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당신은 ‘돈’에 대해 아십니까?

469
등록 : 2003-07-23 00:00 수정 :

크게 작게

금융이해력 측정 설문조사에서 한국 청소년들이 미국보다 훨씬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

사상 최대로 늘어난 신용불량자 수가 줄어들 줄 모르고 있다. 은행연합회 발표를 보면, 지난 6월 현재 신용불량자는 322만명으로 전달보다 7만명이 더 늘었다. 경제활동인구(2313만명)의 무려 14%가 신용불량의 나락으로 떨어진 데는 정책을 잘못 편 정부의 책임이 적지 않다. 그러나 돈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당사자의 책임이 더욱 크며, 궁극적인 책임도 당사자가 질 수밖에 없다.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을 하지 않은 채 돈을 끌어다 썼을까? 최근 금융감독원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금융이해력’ 측정 결과는 이에 대한 간접적 대답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금융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무지가 신용불량을 부른다

사진/ 신용불량의 가장 큰 원인은 금융에 대한 무지다. 서울 명동 신용회복지원위원회 사무실에서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하는 신용불량자들.(한겨레 황석주 기자)
금감원은 지난 2000년 미국에서 실시한 금융이해력 측정 설문조사를 우리 실정에 맞게 문항을 바꾼 뒤, 서울 및 수도권 소재 10개 고등학교 학생 1011명에게 풀어보도록 했다. 30문제를 낸 결과 평균 점수는 45.2점이었다. 비슷한 문항으로 조사한 미국에서는 1997년 조사에서 57.3점, 2000년 조사에서 51.9점이 나왔다. 우리나라 고교생의 금융이해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다. 일반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금융에 대한 이해 정도가 고교생보다 얼마나 더 높을까? 여전히 금융사기극이 곳곳에서 쉽게 성공하는 것을 보면 긍정적으로 대답하기가 머뭇거려진다.


고교생들이 비교적 많이 틀린 문항을 한번 보자.

‘대부분의 금융기관 예금은 예금자보호제도에 의해 보호를 받습니다. 다음 중 그렇지 않은 것은 어느 것입니까?’ ①투자신탁회사의 수익증권 ②은행의 정기예금 ③은행의 개인연금신탁 ④증권저축.

고교생의 절반 가까운 47.6%가 ‘④증권저축’으로 답했지만, 정답은 ①번이다. 정답을 제대로 쓴 학생은 34.6%에 그쳤다. 수익증권은 흔히 펀드라고 불리는 상품이다. 투신운용사가 고객의 돈을 채권이나 주식 등에 투자한 뒤 운용실적에 따라 돈을 돌려준다. 투신운용사가 망할 경우 펀드에 남아 있는 재산을 처분해 돌려받는다. 수익증권 외의 상품은 이자가 붙는 금융상품이고, 돈을 맡긴 금융기관이 파산하면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5천만원까지 찾을 수 있다. 이 질문은 그래도 정답을 맞춘 학생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신용카드 이용자 중 만약 카드로 매달 같은 금액을 결제할 때 가장 많은 금융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란 질문에는 고교생의 36.3%가 ‘항상 신용카드 사용금액 청구서의 전액을 결제하는 사람’을 꼽았다. 물론 오답이다. 32.4%만이 정답인 ‘매달 최소금액만 결제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매달 최소금액만 결제하면 결제를 미룬 금액에 대해서는 높은 이자가 붙는다는 사실을 제대로 아는 고교생이 아주 적다는 얘기다.

사진/ 청소년 금융이해력 측정 결과, 화폐관리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낮았으며, 그 다음으로 지출과 부채에 관한 이해도였다. 특히 신용카드 관련 부문의 이해도는 평균 이하였다.(한겨레21)
30문항 중 가장 많은 학생이 틀린 질문도 역시 신용카드와 관련된 것이다. ‘신용카드를 도난당한 뒤 다음날 즉시 도난 신고를 했는데, 도둑이 백화점에서 훔친 신용카드로 200만원어치의 물건을 사버렸다. 카드를 도둑맞은 사람은 얼마를 부담해야 하는가?’ 정답은 ‘즉시 신고했다면 도난카드 1장에 2만원의 보상처리 수수료만 내면 된다’이다. 물론 고교생들은 직장에 다닌 경험도 없고 돈을 빌려본 적도 없기 때문에 정답을 맞히기 어려웠을 것이다.

황금알 낳는 거위는 얼마?

