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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쏟아지는 월세에 안전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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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1-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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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위주의 주택임대차 시장 재편 움직임… 세입자 부담 줄이는 월세율 상한제 추진

(사진/집주인들은 시중금리가 낮아 전세금 운용처가 마땅치 않자 월세전환을 꾀하고 있다. 부동산중개소에도 월세 매물이 늘어나고 있다)
은행원 노아무개(33·경기도 과천시)씨는 요즘 집 걱정에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다. 내년 4월이면 전세계약이 만기에 이르게 되는데 전세금이 대폭 올라 있기 때문이다. 집주인쪽에서 전세금을 올려주든지, 차액만큼 월세로 전환하자고 나설 게 뻔해 보여 걱정이 태산이다. 부인과 네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는 노씨의 13평짜리 전세 아파트는 계약 당시엔 전세보증금이 3500만원 수준이었는데 최근의 전세값 급등으로 거의 두배에 이르는 6500만원까지 치솟았다. 차액만큼 월세로 전환할 경우 최소한 20만∼30만원의 추가비용이 생길 것으로 보여 그저 막막할 뿐이다.

이사철이 지나고 경기 또한 하락세여서 전세값 폭등세가 한풀 꺾여 있긴 하나 세입자들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대폭 오른 전세값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만기에 이르는 주택들을 중심으로 월세전환 압박을 받을 개연성도 높은 실정이다.

전세 세입자들 월세전환 압박 늘어나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된 사실을 부인에게 숨기고 사는 딱한 사연도 있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서아무개(35)씨. 서씨는 3천만원짜리에 전세에 살고 있었는데 최근 계약만기에 이르러 집주인으로부터 5천만원으로 올려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정도 인상은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자 월세로 전환하자며 보증금 2천만원, 월세 20만원을 요구해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서씨는 매달 부인 몰래 집주인에게 월세 20만원을 부쳐주고 있다. 아내는 아직도 전세로 살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다고 한다.

경기도 일산 마두2동에 살고 있는 박아무개(45)씨는 지난 9월부터 한달에 12만원의 생돈을 추가로 물고 있다. 박씨는 9천만원 전세에 살고 있다가 시세가 1억원으로 오르자 집주인이 차액만큼 월세로 지급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한달에 12만원을 얹어주고 있다. 박씨의 경우는 그나마 집주인과 밀고당기는 협상을 통해 많이 깎은 수준이다.

최근의 전세값 폭등, 월세전환 압박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주택임대차 시장이 아직은 전세 위주로 짜여 있긴 하다. 주택은행이 월세시장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 10월16일부터 21일에 걸쳐 전국 28개 도시 502개 부동산 중개업소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월세전환 추세가 퍼지고는 있으나 임차시장은 여전히 전세형태가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세비율(계약체결 기준)은 33.7%로, 이는 지난 95년 인구주택 총조사 당시 월세비율(30.3%)과 비교할 때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월세 이율 또한 하향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 단독·연립 주택과 아파트의 평균 월세 이율(호가기준)은 1.62%로 지난해 10월의 1.85%와 지난 4월의 1.70%에 비해 떨어졌다. 월세 이율은, 예를 들어 세입자가 전세금이 5천만원인 주택을 월세로 전환시키고 2천만원을 월세보증금으로 할 때 나머지 3천만원에 대한 월이자를 일컫는 개념이다. 월세 이율이 낮아지고 있는 것은 물량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데다 시장금리가 하향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월세·전세의 비중 구조에 큰 변화가 없고 월세 이율 또한 안정세이지만, 이때야말로 월세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목소리가 높다. 경기 변동에 따라 전세·월세 대란은 언제든 재연될 수 있으며 그때 가서는 이미 늦다.

세입자 입장에서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월세전환을 꺼림에 따라 월세 비중은 크게 늘어나지 않았지만 집주인으로서는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유인이 많다. 시중금리가 한 자릿수대에서 안정돼 있어 전세금 운용처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9천만원짜리 전세를 1억원으로 올렸을 경우 인상분 1천만원을 은행에 맡겨봐야 지금 같은 금리안정기에선 세금 떼고 나면 한달에 대략 6만원 정도 이자수익을 올릴 수 있을 뿐이다. 반면, 차액을 월세로 전환할 경우 한달에 적어도 12만∼15만원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세입자가 월세를 제때 내지 않을 경우에는 나중에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때 그만큼 공제하면 돼 떼일 염려도 전혀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부동산중개업소에는 월세 매물이 적지 않이 밀려 있다.

