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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한국인, 망고에 자지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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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7-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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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주스 열풍에 휩싸인 올 여름 음료시장… 이 낯선 과일이 대박을 터뜨린 이유는 무엇일까

핑클의 이효리가 필리핀 보라카이 해변에서 시원스런 붉은색 의상을 입고 나타난다. 양팔에 들려 있는 바구니에는 탐스런 망고가 가득 차 있다. 짙푸른 바다와 열대의 쪽빛 하늘이 맞닿은 해변풍경 한 구석에 그림처럼 서 있는 야자수 한 그루가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낸다. “어머나 세상에 이런 맛이 있다니? 많고 많은 과일 중에 ○○○망고. 이렇게 맛있는 건 난생 첨이야∼.” 톱가수의 노래실력치고는 그야말로 형편없다. 노래는 갈수록 망가진다(?). “세상에 이런 맛이 어쩜 어쩜 몰라 몰라∼.” 어린애 수준인 가사 역시 유치하기 이를 데 없다. 롯데칠성음료가 내놓은 ‘델몬트 망고’ 광고다.

히트 치자 너도나도 신제품 출시

사진/ 올 여름 음료시장에 때아닌 망고주스 열풍이 불고 있다. 가수 이효리가 필리핀 해변에서 망고를 한아름 안고 있다.
광고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니지만, 1990년에 방송을 탔던 델몬트 오렌지주스 광고 ‘따봉 브라질편’은 광고 사상 최대의 빅히트작이었다. 그러나 정작 오렌지주스 상품보다는 오히려 ‘따봉’이란 말만 히트시켰다고 할 수 있다. 주객이 뒤바뀐 것이라고 할까? 그러나 이번 델몬트 망고 광고는 다르다. 포장인 광고는 극히 단순한 대신 내용물인 망고주스는 일대 붐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올 여름 음료시장은 망고주스 열풍에 휩싸여 있다. 한 음료업체가 “편의점이며 자판기며 찾을 때마다 품절이라서 소비자들을 황당하게 만들고 있는 망고주스”라고 선전할 정도다.


지난 1월 선보인 국내 첫 망고주스 델몬트 망고는 6월10일 5천만캔을 돌파하며 ‘대박 음료상품’ 대열에 들어섰다. 음료 역사상 단기간 최다 판매기록(출시 2년 만에 10억캔 돌파)을 세운 ‘2% 부족할 때’에 버금가는 기록을 세우며 한여름을 질주하고 있다. 국내 망고주스 시장규모를 애초 연간 200억원 정도로 봤던 롯데칠성음료는 망고주스 선풍이 일자 1400억원으로 대폭 늘려 잡았다. 국내 전체 음료시장 규모는 줄잡아 1조원인데 한 품목이 무려 14%를 차지하는, 그야말로 대박이 터진 것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망고주스 상품은 20여 종류를 넘는다. 해태음료는 저과즙 망고음료 ‘쿠바나’에 이어 ‘썬키스트 망고’, ‘썬키스트 후레쉬소다 망고맛’을 잇따라 내놓았다. 남양유업도 망고 선풍을 타고 ‘트로피컬 망고生(생)’을, 건영식품은 ‘가야 망고농장’을, 한국야쿠르트는 ‘망고주스’를 서둘러 시장에 내놓았다. 이에 뒤질세라 동원F&B도 열대과일 음료 ‘타히티’ 시리즈(망고·자몽·키위·파인애플 등 4종류)를 선보였고, 여기에 일화의 ‘망고망고’, 샤니의 ‘스위트망고’가 가세하는 등 올 여름 음료시장은 망고주스 각축장이 된 지 오래다. 남양유업은 올초 출시한 ‘트로피컬 망고생’으로 별 재미를 보지 못하자 최근 ‘우유 속 진짜 망고 과즙 듬뿍’을 급히 내놓고 망고 붐을 타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망고주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망고 아이스바, 망고 아이스크림, 망고 케이크까지 등장했다. 빙그레는 새로운 열대과일 맛을 내걸고 ‘망고아작’을, 롯데제과는 ‘트로피칼 망고’라는 아이스바를 선보였다. 크라운베이커리는 여름 신상품으로 ‘망고 무스케이크’를, 일부 주점에서는 망고 과일소주를 팔고 있다. 호텔에서도 여름 칵테일로 ‘매직 망고 스윙’(그랜드하얏트호텔 로비라운지)을 새로 개발했다.

이효리 광고가 망고 붐을 일으킨 진원지라고 말하는 음료업계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망고주스 열풍의 배경으로 꼽히는 건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이국적인 열대과일이란 점에서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끌고 있다. 여기에 걸쭉하면서 달착지근한 맛에 망고 특유의 향긋한 냄새까지 어우러져 소비자들의 입맛에 불을 당겼다고 할 수 있다.

