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단협에서 현대차 백기투항했다며 호들갑떠는 재계…노조의 경영참여는 정말 넘을 수 없는 선인가
지난 8월5일 현대자동차 노사 임단협 타결 이후 ‘노조 경영참여’를 놓고 산업현장에 논란이 분분하다. 현대자동차 노사 합의안 가운데 경영참여 부분을 보자. 합의안은 경영의 투명한 공개를 원칙으로 △신기술 도입, 신차종 개발, 공장이전, 기업 양수·양도, 사업의 확장·합병 때 노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심의·의결한다 △판매부진이나 해외 현지공장 건설을 이유로 조합과 공동결정 없이 일방적인 정리해고나 희망퇴직을 실시하지 않는다 △수요 부족을 이유로 국내 생산공장을 일방적으로 축소·폐쇄할 수 없다는 조항을 담고 있다.
90년대 초 ‘신경영전략’에 대응
이에 대해 재계는 “경영 전반에서 노조의 간섭을 받게 되면 경기변동에 따른 탄력적인 인력운용 및 공장 신설·폐쇄가 어려워져 외자유치에 장애가 될 것”이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이동응 상무는 “현대자동차의 경우 경영정보를 노조에 공개하는 차원을 넘어 경영상의 의사결정, 즉 회사를 어디로 옮기고 투자하는 것까지 노조의 간섭을 받게 됐다”며 “노조 경영참여는 기업인의 경영의지를 꺾게 만든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경영참여는 과연 재계의 말대로 “노사관계에서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노동자 경영참여는 주로 학계를 중심으로 논의됐을 뿐 노동현장에서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아왔다. 그러나 90년대 초부터 기업마다 임금체계 개편, 직제 개편, 생산성 향상 운동 등 이른바 ‘신경영전략’을 구사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신경영전략에 따른 노동조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임금·복지·조직강화 사업 외에 경영참여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때 기업의 ‘고유 경영권’으로 여겨졌던 인사조처, 생산량 결정 등에 노조가 참여하는 형태의 경영참여가 시도됐다. 경영참여 유형으로는 △자본참가(우리사주제도 등) △성과참가(성과배분제 등) △의사결정 참가(이사회 참여 등)가 있는데, 의사결정에 노조가 참여하는 방식이 진정한 의미의 경영참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90년대 이후 우리사주제도와 성과배분제도는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의 거부로 인해 실질적인 경영참여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작업방식 개편과 신기술 도입 때 노조가 의사결정에 참여하기로 합의한 사업장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 노사 동수로 구성되는 인사위원회나 징계위원회에 참여하는 수준에서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에는 이런 낮은 수준의 경영참여마저 무력화되고 말았다. 서울산업대 정이환 교수(사회학)는 “외환위기 이후 성과참여, 생산성 향상, 품질개선 활동 같은 사용자가 주도한 ‘생산성 연합’ 방식의 경영참여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반면, 작업방식에 대한 노조의 개입권 중 상당 부분을 사용자쪽이 다시 회수해가는 바람에 노조의 경영참여가 약화됐다”고 말했다. 물론 노동조합도 이에 대응해 경영참여 재시도에 나섰다. 그런데 경제위기 이후 노조의 경영참여 흐름에는 “노조도 경영에 참가해야 한다”는 산업민주주의 논리를 넘어 ‘고용불안’이라는 현실이 깔려 있다. 작업장마다 고용불안이 핵심 이슈로 등장했고, 고용유지를 위해서는 노조가 각종 경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사업장마다 퍼진 것이다. 이번 현대자동차노조의 경영참여 역시 고용불안에서 비롯됐다. 현대자동차노조 박유기 국장은 “1998년 대규모 정리해고 이후 2002년까지 회사의 순이익과 매출액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는데도 회사쪽은 고용조정과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낮은 상태에서 노조가 고용조정에 동의하기는 어렵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동안 생산공장 폐쇄·이전 등 경영조처가 결정된 뒤에 뒷수습하는 방식으로 노조가 고용문제에 대처해왔지만, 이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쪽으로 방침을 바꾼 것이다. 일반 공시사항조차 공개하지 않아
