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녹스를 가짜 휘발유로 볼 수 없다는 법원 판결에도 더욱 강력한 고사작전 펼치다
방귀 뀐 사람이 먼저 성을 내는 이유는? ‘나는 아니다’라고 선수를 치기 위해서다. 그것은 조금 뻔뻔스런 방법이지만, 궁할 때는 가끔 통하기도 한다. 최근 산업자원부가 내놓은 세녹스 대책이 꼭 그 수법을 닮았다.
교통세 논란, 너무 간단히 정리
세녹스를 가짜 휘발유라고 검찰에 고발한 산자부는 최근 “세녹스는 가짜 휘발유라고 볼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자 곤혹스런 상황에 처하게 됐다. 그동안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해 세녹스의 생산·판매를 막아왔는데, 고발과 단속의 논리적 기반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산자부는 애초 잘못 꿴 단추를 풀고 새로 단추를 채워나갈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산자부는 지금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지금까지보다 더욱 강력하게 세녹스를 고사시키기 위해 나서고 있다.
서울지방법원은 지난 11월20일 검찰이 세녹스 제조업자를 석유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사건에 대한 판결에서 제조업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세녹스는 정상적인 연구과정과 국립검사기관의 정밀한 검사를 거쳐 개발되었고, 휘발유로 사칭되어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세녹스라는 별개의 제품으로서 정상적인 유통경로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판매되는 것이다. 나아가 석유제품의 품질을 저하하거나 세금을 포탈하거나 국민의 건강과 환경을 저해할 염려도 없는 정상적인 석유제품이라 할 것이다”고 밝혔다. 비록 1심 판결이긴 하지만, 법원의 이런 판결은 그동안 산자부가 ‘세녹스는 가짜 휘발유’라는 전제 아래 취한 조처들이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었다. 세녹스가 시장에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해 6월의 일이다. 프리플라이트란 한 벤처기업이 만든 이 제품은 메틸알코올 10%, 톨루엔 10%와 석유 정제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을 나름의 기술로 혼합한 것이다. 제조업체는 세녹스를 합법적인 ‘첨가제’로 인가받았다. 첨가제는 휘발유와 달리 교통세가 붙지 않기 때문에 휘발유보다 소비자 가격이 싸다. 논란의 소지는 세녹스가 휘발유에 40%까지 섞어서 쓸 수 있다는 데 있었다. 그동안 첨가제는 휘발유에 소량을 섞어쓰는 것이었지만, 세녹스는 대량으로 섞어쓸 수 있어 대체연료의 성격도 있었다. 그런데도 교통세가 붙지 않아 ℓ당 1300원 안팎인 휘발유보다 300원가량 싼 990원에 판매된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소비자들 사이에 세녹스 열풍이 불고, 정유업자들이 이에 반발하고 나선 것은 당연했다. 세녹스 단속 근거가 도대체 무엇이냐 세녹스는 과연 교통세를 면제할 만한 특성을 지녔는가, 아니면 휘발유와 똑같이 세금을 매겨야 하는 제품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세녹스가 연료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교통세를 완전 면제해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휘발유와 똑같은 교통세를 매겨야 한다는 주장도 딱 부러지지 않는다. 세녹스는 석유 정제과정의 부산물을 부가가치가 높은 연료로 바꾼 제품인데다, 시민단체가 참여한 조사에서 연비가 좋고 휘발유보다 환경친화적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어쨌든 세녹스 출시 당시의 법은 첨가제에 교통세를 물리지 않도록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녹스는 유류 관련 법과 세법을 재정비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문제를 산자부는 간단하게 정리하는 쪽을 택했다. 세녹스를 가짜 휘발유로 규정해 생산과 판매를 못하게 하고, 나아가 휘발유와 똑같은 세금을 매기는 방식으로 대응한 것이다.
산자부는 형사고발만으로 세녹스의 생산이 중단되지 않자, 이른바 ‘용재수급 조정명령’으로 대응했다. 정유회사 등 국내 300여개 석유화학 업체들로 하여금 세녹스 제조 원료를 공급하지 못하도록 명령한 것이다. 이 명령은 세녹스뿐 아니라, 불법 혐의를 받고 있는 세녹스 유사제품 및 가짜 휘발유 모두를 겨냥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프리플라이트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재판이 계류 중이다. 세녹스에 대한 서울지방법원의 이번 무죄 판결은 산자부의 용재수급 조정명령에는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법원 판결은 ‘가짜 휘발유를 제조할 수 있는 원료를 공급하지 말라’는 용재수급 조정명령이 세녹스에는 적용되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산자부가 세녹스 제조를 막기 위해 취한 조처는 이 밖에도 여럿 있었다. 세무 당국에 교통세 등 세금을 징수하도록 한 것이다. 세무 당국은 세녹스 공장 시설을 압류하는 한편, 시설을 공매 처분하려 했다. 그러나 이 또한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광주지방법원은 지난 8월 프리플라이트가 “세금 체납처분 집행을 정지해달라”고 신청한 사건에 대해 교통세와 관련해 세금부과 취소소송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집행을 정지하라고 결정한 것이다. 법적으로 보면, 세녹스는 지난 8월까지는 합법적인 첨가제였을 뿐이므로, 교통세를 내야 하는지 논란의 여지가 많을 수밖에 없다. 서울지방법원도 이번 판결문에서 “피고인(세녹스 제조업자)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세금을 탈루할 가능성이 없다”며 “다만 적용되는 세율에 관하여는 논의가 있을 수 있으나, 적정한 세율을 정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고 피고인들이 적정한 세율이 적용되는 것을 고의적으로 회피하다거나 그 적용을 어렵게 한다고 볼 근거는 없다”고 밝혔다.
