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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무너진 신용, 바닥난 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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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1-0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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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법·비리 악순환에 만신창이 된 신용금고… 부실의 싹 잘라낼 특단의 조처 절실

(사진/신용금고업계는 구조조정의 개혁과정을 거쳤지만 비리가 끊이지 않는다. 불법대출 사건으로 신용금고의 위신을 또다시 추락시킨 동방금고)
잊혀질 만한 하면 한번씩 터져나오는 상호신용금고의 불법·위규 행위가 한국디지탈라인(KDL) 정현준 사장의 ‘동방상호신용금고 불법대출’ 사건으로 또다시 세간의 도마에 올랐다. 이번 사건을 ‘미꾸라지 한 마리가 일으킨 흙탕물’로 축소해석하는 시각도 있지만 금고 불법행위의 전형적인 사례인 출자자 대출 사건이라는 점과, 금융감독원 현직 국장이 연루됐다는 충격적인 사실 때문에 신용금고업계 전체가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서울의 한 신용금고 사장 ㄱ씨는 동방금고의 비리사건 직후 전화통화에서 “할말이 없다. 고개를 못 들겠다…”며 말끝을 흐렸다. 신용금고연합회 ㅇ아무개 부장은 “업계 전체가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됐다”고 침통스러워했다. 신용금고 검사·감독을 담당하는 금융감독원 직원들도 “금감원의 체면도 말이 아니게 됐지만 신용금고의 앞날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김경길 삼화상호신용금고 사장(신용금고연합회 서울지부장)을 비롯한 서울지역 주요 신용금고 사장들은 지난 10월26일 서울시내 한 음식점에서 만나 간담회 겸 대책회의를 열었으나 무거운 침묵만 흘렀다. 실제로 일선 금고에는 동방 비리에 따른 파장이 적지 않았다. 서울에 있는 동방금고가 아님에도 이름이 같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지역의 동방금고가 예금인출 사태를 겪고 인근 지역에 있는 금고로 불똥이 튄 경우까지 있다.

불법대출은 동방금고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년부터 시행될 예금부분보장제의 상한선이 2천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상향조정(10월17일 당정회의)된 직후 신용금고업계에는 반짝 화색이 돌기도 했다. 예금보장한도가 애초 계획치보다 크게 올라감에 따라 금고에서 예금이 대거 빠져나갈 것이란 걱정이 상당히 불식됐기 때문이다. 경영에 다소 숨통이 트이는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동방금고 불법대출 사건이 터져나오면서 잠깐 동안의 ‘화색’은 ‘사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신용금고업계에선 금고 한 군데의 비리 행위를 갖고 업계 전체를 마치 범죄집단인 양 ‘싸잡아’ 매도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항변하고 있다. 이런 주장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동방금고 외에도 출자자 대출 및 이에 따른 금고 부실로 인한 말썽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출자자 대출을 했다가 들통난 금고는 서울 동방금고를 비롯해 경북 한신, 부산 부일, 광주·서울의 우풍, 충북 신충은금고 등 6개에 이른다. 또 지난해 영업정지된 23개 금고 중 10개 금고에서도 출자자 대출이 적발됐다. 금고가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금융감독 당국에 포착되지 않은 사례도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외환위기 이후 상호신용금고는 어느 금융권 못지않게 강도높은 구조조정 과정을 거쳐 예전에 비해선 대폭 정비된 게 사실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97년 말 231개에 이르던 전국 신용금고 숫자가 올 10월26일 현재 160개로 71개나 줄어들었다. 신용금고의 퇴출, 인수·합병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이미 9개 금고가 영업정지 상태이고 대구·강원지역의 9개 금고가 인수·합병될 예정이어서 조만간 최소 18개가 더 줄어든다. 이를 포함해 연말까지는 대략 30개 안팎의 금고가 문을 닫을 전망이다. 약 3년 만에 신용금고 100개 이상이 문을 닫는 유례없는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셈이다.

