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 동원, 자사주 매입 확대, 보험사 주식투자 확대… 단기처방이 큰병 부를 수도 
   
  연기금이 주식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정부가 주식시장의 얼어붙은 투자심리를 녹이기 위해 연기금을 불쏘시개용으로 동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자금여유가 있는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우체국보험기금 등 4개 연기금에서 각각 수천억원씩 조달해 주식투자 전용펀드를 조성했다. 정부는 전용펀드 조성과 함께, 앞으로는 개별 연기금의 주식투자 제약요인을 철폐하고 주식투자로 손실을 봐도 운영자의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하는 등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더욱 촉진할 방침이다. 현재 75개 연기금의 총자산 150조원 가운데 7조원 남짓에 불과한 주식투자 비중을 20조∼30조원으로 확대하겠다는 게 정부의 목표이다.  
  연기금의 목적은 가입자들의 노후생계 보장이다. 따라서 가장 보수적이면서 가장 안정적으로 운용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정부가 손실위험이 가장 높은 주식투자에 연기금이 적극 나서도록 한 것은 그만큼 ‘주가 살리기’ 의지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증시부양책 효과는 여전히 미지수 
   
 
지난 10월18일 발표된 긴급 증시안정대책에서도 폭넓고 강도높은 증시부양 수단들이 담겨 있다. 상장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에 대한 세제상 유인과 재원 확대, 보험사의 주식투자 제한 완화, 개방형 뮤추얼펀드의 조기 허용, 투신사에 대한 추가 유동성 지원 등 지금까지 거론돼온 방안들이 다 나왔다. 정부는 더 나아가, 이렇게해도 주식시장이 흔들릴 경우에는 언제든지 추가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진념 재정경제부 장관은 증시안정대책을 발표한 뒤 기자간담회에서 “자본시장의 안정과 육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시장상황을 예의주시해 심리적 불안 요인 때문에 침체에 빠질 조짐을 보이면 거기에 상응하는 비상 대응방안을 계속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시안정을 위해 모든 정책수단을 다 동원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주식시장은 정부의 정책변화에 가장 민감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정책변수가 쉽게 먹혀들지 않는 시장이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시장개방폭이 확대되면서 정부가 주식시장을 제어할 수 있는 범위는 더욱 줄었다. 따라서 이번 대책도 단기적으로 추가하락을 저지하는 효과를 낼지언정 추세 자체를 반전시키지는 못한다는 게 증시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멜릴린치증권의 임태섭 이사는 “불확실성과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심리 때문에 은행권에만 몰려 있는 자금을 이성적인 판단에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유도해야지 주가를 띄우려고 인위적으로 주식투자자금을 끌어들이는 수요진작책은 부작용만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증시침체기에는 수급조절만으로 증시를 부양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90년 5월에도 주식공급물량 축소, 수요진작을 위한 거래세율 인하와 같은 부양책을 내놓았지만 종합주가지수는 한달 뒤 5.9%, 두달 뒤엔 14.8%까지 떨어졌다. 피데스투자자문의 김한진 상무는 “정부가 어떻게 해서든지 시장붕괴를 방치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여줌으로써 투자심리를 어느 정도 안정시킨 측면은 있다”며 “그러나 금융·기업구조조정의 성과가 가시화되고 증시 바깥의 국내외 거시환경이 뚜렷한 개선 조짐을 보이기 이전에는 침체국면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가 잔뜩 기대를 걸고 있는 연기금과 보험사들도 수요진작책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보험사의 경우 정부가 주식투자한도를 자산대비 30%에서 40%로 늘려주겠다고 했지만 현재 전체 자산 중 주식투자비중은 8%에도 못 미친다. 한도가 모자라 주식투자를 꺼리는 게 아닌 셈이다. 국민에게 책임전가 할 것인가 인위적인 증시부양책은 정책실패와 시장실패의 책임을 국민 전체에 전가할 위험도 뒤따른다. 특히 연기금의 주식투자확대 방안이 그렇다. 정부의 주장대로, 선진국 연기금은 주식시장에서 최대 기관투자가 구실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 연기금의 주식투자비중이 30%를 넘는다. 하지만 미국의 연기금 시장은 사적 기업연금이 주류를 이루는 등 여러 가지로 우리와 다르다. 사회보장 차원의 공적연금 외에 추가적으로 좀더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 조성된 연기금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기업들의 시가배당이 일반화해 있고, 연기금의 경영감시활동이 보장되어 있는 등 주식투자에서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장치가 잘 갖춰져 있다. 