원재료 압류 · 검경 합동 단속…
정부는 이런 논란을 피하기 위해 지난 8월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첨가제의 경우 휘발유에 1%까지만 섞도록 규제한 것이다. 이 시행규칙이 문제가 없다면 세녹스는 이제 첨가제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시행규칙 개정 전의 일에까지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특히 프리플라이트쪽이 이 시행규칙에 대해 위헌소송을 제기해,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상태다. 이를 감안하면 세녹스를 단속할 근거는 법적 정당성이 의심받고 있는 ‘용재수급 조정명령’뿐이다.
법원의 무죄 판결 이후 프리플라이트는 11월24일부터 세녹스의 생산과 판매를 재개했다. 프리플라이트 관계자는 “공장을 압류했지만, 일부 시설은 가동이 가능해 그동안의 재고 원료로 하루 40만ℓ가량을 시장에 내놓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유소협회가 이에 반발해 ‘휴업’을 경고하자, 정부는 이를 빌미로 세녹스 고사작전의 수위를 한 단계 더 높였다. 정부는 11월28일 전남 영암군 대불공단에 있는 세녹스 공장에 있는 원재료와 제품을 세금 체납을 이유로 압류 조처했다. 프리플라이트의 대표이사 등을 조세범처벌법에 따른 체납범으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정부는 또 12월부터 검·경 합동으로 세녹스 전담 단속반을 대불공단 주변에 배치해 원료 공급자와 판매업자, 수송업자의 출입을 원천 봉쇄하기로 하는 한편, 세녹스를 판매 중인 전국 42개 판매점에 대해서도 입건 수사를 원칙으로 단속하기로 결정했다. 세녹스는 가짜 휘발유가 아니라는 법원 판결이 세녹스에 대한 압박을 더욱 거세게 만드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강력한 단속으로 세녹스는 판매를 재개한 지 며칠 만에 다시 시장에서 사라지게 됐다. 프리플라이트 관계자는 “산자부 등이 사법부의 판단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며 “산자부 관계자를 공권력 남용 혐의로 형사고발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의지할 곳이라고는 그래도 여전히 법뿐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프리플라이트쪽이 훗날 모든 소송에서 승리할지라도 갈수록 거세지는 정부의 고사작전을 견뎌내고 재기할 수 있을지는 점점 의심스러워지고 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사진/ 세녹스를 가짜 휘발유라고 볼 수 없다는 법원 판결 직후 판매가 재개됐다. 그러나 정부의 더욱 강력한 단속으로 세녹스 판매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류우종 기자)
서울지방법원은 지난 11월20일 검찰이 세녹스 제조업자를 석유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사건에 대한 판결에서 제조업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세녹스는 정상적인 연구과정과 국립검사기관의 정밀한 검사를 거쳐 개발되었고, 휘발유로 사칭되어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세녹스라는 별개의 제품으로서 정상적인 유통경로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판매되는 것이다. 나아가 석유제품의 품질을 저하하거나 세금을 포탈하거나 국민의 건강과 환경을 저해할 염려도 없는 정상적인 석유제품이라 할 것이다”고 밝혔다. 비록 1심 판결이긴 하지만, 법원의 이런 판결은 그동안 산자부가 ‘세녹스는 가짜 휘발유’라는 전제 아래 취한 조처들이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었다. 세녹스가 시장에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해 6월의 일이다. 프리플라이트란 한 벤처기업이 만든 이 제품은 메틸알코올 10%, 톨루엔 10%와 석유 정제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을 나름의 기술로 혼합한 것이다. 제조업체는 세녹스를 합법적인 ‘첨가제’로 인가받았다. 첨가제는 휘발유와 달리 교통세가 붙지 않기 때문에 휘발유보다 소비자 가격이 싸다. 논란의 소지는 세녹스가 휘발유에 40%까지 섞어서 쓸 수 있다는 데 있었다. 그동안 첨가제는 휘발유에 소량을 섞어쓰는 것이었지만, 세녹스는 대량으로 섞어쓸 수 있어 대체연료의 성격도 있었다. 그런데도 교통세가 붙지 않아 ℓ당 1300원 안팎인 휘발유보다 300원가량 싼 990원에 판매된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소비자들 사이에 세녹스 열풍이 불고, 정유업자들이 이에 반발하고 나선 것은 당연했다. 세녹스 단속 근거가 도대체 무엇이냐 세녹스는 과연 교통세를 면제할 만한 특성을 지녔는가, 아니면 휘발유와 똑같이 세금을 매겨야 하는 제품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세녹스가 연료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교통세를 완전 면제해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휘발유와 똑같은 교통세를 매겨야 한다는 주장도 딱 부러지지 않는다. 세녹스는 석유 정제과정의 부산물을 부가가치가 높은 연료로 바꾼 제품인데다, 시민단체가 참여한 조사에서 연비가 좋고 휘발유보다 환경친화적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어쨌든 세녹스 출시 당시의 법은 첨가제에 교통세를 물리지 않도록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녹스는 유류 관련 법과 세법을 재정비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문제를 산자부는 간단하게 정리하는 쪽을 택했다. 세녹스를 가짜 휘발유로 규정해 생산과 판매를 못하게 하고, 나아가 휘발유와 똑같은 세금을 매기는 방식으로 대응한 것이다.

사진/ 11월28일 오후 정부 종합청사 회의실에서 열린 세녹스 관계기관 조정회의에서 참석자들이 회의자료를 바쁘게 검토하고 있다.(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