처방을 내리기보다는 국민을 잠시 속이는 쪽을 택했다. 정부는 3월17일 카드사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하반기가 되면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며, 그때까지 카드사들로 하여금 시간을 벌게 해주는 정책이었다.
발등에 불이 붙은 카드사들이 현금서비스를 조금씩 줄이기 시작하면서, 신용불량자들이 또다시 급증하기 시작했다. 2002년 한햇동안 19만명 증가에 그쳤던 신용불량자 수는 올해 들어 6개월 만에 59만명이 늘었고, 하반기 들어서도 증가 속도가 줄지 않아 2003년 한햇동안 100만명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신용카드사들은 신용대출 한도를 최고 40%까지 줄이는 등 뒤늦은 수습에 나섰지만, LG카드가 결국 부도 위기를 맞고 새 주인을 찾고 있다. 정부가 부실기업을 제때 과감히 정리하지 못한 채 시간을 끌다 부실 규모를 키우고, 그 부담을 결국 아무 잘못 없는 제3자들에게 일부 떠넘기는 일은 2003년에도 그렇게 반복됐다.
부동산 문제는 2003년 한햇동안 한국 경제의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 1998년 말부터 슬슬 오르기 시작한 집값은 지난해 말부터 상승세가 더욱 가팔라졌다. 서울 강남의 경우 2배 이상 폭등이 예사였고, 다른 지역으로까지 집값 상승세가 확산되면서 전국적으로 투기 열풍이 일었다. 집값 상승은 단순히 집 없는 이들의 박탈감을 가중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기업 안으로는 노사분규의 핵심 원인이 되고, 훗날 거품이 붕괴될 경우 경제 전반에 끼칠 후유증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관료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땜질 처방으로 일관했다. 10여 차례의 대책이 나오는 가운데 집값이 오히려 더 올라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한 뒤에야 보유과세와 양도소득세의 강화를 핵심으로 한 10·29 대책이 나왔다. 그때서야 집값 곡선은 방향을 아래로 틀었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처방은 아직 실행 단계에 들어서지 못한 채 저항에 직면해 있어서, 집값이 확실한 안정세로 돌아섰는지는 아직도 분명하지 않다.
갈등과 분규로 가득찬 노사관계
‘이태백’이란 말이 함축하듯, 2003년 한국 경제는 청년실업 문제가 그리 간단하게 해결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임을 드러내보이기도 했다. 이미 2001년부터 지표상의 청년 실업률은 낮아져도 신규 고용창출은 이뤄지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기가 나빠지자, 올 들어 청년실업률이 전체 실업률보다 더 빠른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2002년 평균 6.6%였던 15∼29살 실업률은 지난 11월 8%대로 올랐다. <한겨레21>이 지난 1995~97년 수준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바탕으로 체감실업률을 계산한 결과, 청년들의 체감실업률은 11%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북 비밀송금 사건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의장이 지난 8월4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2003년 경제계의 일대 사건이었다. 그의 죽음은 정주영 현대 창업자로부터 시작된 남북화해를 위한 현대그룹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는 계기가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동안 수익성이 떨어지는데도 오직 그의 열정에 의해 뒷받침되던 현대의 대북사업을 다시 한번 기로에 세워놓았다. 거의 아무 재산도 남기지 못한 그의 죽음은 한편으론 부인 현정은씨와 숙부 정상영 금강고려화학(KCC) 명예회장 사이에 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재벌 총수들의 연말은…