이런 제도적 안정장치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국내 연기금들이 주식투자를 확대할 경우 부실이 누적되어 결국 연금 수혜자들의 부담만 늘어날 공산이 크다. 공적연금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민연금이나 공무원연금은 지금도 자산운용과 관련해 원칙을 무시한 정부의 개입으로 부실이 누적되어 있다. 올 들어 8개월 동안의 국민연금 주식투자손실률은 38.5%. 금액으로는 1조2천억원에 이른다. 같은 기간 종합지수 하락률 31.7%보다 훨씬 높다. 기금을 정상적으로 건실하게 운영하지 못한 결과이다. 정부가 주인인 가입자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수익성과 위험을 생각하지 않고, 증시가 침체될 때마다 주식이나 채권을 사들이라고 강요하는 바람에 부실이 커진 것이다. 보험회사의 주식투자 확대방안도 보험계약자들의 이익과는 상충될 소지가 있다. 국내 보험사는 그동안, 자산운용에 따른 손실은 계약자들이 모두 분담하면서도 이익 배분시에는 소수 주주에게만 돌아가는 폐해가 고질화돼 있었다. 특히 재벌계열 보험사들은 계약자의 돈을 마치 계열사 지원을 위한 사금고로 활용하며, 소수 주주의 독단적 경영권 지배와 자산운용이 심각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따라 정부도 지난해부터 보험사의 주주몫과 계약자몫간 차단벽을 조금씩 강화하고 있고, 올해 5월부터는 계열사 투·융자한도를 총자산의 3%에서 2%로 줄이는 등 여러 가지 사금고화 방지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한 증시안정대책에서는 계열사의 주식 투자한도를 총발행주식의 10%에서 15%로 늘려줘, 지금까지 추진해온 보험사 개혁방안과는 오히려 어긋나는 조처를 내놓기도 했다. 권용준 경희대 교수(국제경영학부)는 “증시침체로 금융시스템 자체가 마비될 지경에 놓이면서 다급해진 정부의 사정은 이해가 간다”면서 “하지만 시장규율을 갖추기 위한 개혁정책과는 반대되는 방안까지 동원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자사주 매입에 대한 세제상 유인이나 매입한도 확대, 자사주를 사들인 뒤 소각하는 절차를 간소화해주는 것도 단기적으로 주가안정과 상장기업의 경영권 안정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지만, ‘기업인수합병(M&A)을 활성화해 시장의 힘으로 부실경영을 제거’하겠다는 정부의 구상과는 어긋나는 조처이다. 다시 문제는 구조조정
  더구나 올해 상장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증권거래소 상장기업의 유상증자는 1조8천억원인데 자사주매입물량은 2조5천억원에 이른다. 주식시장이 기업에 자금을 공급한 게 아니라 거꾸로 기업으로부터 공급받은 자금이 더 많다. 기업이익이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등 기업 본연의 생산적 활동에 투자되는 게 아니라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주식시장으로 역류한 셈이다. LG경제연구원은 “실질적인 기업가치 증가를 수반하지 않는 단순한 주식유통물량의 축소와 주당순이익 등 회계지표의 개선을 통해 주가상승은 지속적인 효과를 낼 수 없다”며 “따라서 자사주매입은 반드시 이익을 실현하는 기업으로서 경영성과나 예상실적을 감안할 때 주가가 지나치게 하락한 경우에만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증시불안이 취약한 수요기반 때문만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지난 98∼99년의 직접금융시장 과열을 방치한 결과 증시침체와 자금경색을 어쩔 수 없는 수준에 이르게 했다”며 정책실패를 인정했다. 게다가 이미 외국인들이 하루에도 몇번씩 대세를 들었다놨다 할 정도로 큰 세력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고유가와 반도체가격 하락과 같은 해외변수들은 정부의 재량권 밖이다. 결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증시대책은 국내적으로 노출될 수 있는 위험을 미리 최소화하는 길밖에 없다. 권용준 교수는 “금융·기업구조조정을 철저하게 마무리하고 개혁의지를 일관되게 관철시켜야만 직접금융시장에 대한 국내외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며 “만약 땜질식 처방에만 매달릴 경우에는 급성위기가 만성위기로 굳어져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순빈 기자sbpark@hani.co.kr 
  

(사진/지난 10월16일 국무회의에서의 김대중 대통령과 진념 재정경제부 장관. 경제 현안 때문에 노벨평화상 수상의 기쁨도 퇴색되었다)
지난 10월18일 발표된 긴급 증시안정대책에서도 폭넓고 강도높은 증시부양 수단들이 담겨 있다. 상장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에 대한 세제상 유인과 재원 확대, 보험사의 주식투자 제한 완화, 개방형 뮤추얼펀드의 조기 허용, 투신사에 대한 추가 유동성 지원 등 지금까지 거론돼온 방안들이 다 나왔다. 