대출 이자보다 훨씬 높은 월세율에 시름

(사진/보증금 부담. 분쟁에 따른 세입자 손실을 감안할 때 전세를 점차 월세로 유도해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경기도 일산에 있는 세림부동산중개소에는 11월2일 현재 전세매물이 3∼4개, 월세매물은 각각 3개 정도가 나와 있다. 임한재 사장은 인근 부동산중개소의 사정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임 사장은 다만, “월세 매물이 나와 있긴 하나 세입자들이 아직은 전세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 실제 계약이 맺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부동산업계 추정에 따르면,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파트 임대매물의 10%선에 머물던 월세 비중이 최근 들어 30% 정도로 높아졌다. 세입자가 꺼려 월세 계약이 맺어지는 사례는 아직 제한적이지만 전세난이 빚어질 경우 월세전환이 대거 이뤄지고 이에 따라 세입자들이 부담이 커질 게 뻔하다.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할 경우 세입자들의 부담은 어느 정도일까.

한솔공인중개소(경기도 일산)에 임대매물로 올라 있는 24평짜리 아파트(호수공원 인근, 마두역서 3분 거리)의 경우, 전세로는 7500만원 수준인데 월세로 할 경우 보증금 2천만원에 월70만원의 세를 물린다. 보증금 차액 5500만원(=7500만원-2천만원)에 대해 연이율 15%를 넘게 적용하는 셈이다. 이 정도 월세 이율은 낮은 편에 속하며 통상 연이율로 18%에 이르는 데가 많다. 요즘 은행대출 이자가 대략 연11∼13%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대단히 높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월세 이율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집중 제기됐으며 정부에서도 애초의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정부혁신추진위원회는 최근 회의를 열어 전세금을 월세로 전환할 때의 금리적용 기준을 마련하고 지방정부에 가칭 ‘공정임대료 조정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월세 이율 상한선을 법규로 정한다는 정부 방침에 부정적인 견해도 일부 있다.

주택은행 지식경영팀 임병수 팀장은 “임대차 거래도 원칙적으로 시장기능에 맡겨야 한다”며 월세율상한제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임 팀장은 “월세 이율을 묶을 경우 가뜩이나 침체국면을 면치 못하고 있는 주택경기를 더욱 냉각시킬 수 있으며 그로 인한 피해는 결국 세입자들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시장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은 주택이라는 상품의 특성 및 우리나라 임대차 시장의 독특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단견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월세율 상한을 두는 데서 나아가 월세보증금 상한도 법규로 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송태경 정책위원은 “월세에 대한 적정한 제한(이율 및 보증금 상한)을 둘 경우 오히려 월세에 대한 수요를 늘리고 임대차 시장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임대차 시장이 전세위주로 짜여져 있는 것은 세입자들이 부담이 높은 월세를 꺼려 공급(집주인)만 있을 뿐 수요(세입자)가 없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송 위원은 월세에 대한 안전장치 설정은 임대차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결과적으로 주택건설 촉진으로 선순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월세 이율에 대한 제한을 둘 뿐 아니라 건축비 등에서 산출한 보증금의 상한선도 정해 월세에 대한 수요를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안전장치 마련하면 주택 개념이 바뀐다

우리나라 주택임대차 시장은 어쨌든 서서히 전세에서 월세 위주로 재편되는 추세이다. 선진국 임대차형태로 가고 있는 것이다. 전세의 경우 보증금 부담이 커 자칫 한번 분쟁에 휘말리거나 보증금을 떼일 경우 세입자는 헤어날 수 없는 재산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또 거시경제적으로 보더라도 전세제도는 비생산적인 부문에 자금을 묶어두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송 위원은 월세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해 전세의 월세전환을 촉진할 경우 주택에 대한 ‘소유’ 개념보다 ‘사용’ 개념이 강화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아울러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전세대란이 빚어질 때 허겁지겁 대책을 세우려하기보다 다소 소강국면에 접어든 지금 안전 장치를 마련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0월중 주택임대차시장 동향

  평균월세이용

(월,%)

구분

서울시

광역시

수도권

지방중도시

전체

호가

1.46

1.67

1.55

1.78

1.62

거래가
(연이율)

1.38
(16.6)

1.51
(18.1)
1.45
(17.4)

1.62
(19.4)

1.48
(17.8)

  최근 1개월간 실제 임대차 계약 분포

(단위,%)

구분

전세

보증부월세

월세

서울시

강북

75.0

23.3

1.8

강남

64.9

32.6

2.5

광역시

61.6

32.5

5.8

수도권

67.7

29.9

2.4

지방중도시

66.1

24.9

9.0

전체

66.3

29.7

4.0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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