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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불황의 기나긴 경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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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8-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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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북]

제로시대? 경제평론가인 저자는 한국경제가 지금 성장의 정체와 취업 전선의 붕괴, 소비와 투자의 실종 등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장기 불황으로 가는 문턱에 있다고 진단한다. 금리 제로(0)는 장기 불황을 상징한다. 제로시대에는 예금이 많다는 것이 오히려 골칫거리다. 성장의 한계, 수익성 악화에 직면한 기업들이 한계기업군으로 편입되고, 소비자금융 연체자들이 넘쳐난다. 전망 없는 기업이나 소득 없는 소비자들에게 대출을 확대할 수 없는 노릇이고, 저수지에 고인 물은 많은데 흘려보낼 곳이 없으니 자연히 금리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때 성장의 속도를 조절했던 금리가 점차 불황의 상징처럼 돼가고 있다.

제로시대의 혼돈? 인플레이션은 오랫동안 경험해왔고, 그렇게 될 것이라는 가정 아래 생활설계를 해왔기 때문에 다들 익숙하다. 하지만 디플레이션이라는 가보지 않은 길이 이제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저자는 보잘 것 없는 재개발 대상 아파트와 일부 부동산가격 급등은 “또 다른 코스닥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돈의 가치인 금리가 떨어지고 기업의 가치인 주식도 맥을 못 추고, 연체 급증에 따라 금융기관의 개인담보 대출용 부동산이 시장에 쏟아져나오면 다들 ‘부동산 환상’에서 깨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가격이 끝없이 추락하는 재앙이 곧 닥친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실질소득 감소보다 디플레이션에 따른 자산가치 추락은 기대심리의 좌절 속에 충격이 더 크다.

제로시대에는 무엇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나? 대답은 간단하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최선의 대비책이다. 돈 벌 궁리보다는 오히려 있는 돈이라도 지키는 길을 찾아라. 그러려면 성장기 때와 반대로 행동하라.” 제로금리 시대에는 많든 적든 근로소득이 가장 확실한 생활의 방편이고, 휘발성이 높은 실물자산보다는 디플레이션에 강한 현금자산을 늘리라는, 대부분 알 만한 충고가 이어진다.

<제로시대, 성장신화는 끝났다> 유경찬 지음,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02-511-3495) 펴냄, 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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