금고업계의 이런 구조조정을 뒷받침하는 것은 국민세금이다. 외환위기가 시작된 지난 98년에는 16개 금고에 1조4791억원의 공적자금이 수혈됐다. 이듬해 99년에는 18개 금고에 1조4323억원을 집어넣었다. 올 들어서도 지금까지 예금보험공사의 자회사인 한아름금고에서 경기 대생금고 등 7개 금고에 7156억원의 예금을 대지급해 지금까지 모두 3조627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셈이다. 연말까지 30개 안팎의 신용금고가 퇴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터여서 공적자금 투입 규모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태생적 한계에 도덕적 해이 수시로 노출

이처럼 간단치 않은 구조조정, 개혁 과정을 거쳤음에도 신용금고업계에서 불법·위규 행위가 툭툭 불거져나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여전히 숫자가 많아 출혈경쟁을 하는 탓일까? 근본적인 개혁이 이뤄지지 않은 때문일까.

신용금고의 문제점을 거론할 때 흔히 사채업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태생적 한계가 자주 거론된다. ‘자질’이 모라자는 사채업자들이 공적 성격의 금융기관을 마치 개인금고인 양 이용하면서 부작용이 빚어진다는 분석이다. 동방금고에서도 사채시장에서 거액을 거머쥔 이경자씨가 연루돼 있다. 또 동방금고의 경우 예금의 60∼70%가 전문사채업자의 돈인 것으로 알려져, ‘지역밀착형 서민금융기관’이라는 금고 본래의 기능을 무색케 하고 있다. 금고의 부실은 ‘주인 있는 금융기관’이 도덕적 해이에 빠질 경우 얼마나 위험한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금감원의 정기승 비은행감독국장은 “신용금고 오너가 다른 업종의 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데서 부실이 생기는 게 큰 문제”라고 말했다. 건설사, 벤처회사 등이 신용금고를 소유하게 되고 이들이 금고를 돈줄로 활용(출자자 대출)하면서 탈법이 이뤄지고 결국 해당 금고의 부실화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금고 대주주인 건설, 벤처가 활황을 탈 때는 운좋게 넘어가지만 경영이 악화될 경우 동반부실화를 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동방비리 사건도 신용금고의 부실화 측면으로 한정시켜 설명하면 같은 맥락이다.

상호신용금고법(37조)은 2% 이상 지분을 출자한 주주와 임직원 등에 대한 대출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처벌 수위도 만만치 않다. 출자자 대출로 금고에 손실을 끼친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에 처하고 손실금 전액을 보전토록 하고 있다. 형법상 배임죄보다 훨씬 무거운 벌이다.

그런데도 제3자 명의의 계좌를 이용하거나 다른 신용금고와 짜고 교차로 출자자 대출을 일삼는 편법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주주들이 압도적 지분율을 확보하고 있는 현실에서 마땅한 내부견제장치가 없는 탓이다. 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8개 금고를 빼면 모두 1대주주가 50%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어 아무런 간섭없이 독자경영이 가능하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금융감독 당국의 손길은 미치지 못하고 있다. 우선 일손이 모자란다. 신용금고 검사를 맡는 금감원 비은행검사1국(국장 김중회)에는 40명 안팎의 검사요원들이 있다. 이들 검사요원이 160개에 이르는 금고를 제대로 검사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신용금고간 합병 통해 대형 우량금고로

(사진/신용금고는 명실상부한 지역금융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 신용금고는 저축은행으로 이름을 바꾸고 영업영역을 넓힌다)
김중회 국장은 “동방금고 불법 행위를 포착했을 당시(10월10일) 비은행검사1국에는 검사 요원이 한명도 없었다”고 전했다. 전체 신용금고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점검을 위해 모두 일선 금고에 나가 있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금감원은 부랴부랴 다른 검사국의 검사 요원들을 모아 동방금고 검사에 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형편이 이렇지만 사회 전반의 구조조정 추세에서 조직을 확대, 개편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금고의 소유·경영권이 이전될 때 이를 체크(점검)할 장치가 없다는 것도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신용금고를 처음 세울 때는 인·허가를 받도록 돼 있지만 이미 설립돼 있는 금고를 인수할 때는 1주일 전에 감독당국에 신고만 하면 그만이다. 본래는 소유·경영권 이전도 심사를 받도록 돼 있었지만 지난 98년들어 규제개혁위원회가 규제완화 차원에서 풀도록 요구한 데 따라 바뀌었던 것이다.