노사관계는 올 한해도 순탄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갈등과 분규가 늘었다. 새해 벽두인 1월9일 두산중공업에서 회사쪽의 월급 압류로 6개월 이상 월급을 받지 못한 배달호(50)씨가 분신자살한 사건은, 올해 노사관계가 극심한 대립으로 치달을 것임을 일찌감치 예고했다. 5월2일 화물연대의 파업은 부산항을 마비시키는 등 전국을 물류대란 사태로 몰아넣었다. 6월28일에는 철도노조가 파업을 벌였고, 화물연대도 8월21일 2차 파업을 일으켰다. 그러나 파업은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을 얻게 해주지 못했고, 정부와 노조간의 골만 키워놓았다. 10월 말에는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조원인 이용석씨가 분신 사망하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다시 전면에 부각시켰지만,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을 찾으려는 진지한 노력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한해를 마지막까지 우울하게 맞을 사람은 아마도 재벌 총수들과, 그들의 돈 관리를 맡은 참모들일 것이다. 지난 2월 검찰이 SK그룹을 압수수색해 SK글로벌의 분식회계 등을 밝혀낼 때까지만 해도 수사는 SK그룹에 국한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SK에서 불거져나온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검찰이 다른 기업들로까지 전면 확대함에 따라 삼성·현대차·LG 등 4대 재벌 모두가 100억원 이상의 불법자금을 정치권에 건넨 사실이 드러났다. 그것도 ‘차떼기’로. 유독 재계에는 관대한 처분을 해온 검찰이 이번에는 단호한 칼을 들이댈 것인가. 만약 검찰이 정치권과 재계의 오랜 유착관계를 끊어낼 계기를 이번에도 만들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2003년을 가장 우울한 한해로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오륙도? “쉰여섯살까지도 회사에 붙어 있으면 도둑놈!”
삼팔선? “서른여덟이면 명예퇴직 시작할 나이!”
그럼 이태백은? “이십대는 태반이 백수!”
이라크전과 사스의 악몽 2003년 경제기사를 수놓은 용어들은 이렇듯 대체로 슬픈 것들이었다. 그 슬픔은 쪼그라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수치로 요약돼 이제 한해를 정리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제연구소는 우리 경제가 올해 3%를 밑도는 성장을 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성장률 3%는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인정되고 있는 5%에 단지 ‘2%’ 부족할 뿐이지만, 그 2%는 단순히 갈증을 유발하는 정도가 아니다. 세명의 자식을 아파트 창밖으로 내던지고 자신도 뛰어내려 목숨을 끊은 엄마의 아픔이 녹아 있는 2%다. 2003년은 ‘로또’와 함께 문을 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2002년 12월 첫선을 보인 로또는 경기침체와 함께 이미 성공이 예약돼 있었다. 당첨자가 없어 당첨금이 이월되는 일이 몇 차례 발생하면서, 홍보 효과를 노린 조작이라는 의혹까지 일부에서 제기될 정도였다.
그러나 희망 잃은 사람들에게 로또는 광고 문구 그대로 ‘인생역전’의 길로 보였을 것이 틀림없다. 로또 판매금액은 점점 늘어났고, 마침내 제19회차 추첨일인 4월12일 전국은 숨을 죽였다. ‘6, 30, 38, 39, 40, 43’ 아무도 고를 것 같지 않던 여섯 자리의 숫자 조합. 컴퓨터의 도움으로 그 번호를 산 강원도 춘천경찰서 박아무개(39) 경사가 1등 당첨금 407억원(실수령액 317억원)의 주인공이 됐다. 국내 복권 사상 최대 당첨금이고 아시아 최고 기록이며, 당분간은 깨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대기록이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로또 등장 이후 지금까지 팔린 로또 복권은 모두 3조6천억여원어치다. 성인 한명당 1만원어치씩을 산 셈이다. 그럼 인생역전에 성공한 사람은? 1등에 당첨된 사람은 모두 202명에 불과하다. 1등 당첨 금액은 평균 41억7400만원이었다.

사진/ ‘인생역전’은 신기루에 불과했지만 2003년 내내 로또 열풍은 쉽게 꺽이지 않았다.(한겨레 김종수 기자)

사진/ 서울 명동의 신용회복지원위원회 사무실에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들(왼쪽,김진수 기자). 부동산 열풍 속에 분양 신청에 몰려든 인파(오른쪽,한겨레21).

사진/ 한 시민단체의 설문조사에서 ‘최악의 장관’으로 뽑힌 김진표 부총리(왼쪽에서 두번째)가 재계 인사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한겨레 이정용 기자)

사진/ 지난 8월4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몽헌 의장.(한겨레 이정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