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테러의 덫에 걸린 세계 경제

488
등록 : 2003-12-10 00:00 수정 :

크게 작게

물류 · 안보비용 증가 · 자본이동 감소… 테러는 국내외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경제학자 케인스는 <평화의 경제적 귀결>이란 책을 통해 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의 화해협력과 평화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21세기 세계는 곳곳에서 벌어지는 테러 공격과 이에 맞선 테러와의 전쟁으로 날을 지새고 있다. 전쟁이 미국과 세계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고, 자본주의의 번영을 위해 전쟁은 불가피하다는 ‘신화’를 주장하는 쪽도 있다. 사실 2차 세계대전처럼 경기회복에 도움이 되는 전쟁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쟁은 인간의 삶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경제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그렇다면 ‘테러’는 국내외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물론 ‘테러의 경제적 귀결’을 정확히 추정하기란 무척 어렵다.

사진/ 2000년 12% 성장했던 전 세계 교역 규모는 9·11 테러 이후 2001년 -2.0%로 줄었다. 뉴욕 세계무역센터 잔해 현장.(AP연합)

9 · 11 뒤 세계교역 2% 줄어

한국은행이 최근 내놓은 ‘높아진 테러 위험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는 테러 공격이 세계 경제에 전쟁보다 더 위험한 ‘새로운 불확실성’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테러 증가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로는 이른바 ‘테러조세’(terrorism tax·안전비용 및 보험료 증가 등) 부담이 늘어나는 양상으로 진행된다. 우선 원유, LNG 등 위험물에 대한 테러 가능성이 높아져 국경을 통과할 때 수송화물에 대한 보안검색이 강화됐다. 이에 따라 운송기간과 대기시간이 장기화되면서 운송 비용도 증가하고, 자연히 국제교역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국경 검색 강화로 상품 가격의 1∼3% 정도 국제교역 비용이 오르고 있으며, 그 결과 국제교역이 2∼9%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구체적으로 OECD가 펴낸 ‘해상운송의 안전’ 보고서는 해상운송 안전을 높이는 데 올해 130억달러가 들고, 이렇게 개선된 보안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해마다 7억3천만달러가 더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다. 테러 공포에 따라 무역 비용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김태경 한국은행 조사역(해외조사실)은 “각국이 수입 물건에 대한 보안검색 시설 통과를 의무화하면서, 이 과정에서 상품의 신선도가 떨어지고 상품가치도 디스카운트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기업들이 무역거래를 할 때 보안과 관련해 추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400억달러에 육박하고, 유럽연합(EU)과 미국이 체결한 컨테이너안전협정으로 인해 유럽 항만들도 보안검색 강화를 위해 추가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실제로 2000년에 12% 성장했던 전 세계 교역 규모는 테러 이후 2001년에 -2.0%로 줄었다.

사진/ 11월9일 100여명의 사상자를 낸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폭탄테러 현장.(AP연합)
데이비드 클로스 교수(미시간대)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재고보관 기간이 물류혁신을 통해 2001년 1.36개월로 줄었는데 9·11테러 이후 보안검색 강화로 인해 1.43개월로 다시 증가했다. 지난 10여년간 재고관리 합리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의 절반을 테러 이후 상실하고 만 것이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특히, 하부구조가 열악한 개도국의 경우 선진국 요구에 맞춰 강화된 보안기준에 맞는 장비를 도입해야 하는 등 운송안전 비용이 크게 증가하면서 테러의 타격을 가장 많이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스리랑카·방글라데시 등 빈곤국은 열악한 재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항구 보안시스템을 개선했고, 아프리카항공수송기구도 회원국의 항공보안 강화를 위해 2700만달러를 투자했다.

테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쪽은 보험회사다. 9·11테러 이후 보험회사들은 화학공장·발전소 등 테러 목표물에 대한 보험료를 평균 30% 올렸다. 테러와 관련된 위험에는 보상범위도 축소했다. 테러 이후 급격한 침체에 직면한 항공산업을 보면, 미국 상위 5개 항공사의 지난해 적자 규모는 10억∼30억달러에 이른다. 이라크 전쟁 기간중에 1억5천만달러의 손실을 입은 아메리칸항공과 9·11테러 이후 2년간 40억달러의 손실을 입은 유나이티드항공은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면서 파산보호 신청까지 냈다.