금융이 한 나라 경제의 핏줄이라면 신용금고는 ‘실핏줄’이다. 탈법·위규 행위로 곱지 않은 눈길을 받고 있긴 하나 경제의 한 영역에서 나름의 구실이 있다. 금감원 김중회 국장은 “은행 중에도 대형 선도은행 뿐 아니라 소형의 틈새은행이 필요하듯 영세민, 중소기업을 위한 서민금융기관은 여전히 필요한 존재”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서울 ㅎ금고의 ‘누구나 대출’을 좋은 예로 들었다. ‘누구나 대출’은 직원 5∼10명의 소규모 기업, 식당 등 영세 자영업 종사자들을 위한 대출 상품으로 지난해 6월 개발됐다. 1인당 100만원을 대출해주며 월 2만원(연리 24%)의 이자를 적용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13만건(1300억원)의 대출이 이뤄질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시장상인들처럼 자금순환이 하루 단위로 이뤄지는 이들을 위한 일수(日收) 서비스를 취급할 수 있는 곳도 신용금고 같은 서민금융기관 외에 없다. 금감원 비은행감독국의 김준현 과장은 “신용금고가 닥친 난국을 타개하는 유력한 방안의 하나는 금고간 합병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금고간 합병을 통해 대형 우량금고로 거듭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지분율이 분산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특정 개인이 지배하지 않고 이해 관계자가 늘어나면 그만큼 내부의 상호견제와 통제도 쉬워진다. 특히 다자간 합병에선 지분율이 낱낱이 쪼개져 1대주주에 의한 전횡은 상당 부분 차단할 수 있게 된다.

투명한 감시 체제 갖춰야 부실 예방

소유·경영권이 이전될 때 반드시 사전에 심사를 받도록 하는 예전의 장치를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경길 삼화금고 사장은 이와 관련해 “옛날의 제도를 되살린다는 차원이라기보다 없어지지 말았어야 할, 필요한 장치를 회복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소유·경영권 이전에 대한 심사제도의 부활을 주장했다. 신용금고라는 공적 성격을 띤 기업을 인수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미리 자질을 따지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금고가 퇴출될 때 자산 부족분만큼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앞으로도 투입될 예정인 사실이 이런 장치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준다.

신용금고의 탈법 및 이에 따른 부실화 조짐을 미리 발견할 수 있는 네트워크(망) 구축 작업도 절실하다. 현재 금감원이 확보하고 있는 전산망으로는 일선 금고가 컴퓨터에 써넣는 사업보고서만 리얼타임(실시간)으로 점검할 수 있다. 사업보고서가 허위로 기재됐을 경우 속수무책이다. 금융당국과 업계가 협조해 일선 창구에서 여·수신 거래가 일어나는 모든 순간 순간을 점검할 수 있는 전산시스템이 갖춰져야 투명한 감시가 가능하다.

신용금고 영업현황

(단위:억원)

주요 항목

99년 6월

2000년 6월

2000년 9월

총자산

287652

248034

245377

수신

246322

213719

220014

여신

197965

175854

212623

납입자본

16097

15884

17044

자기자본

15730

14326

15078

당기순이익

△16138

△6500

△689

금고 수

204

166

162

신용금고 구조조정 연도별 추이

(단위:금고수)

구분

계약이전

인가취소

합병

잔여기관 수

97년 12월말

-

-

-

231

98년중

4

18

2

211

99년중

6

15

10

186

2000년1~9월

6

10

7

162

16

43

19

-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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