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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금리, 날갯짓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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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2-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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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의 돈 회수와 경기회복 기대감으로 상승세… 어느 수준까지 오를 것인가

올 초 은행에서 1억원 가까이를 대출받아 집을 산 김아무개(45)씨는 요즘 집값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연리 5.5%대로 돈을 빌렸는데, 최근 은행에서 빠져나간 이자가 전달보다 조금 늘어난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자가 많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월 50만원 미만이라 아직까지 큰 부담이 아니다. 하지만 대출 규모가 커서 금리 상승세가 이어질 경우 앞으로 이자부담이 크게 늘어날까봐 걱정이다. 금리가 1%포인트만 올라도 그는 연간 100만원의 이자를 추가 부담해야 한다. 저금리가 오래 이어질 것이라 믿고 대출을 많이 받아 집을 산 사람들은 김씨와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다.

사진/ 경기 회복 기대감이 일면서 금리가 슬슬 오르고 있다. 한 은행 창구의 모습.(한겨레 김종수 기자)

예금은행의 대출금리도 상승

지표금리인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연 5%를 돌파한 것은 최근의 금리 상승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6월18일 연리 3.95%를 기록하며 한때 4% 이하로까지 떨어졌던 국고채 금리는 12월 들어 5%를 넘어섰다. 6개월 만에 1%포인트 이상 오른 것이다. 12월5일 4.99%를 기록하며 5% 밑으로 다시 내려오긴 했지만, 채권시장의 딜러들은 국고채 금리가 이제 5%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채권시장의 전반적인 금리 상승에 영향을 받아 예금은행의 대출금리도 이미 지난 10월부터 상승세로 돌아섰다. 한국은행은 지난 10월 중 예금은행의 대출 평균금리가 연 6%로 전달보다 0.03%포인트 올랐다고 밝혔다. 은행 대출금리가 상승세를 보인 것은 지난 3월 이후 처음이다. 가계대출 금리의 경우 전체적으로는 10월에도 소폭 하락세가 이어졌지만, 양도성예금증서(CD) 유통수익률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올랐다. 금리는 이제 본격 상승기에 접어들었는가 금리가 오른다면 과연 얼마까지 오를 것인가?

금리가 오르는 데는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중앙은행이 그동안 많이 풀어놓은 돈을 최근 들어 조금씩 회수하고 있는 것이 한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국은행은 지난 7월 이후 콜금리 목표치를 3.75% 수준으로 동결하고 있다. 그러나 LG경제연구원은 12월4일 발표한 ‘최근 자금시장 특징과 바람직한 통화정책 방향’ 보고서에서 “한국은행이 최근 환매조건부 채권(RP) 매도와 통화안정증권(통안채) 발행을 늘리는 방식으로 유동성 흡수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환매조건부 채권을 시장에 매도하면, 그만큼 돈은 중앙은행으로 되돌아간다. 통화안정증권의 발행도 마찬가지 효과를 갖는다. 보고서는 “올 들어 8월 말까지 국제수지 흑자 등으로 국외 부분을 통해 18조원의 본원통화가 시장에 풀린 반면, 통안채 발행이나 환매조건부 채권 매도 등을 통해 환수된 본원통화는 25조원으로 7조원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중앙은행의 시중 유동성 흡수로 인한 금리상승 효과는 시장에서 형성되는 콜금리가 한국은행의 목표치 이상으로 올라가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시장의 콜금리(익일물) 움직임을 보면, 11월 이후 25 거래일 동안 3.75% 이하로 떨어진 날이 나흘뿐이다. LG카드 유동성 위기 등으로 인해, 채권의 주요 수요처인 투신사에서 자금이 많이 빠져나간 것도 금리상승을 부추긴 요인으로 풀이된다.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11월 중 투신사의 단기 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에서 무려 9조1511억원이 빠져나갔다. 투신사 전체로는 12조6500억원이 빠져나갔다.

△ 외환위기 때처럼 금융시장이 마비 상태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회사채 금리는 경제성장률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합한 수준에 수렴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경기 회복 신호 보이자 채권매도

그러나 이런 자금 수급 요인보다 더 금리에 영향을 주는 것은 경기 회복에 대한 시장 참여자들의 기대감이다. 한화증권 채권분석팀 최석원 분석가는 “여러 요인들이 금리 상승에 일조했지만, 결국 수출을 중심으로 경기 회복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이 공격적인 채권 매도와 소극적인 채권 매수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채권값과 금리는 정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채권의 매도세가 강하면 금리는 오르게 된다. 실제로 국고채 금리가 5%를 돌파하는 등 금리 상승세가 가팔라진 것은 10월 산업활동 동향이 발표된 11월 말께였다. 산업활동 동향 통계는 경기선행지수가 5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이는 등 경기 회복 징후가 뚜렷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소비 관련 지표도, 급격한 회복은 아닐지라도 소비가 자율적인 반등 시점에 다가서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과거 경기순환 국면에서 금리의 움직임을 보면 대체로 경기 회복 초기에 금리가 빠르게 오르다 조정을 받은 뒤, 경기가 본격적으로 활황세를 보이면 금리 상승세가 다시 가파라지곤 했다. 경기 회복 초기에 금리가 빠르게 오르는 것은 중앙은행이 불황 때 경기 진작을 위해 금리를 매우 낮은 수준으로 유지한 데 대한 반작용이 한꺼번에 일어나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경기 호황 국면에서 금리가 빠르게 오르는 것은 물가상승률이 가팔라지면서 중앙은행이 선제적으로 콜금리를 올리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대출을 많이 받은 사람들의 관심사는 금리가 어느 수준까지 오를 것인지다. 금리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통계를 보면, 회사채(3년 만기) 금리는 경제성장률과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합한 수준과 비슷하게 움직여왔다. 물론 회사채 금리 수준이 경제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을 더한 수치에 수학공식처럼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외환위기 때처럼 금융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을 때는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였는데도 금리가 폭등했다. 금융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상황에서도 중앙은행의 자금 공급과 시장의 자금 수요에 따라 금리가 좀더 높거나 낮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계산법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올해 성장률은 3% 안팎, 물가상승률도 3%가량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수치를 회사채 금리 계산식에 대입하면, 올해 적정 회사채 금리는 6%가량이다. 실제로는 이보다 조금 낮은 5%대 후반인데, 이는 경기 불황 국면에서 중앙은행이 의도적으로 금리를 낮게 유지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예측 방법으로 보면 내년 회사채 금리는 8% 안팎이 된다.

내년 회사채 금리 8% 예상

경제연구소들이 내년 물가상승률을 올해와 비슷한 3%대로 보고,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잠재성장률 수준인 5% 안팎으로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우리 경제가 4.8%, 한국경제연구원은 4.4%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삼성경제연구소는 4.3%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금융연구원(5.8%)과 LG경제연구원(5.1%)은 5%대의 성장을 점치고 있다. 결국 내년 회사채 금리는 올해 평균 수준보다 2%포인트가량 오른다는 얘기가 된다.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경우, 12월4일 현재 회사채(3년 만기) 금리가 10월 중 주택담보대출 금리와 같은 5.75%이므로, 회사채 금리 수준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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