사진/ 11월12일 서희 · 제마 부대 주둔지에서 20km 떨어진 나시리야 다국적 치안유지군 기지의 경찰관서가 차량폭탄 테러를 받은 직후 불타고 있다.(합참)

국방비 부담, 미국 금리 치솟을 것

테러의 충격으로 세계교역이 둔화될 뿐 아니라 국제금융 측면에서도 자본이동이 줄어들 공산이 크다. 9·11테러 이후 국제기구 및 일부 선진국에서는 거래 자금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각종 조처를 취했다. 국제연합(UN)은 2001년 9월 결의문을 통해 모든 나라는 테러와의 관련성이 의심되는 개인 및 단체의 금융자산을 동결하고 경제적 지원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김태경 한은 조사역은 “국제 펀드들은 소유자가 누구인지 모르게 철저한 비밀 유지를 생명으로 하는데, 테러자금을 색출한다는 이유로 마음대로 펀드 계좌를 들여다보게 되면 각국에서 투자자들이 이탈하거나 대규모 자금이 유출되면서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 원유가격도 ‘테러 효과’로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원유가는 이라크전쟁 직후 7∼8월에 하락했으나 테러가 빈발하기 시작한 이후 큰폭의 상승세가 석달째 유지되고 있다. 두바이유는 12월4일 배럴당 27.84달러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제시한 유가밴드(배럴당 22∼28달러)의 상한선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탈냉전 이후 무기와 탱크를 녹여 쟁기·농기구·공장기계를 만드는 이른바 ‘평화배당’(peace dividend) 시대가 왔지만 테러와의 전쟁 이후 안보 비용이 다시 늘고 있는 점도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OECD는 국방비 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1%, 민간의 안전비용 지출이 GDP의 0.5% 정도 늘어나면 5년 뒤에 경제성장률이 약 0.7%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테러 위험이 적절하게 ‘관리’되지 못하면 교역 및 생산 감소로 경기부진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사진/ 테러 위험으로 인해 각국의 보안검색이 강화되면서 물류비용도 증가하고 있다. 2001년 11월27일 월드컵 본선 조추첨 행사를 앞두고 부산김해공항에서 검색을 하고 있는 경찰특공대.(연합)
테러가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에 따라 테러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진다. 물론 국방산업 수요 증가 덕분에 미국 경기가 회복되고 있기는 하다. 한국은행이 내놓은 ‘최근 이라크 전비 확대가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경제성장(올 2분기 3.3%, 3분기 8.2%)의 절반 이상은 국방비 지출에 힘입은 것이다. 실제로 미국 경제분석국은 국방비 지출이 2분기 성장률 3.3% 중 1.75%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국방비 지출이 더 커지면 미국 재정 적자가 더욱 악화되고 장기금리를 상승시켜 결국 민간투자를 위축시키게 된다. 테러의 성장잠재력 훼손과 관련해, 워싱턴의 Economy.com은 테러 공격으로 향후 10년간 안보 관련 비용이 500억달러 추가 발생하면 실질 경제성장률이 매년 0.18%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내년에 미국 금리가 ‘용인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상승할 가능성도 경고하고 있다. 최항규 한국은행 팀장(해외조사실)은 “경제가 침체됐을 때는 군비 지출이 성장에 기여해 경제회복을 돕지만, 회복세가 뚜렷한 단계에 들어서면 민간투자와 소비도 늘어나기 때문에 전비 지출이 민간투자를 쫓아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미국은 지금 전쟁비용 확대라는 ‘대포’(guns)와 감세·지출 확대라는 ‘버터’(butter) 중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전쟁의 충격이 테러보다 세다

미국 그레고리 헤스 교수(클레어몬트 맥케나 대학)가 지난 10월 내놓은 ‘테러리즘의 거시경제적 귀결’ 논문은 테러와 경제성장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보여준다. 1968년부터 2001년까지 전 세계 179개국에서 발생한 1만2164건의 테러(내전 및 국가간 전쟁을 포함)와 경제성장률 데이터를 실증분석한 이 글에 따르면, 특정 연도에 테러 공격이 발생하면 ‘단기적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경제생활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이 0.5%포인트 줄었다. ‘장기적으로는’ 1인당 국내총생산과 민간소비 성장률이 0.1%포인트 정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같은 시기에 테러, 내전 그리고 전쟁이 발발했을 때 경제성장을 후퇴시키는 효과는 테러 -0.5%, 전쟁 -4.3%, 내전 -1.3%로 나타났다. 내전 및 국가간 전쟁의 경제적 충격이 테러리즘에 비해 더 크고 오래간다는 것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