그렇다면 직장인들에게 ‘상호저축은행, 신용카드사, 신용협동조합, 은행 중 어디에서 돈을 빌리는 것이 이자비용이 가장 쌀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얼마나 정답을 맞출까 물론 이자가 가장 싼 곳은 은행이다. 고교생은 이를 맞춘 비율이 28.49%에 그쳤다.

‘이자’와 관련된 질문 중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정답을 맞춘 것도 있다. ‘김만두씨는 25살부터 은퇴자금으로 1년에 500만원씩 저축을 하였고, 동갑내기인 이새우씨는 50살때부터 매년 1000만원을 모으기 시작했다. 둘 다 75살이 되었을 때 누가 더 많은 은퇴자금을 갖고 있을까?’ 정답은 당연히 500만원씩 50년을 저축한 김만두씨다. 저축원금은 이새우씨와 같지만, 김씨가 오랫동안 복리로 저축했기 때문에 이자가 더 많다.

‘그런 쉬운 문제를?’ 하고 반문하는 독자들을 위해 설문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한 가지 재미있을 질문을 해보겠다. 1냥짜리 황금알을 1년에 하나씩 낳는 거위가 있다. 이 거위는 결코 죽지 않는다. 현재 이자율은 5%이고, 금 1냥은 50만원이다. 당신이라면 이 거위를 얼마에 사겠는가? 영원히 죽지 않고 매년 50만원짜리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면 값이 무한대일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속단이다 (답은 기사의 끝에 있다).

고교생들은 물가변동이 자산가격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이해도 매우 부족했다. ‘갑자기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을 경우, 여러분의 저축을 가장 안전하게 보호할 투자방법은 ①5년만기 국채, ②양도성예금증서 ③10년만기 회사채 ④주택 중 어느 것인가?’라는 질문에 정답인 ‘주택’을 꼽은 학생은 38.1%에 불과했다. ‘주택’이 정답인 이유는 물가가 오를 때 주택가격도 함께 오르기 때문이다.

사진/ 우리나라 고교생의 금융이해력은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한 학교의 종례시간.(한겨레 김종수 기자)
비슷한 질문으로 “높은 인플레이션 기간 동안 가장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가정은 ①자녀 없는 젊은 맞벌이 부부 ②자녀 있는 젊은 맞벌이 부부 ③은퇴자금을 저축하고 있는 나이든 맞벌이 부부 ④고정된 은퇴수입으로 살아가는 노인부부 중 누구인가?”라는 문항이 있다. 정답(④번)을 맞춘 고교생은 45.8%이다. 고정된 은퇴수입으로 살아가는 노인부부는 물가가 올라 화폐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가장 큰 타격을 입는다.

신용카드 부문 이해도 평균 이하

자신이 교통사고를 냈을 때 자기 차의 손해를 보상받기 위해 가입해야 하는 보험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상해보험’이라고 잘못 대답한 고교생이 60.44%에 이르고 정답인 ‘종합보험’을 꼽은 고교생이 15.23%에 그친 것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금융교육이 아직 갈 길이 멀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금감원 소비자교육실 송태회 실장은 “화폐관리에 대한 이해도(평균 39.2점)가 가장 낮았으며, 그 다음으로 지출과 부채에 관한 이해도(평균 44.0점)였다. 특히 신용카드 관련 부문의 이해도는 평균 이하였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금융에 대한 이해는 부모의 소득이 높고 교육수준이 높을 수록 우수한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평소 금융거래의 경험이 있느냐가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게 조사의 결론이다. ‘보통예금 통장을 보유한 학생들의 평균점수(47.49점)와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평균점수(38.47점)가 9점 이상 차이가 났고, 용돈을 정기적으로 받는 경우(47.42점)와 그렇지 않은 경우(38.95점)도 9점 가까이 차이가 났다. 신용불량자가 계속 늘어가는 요즘, 자신의 돈관리 방식을 재점검해볼 때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가치: 올해 낳는 황금알은 50만원을 받을 수 있지만, 내년에 낳을 황금알값을 지금 미리 받으려면 1년치 이자(2만5천원)를 빼야 한다. 또 2년 뒤에 낳을 알의 값은 2년치 이자를 빼야 한다. 그런 식으로 앞으로 낳게 될 황금알값을 계산해 모두 더하면 ‘1000만원=50만원/0.05(이자율)’이 된다.




금융이해력 설문 원문 및 해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