경영참여가 기업별 노조체계를 강화하는 ‘양날의 칼’이란 비판도 노동운동 내부에서 제기된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고용불안이라는 현실 속에서 경영참여를 올해 개별 사업장의 주요 임단협 방침으로 내걸었다. 민주노총이 제시한 경영참여 방식과 수준을 보면 △기업의 경제적·재정적 상황 등 경영정보를 노조에 공개 △노조가 이사회에 서면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필요시 이사회에 참관 △노조 추천 사외이사 및 사외감사를 이사회에 포함 △노조의 회계장부 열람권 보장 △경영계획·생산계획·조직개편 등을 심의·의결하는 노사공동위원회 설치 등이 뼈대다. 경영정보에 대한 접근을 넘어 의사결정 과정에 노조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사실 고용과 직결된 경영사항에 대해 노사합의를 거친다는 ‘고용안정협약’ 수준의 노사합의는 많은 사업장에서 이미 도입돼 있다. 민주노총의 2002년 단체협약 실태조사(225개 사업장)를 보면, 분할·합병·양도 때 노조와 합의 및 협의하는 사업장이 63.3%, 폐업·이전·업종전환 때 노조와 합의 및 협의하는 사업장이 30%, 작업조직 개편 때 노조와 합의 및 협의하는 사업장이 51.8%로 나타났다. 자동차부품업체 발레오만도는 노조가 회사 비용으로 사외감사를 별도로 추천·선임해 경영을 견제할 정도로 비교적 높은 수준의 경영참여를 시행하고 있다.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 이길 사무장은 “회사 매출액이 늘었는데도 회사가 항상 적자라고 말해 노조로서는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기업 투명성 제고를 위해 애초에 우리가 노조쪽 사외이사를 두자고 요구했는데, 회사쪽에서 대신 노조의 사외감사 추천안을 내놓아 서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반면 현대자동차는 일반적인 회사의 공시사항(사업·반기·분기 보고서, 유가증권신고서 등)조차 대외비라며 노조에 제공하지 않아 2000년 단협에서 노조가 ‘경영공개 및 자료제공’ 규정에 ‘증권거래소에 신고하는 내용’을 추가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현대자동차 경영참여 합의에 대해 “회사쪽의 백기투항”이라고 비난하는 재계의 주장은 호들갑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재계는 현행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이하 근참법·옛 노사협의회법)이 이미 상당한 수준의 노조 경영참여를 보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경총 이동응 상무는 “근참법에 따른 분기별 정기 노사협의회만 해도 사용자들은 벅차다”며 “기업의 인사·경영권이 보장되지 못하면 경영이 위축돼 결국 노동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른바 ‘인사·경영권’이란 말은 법적 근거가 있는 개념이 아니다. 사유재산권 개념 역시 물건에 대한 지배권일 뿐 사람에 대한 배타적 명령권은 아니다. 특히 노동계는 “노사협의회는 경영참여기구라고 할 수 없고, 노사협의회에서 회사쪽이 경영정보를 성실하게 공개·협의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한다. 노사협의회가 모양만 갖춘 채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만큼 노사간 단협을 통해 경영참여를 제도화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재벌 오너보다 지분 많은데도…
그렇다면 경영은 기업주가 알아서 하고, 노조는 분배에만 참여해야 하는 것일까?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03년 4월 현재 11대 재벌 총수의 평균지분율은 1.5%(친인척 등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치면 4.1%)에 불과하다. 극소수 지분으로 계열사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 지배권과 의결권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사주조합 노동자들은 재벌 오너보다 더 많은 지분을 갖고서도 노동자대표 이사나 감사를 단 한명도 이사회에 참여시키지 못하고 있다. 1999년 현대자동차 우리사주조합이 전체 주식의 10.74%를 보유해 정주영씨 일가(7.76%)를 누르고 최대주주가 됐지만 경영에는 전혀 참여할 수 없었다.