사진/ 해태음료 ‘쿠바나’, 건영식품 ‘가야 망고농장’, 롯데칠성음료 ‘델몬트 망고’, 남양유업 ‘망고생’및 ‘우유속 진짜 망고과즙 듬뿍’, 한국야쿠르트 ‘망고주스’(왼쪽부터)

이국적인 열대과일의 맛

또 한 가지는 국내 과일주스 시장 상황이다. 매실주스와 제주감귤주스에 이어 과즙음료시장을 지배할 뚜렷한 음료가 없던 참에 망고가 때마침 등장해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업계는 오렌지와 포도의 함량을 퍼센트(%)별로 조절해보기도 하고, 무과당이냐 과당이냐, 알갱이가 들어 있느냐 없느냐, 탄산이 들어가느냐 아니냐 등을 따져 개발 가능한 차별화된 제품을 이미 다 내놓았다. “동치미 국물까지 이미 개발이 끝났다”고 할 정도다. 여기에 매실·쌀·대추·감귤 등 전통적인 주스 제품도 나올 건 다 나왔다. 다들 한물 가고 소비자들이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시점에 망고가 뛰어들어 폭발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비스듬한 타원형 공이 약간 눌린 듯한 ‘동양 과일의 왕’ 망고는 녹색으로 익으면 붉은 듯 노란색을 띤다. 포도, 바나나, 오렌지, 사과, 다음으로 생산량이 많은 세계 5대과일로, 인도가 원산지다. 잘 익은 망고는 맛과 향, 성분에서 말 그대로 ‘태양의 선물’이라고 불린다. 망고 104g(약 반개)에는 열량 70㎉, 탄수화물 17g, 식이섬유 1g, 당분 15g, 그리고 많은 양의 비타민 A·C·D가 함유돼 있다. 특히 푸른잎 야채와 맞먹을 정도의 카로틴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피부 미용과 다이어트에 좋다는 소문도 망고 대유행에 한몫 거들고 있다. 그동안 망고주스를 국내에서 전혀 맛볼 수 없었던 건 아니다. 미미한 수준이지만 몇년 전부터 수입업자들이 외국산 망고주스 완제품을 들여와 편의점과 백화점 수입품 코너를 중심으로 팔고 있었고, 스타벅스 메뉴에도 망고주스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일부 아는 사람만 찾을 뿐이었다.

사진/ 한 슈퍼마켓 진열대에 가득한 망고. 이국적인 열대과일이란 점이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끌고 있다.(류우종 기자)
흥미로운 건 이미 1970년대에 망고가 대중들에게 첫선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요즘 델몬트 광고에서 이효리가 고혹적인 엉덩이 춤을 추며 망고를 외치고 있는데, 지난 77년에도 젊은 여성 탤런트가 나와 엉덩이를 흔들며 망고를 외치는 광고가 등장했다. 일양식품에서 내놓은 드링크 타입의 ‘망과씨’ 광고였다. 그러나 망과씨는 소비자들의 외면 속에 시장에서 금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올 여름 음료업체들끼리 치열한 ‘망고 마케팅’을 벌이고 있지만, 망고주스 ‘개발 경쟁’은 이미 오래 전부터 비밀리에 펼쳐지고 있었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10년 전에 우리가 구아바와 망고 등 열대과일 주스시장을 내다보고 연구·개발에 나섰다. 당시에는 망고과즙 100%에 가까운 제품을 만들려고 시도했는데 망고가 거의 알려져 있지도 않은 때라 거부반응이 많아서 생산단계에서 포기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건영식품도 지난해 새로운 주스상품으로 망고, 홍삼, 키위를 놓고 한창 저울질하다 망고는 아직 시장성이 낮다고 생각해 홍삼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진다.

원료와 입맛의 싸움

현재 망고주스 시장에 불붙은 업체간 한판 다툼은 ‘원료’와 ‘입맛’ 싸움이다. 롯데칠성음료는 “필리핀, 인도, 콜롬비아 등에서 망고 원료를 가져와 테스트했는데 종자 자체가 다르다. 필리핀 산이 우리 입맛에 가장 맞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필리핀산 원료만으로는 부족해 유사한 맛을 가진 다른 나라 망고 원액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반면 건영식품은 “진한 맛을 살리기 위해 망고과즙은 이스라엘산을, 부드럽게 씹히는 망고 알갱이는 필리핀산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망고주스의 망고과즙 함량은 대체로 5~25% 정도다. 망고 함량이 너무 높으면 소비자들한테 어필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건영식품은 망고과즙 46%인 ‘가야 망고농장’을 선보이며 깊고 진한 맛에 승부를 걸고 있다. 거꾸로 해태음료는 과즙이 10% 들어간 ’쿠바나’를 내세워 진한 망고맛보다 시원한 맛을 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 톡 쏘는 느낌을 주는 탄산과 망고맛을 결합한 ‘썬키스트 후레쉬 소다 망고맛’까지 출시했다.

그러나 업계는 콜라, 사이다, 오렌지 등과 달리 망고 붐은 지속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다른 과일주스처럼 망고도 사이클이 있어서 내년이면 다시 수요가 내리막길로 돌아설 것이다. 델몬트 망고를 뒤쫓아 망고주스를 내놓고 있는 업체들은 내년에 결국 시장에서 철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망고주스도 ‘한번 왔다 가는’ 음료가 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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