재계는 “경영실패에 대해 노조가 공동책임을 질 것이냐”고 묻는다. 이에 대해 서울산업대 정이환 교수는 “노동자 경영참여는 노사간에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이를 통해 생산성 향상을 기하는 장치”라며 “노조가 경영 의사결정에 한 주체로 참여한다면 생산성에 따른 책임을 질 수는 있겠지만, 판매부진으로 인해 경영위기가 닥쳤을 때까지 책임지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송태경 정책위원은 “노동자를 배제시킨 일방적이고 폐쇄적인 경영은 회사 경영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이는 노사간 적대적 대립과 갈등을 낳는다. 기업의 존립·성장이 노동자들의 생존 토대인 만큼 노조의 경영참여는 당연하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8월4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 입구에서 김동진 사장(오른쪽)과 이헌구 노조위원장이 노사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악수를 하고 있다.(연합)
우리나라에서 노동자 경영참여는 주로 학계를 중심으로 논의됐을 뿐 노동현장에서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아왔다. 그러나 90년대 초부터 기업마다 임금체계 개편, 직제 개편, 생산성 향상 운동 등 이른바 ‘신경영전략’을 구사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신경영전략에 따른 노동조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임금·복지·조직강화 사업 외에 경영참여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때 기업의 ‘고유 경영권’으로 여겨졌던 인사조처, 생산량 결정 등에 노조가 참여하는 형태의 경영참여가 시도됐다. 경영참여 유형으로는 △자본참가(우리사주제도 등) △성과참가(성과배분제 등) △의사결정 참가(이사회 참여 등)가 있는데, 의사결정에 노조가 참여하는 방식이 진정한 의미의 경영참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90년대 이후 우리사주제도와 성과배분제도는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의 거부로 인해 실질적인 경영참여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작업방식 개편과 신기술 도입 때 노조가 의사결정에 참여하기로 합의한 사업장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 노사 동수로 구성되는 인사위원회나 징계위원회에 참여하는 수준에서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에는 이런 낮은 수준의 경영참여마저 무력화되고 말았다. 서울산업대 정이환 교수(사회학)는 “외환위기 이후 성과참여, 생산성 향상, 품질개선 활동 같은 사용자가 주도한 ‘생산성 연합’ 방식의 경영참여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반면, 작업방식에 대한 노조의 개입권 중 상당 부분을 사용자쪽이 다시 회수해가는 바람에 노조의 경영참여가 약화됐다”고 말했다. 물론 노동조합도 이에 대응해 경영참여 재시도에 나섰다. 그런데 경제위기 이후 노조의 경영참여 흐름에는 “노조도 경영에 참가해야 한다”는 산업민주주의 논리를 넘어 ‘고용불안’이라는 현실이 깔려 있다. 작업장마다 고용불안이 핵심 이슈로 등장했고, 고용유지를 위해서는 노조가 각종 경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사업장마다 퍼진 것이다. 이번 현대자동차노조의 경영참여 역시 고용불안에서 비롯됐다. 현대자동차노조 박유기 국장은 “1998년 대규모 정리해고 이후 2002년까지 회사의 순이익과 매출액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는데도 회사쪽은 고용조정과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낮은 상태에서 노조가 고용조정에 동의하기는 어렵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동안 생산공장 폐쇄·이전 등 경영조처가 결정된 뒤에 뒷수습하는 방식으로 노조가 고용문제에 대처해왔지만, 이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쪽으로 방침을 바꾼 것이다. 일반 공시사항조차 공개하지 않아

사진/ 현대자동차 노사간 임단협 잠정합의가 이루어지자, 8월6일 오전 울산공장 직원들이 정상조업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연합)

사진/ 2001년 7월29일 노동자 경영참가법 제정을 촉구하는 민주노동당 당원들의 시위. 외환위기 이후 낮은 수준의 경영참여마저 무력화되고 말았다.(한겨레 김종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