정부는 더 나아가, 이렇게해도 주식시장이 흔들릴 경우에는 언제든지 추가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진념 재정경제부 장관은 증시안정대책을 발표한 뒤 기자간담회에서 “자본시장의 안정과 육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시장상황을 예의주시해 심리적 불안 요인 때문에 침체에 빠질 조짐을 보이면 거기에 상응하는 비상 대응방안을 계속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시안정을 위해 모든 정책수단을 다 동원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주식시장은 정부의 정책변화에 가장 민감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정책변수가 쉽게 먹혀들지 않는 시장이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시장개방폭이 확대되면서 정부가 주식시장을 제어할 수 있는 범위는 더욱 줄었다. 따라서 이번 대책도 단기적으로 추가하락을 저지하는 효과를 낼지언정 추세 자체를 반전시키지는 못한다는 게 증시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멜릴린치증권의 임태섭 이사는 “불확실성과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심리 때문에 은행권에만 몰려 있는 자금을 이성적인 판단에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유도해야지 주가를 띄우려고 인위적으로 주식투자자금을 끌어들이는 수요진작책은 부작용만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증시침체기에는 수급조절만으로 증시를 부양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90년 5월에도 주식공급물량 축소, 수요진작을 위한 거래세율 인하와 같은 부양책을 내놓았지만 종합주가지수는 한달 뒤 5.9%, 두달 뒤엔 14.8%까지 떨어졌다. 피데스투자자문의 김한진 상무는 “정부가 어떻게 해서든지 시장붕괴를 방치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여줌으로써 투자심리를 어느 정도 안정시킨 측면은 있다”며 “그러나 금융·기업구조조정의 성과가 가시화되고 증시 바깥의 국내외 거시환경이 뚜렷한 개선 조짐을 보이기 이전에는 침체국면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가 잔뜩 기대를 걸고 있는 연기금과 보험사들도 수요진작책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보험사의 경우 정부가 주식투자한도를 자산대비 30%에서 40%로 늘려주겠다고 했지만 현재 전체 자산 중 주식투자비중은 8%에도 못 미친다. 한도가 모자라 주식투자를 꺼리는 게 아닌 셈이다. 국민에게 책임전가 할 것인가 인위적인 증시부양책은 정책실패와 시장실패의 책임을 국민 전체에 전가할 위험도 뒤따른다. 특히 연기금의 주식투자확대 방안이 그렇다. 정부의 주장대로, 선진국 연기금은 주식시장에서 최대 기관투자가 구실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 연기금의 주식투자비중이 30%를 넘는다. 하지만 미국의 연기금 시장은 사적 기업연금이 주류를 이루는 등 여러 가지로 우리와 다르다. 사회보장 차원의 공적연금 외에 추가적으로 좀더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 조성된 연기금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기업들의 시가배당이 일반화해 있고, 연기금의 경영감시활동이 보장되어 있는 등 주식투자에서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장치가 잘 갖춰져 있다. 이런 제도적 안정장치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국내 연기금들이 주식투자를 확대할 경우 부실이 누적되어 결국 연금 수혜자들의 부담만 늘어날 공산이 크다. 공적연금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민연금이나 공무원연금은 지금도 자산운용과 관련해 원칙을 무시한 정부의 개입으로 부실이 누적되어 있다. 올 들어 8개월 동안의 국민연금 주식투자손실률은 38.5%. 금액으로는 1조2천억원에 이른다. 같은 기간 종합지수 하락률 31.7%보다 훨씬 높다. 기금을 정상적으로 건실하게 운영하지 못한 결과이다. 정부가 주인인 가입자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수익성과 위험을 생각하지 않고, 증시가 침체될 때마다 주식이나 채권을 사들이라고 강요하는 바람에 부실이 커진 것이다. 보험회사의 주식투자 확대방안도 보험계약자들의 이익과는 상충될 소지가 있다. 국내 보험사는 그동안, 자산운용에 따른 손실은 계약자들이 모두 분담하면서도 이익 배분시에는 소수 주주에게만 돌아가는 폐해가 고질화돼 있었다. 특히 재벌계열 보험사들은 계약자의 돈을 마치 계열사 지원을 위한 사금고로 활용하며, 소수 주주의 독단적 경영권 지배와 자산운용이 심각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따라 정부도 지난해부터 보험사의 주주몫과 계약자몫간 차단벽을 조금씩 강화하고 있고, 올해 5월부터는 계열사 투·융자한도를 총자산의 3%에서 2%로 줄이는 등 여러 가지 사금고화 방지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한 증시안정대책에서는 계열사의 주식 투자한도를 총발행주식의 10%에서 15%로 늘려줘, 지금까지 추진해온 보험사 개혁방안과는 오히려 어긋나는 조처를 내놓기도 했다. 권용준 경희대 교수(국제경영학부)는 “증시침체로 금융시스템 자체가 마비될 지경에 놓이면서 다급해진 정부의 사정은 이해가 간다”면서 “하지만 시장규율을 갖추기 위한 개혁정책과는 반대되는 방안까지 동원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자사주 매입에 대한 세제상 유인이나 매입한도 확대, 자사주를 사들인 뒤 소각하는 절차를 간소화해주는 것도 단기적으로 주가안정과 상장기업의 경영권 안정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지만, ‘기업인수합병(M&A)을 활성화해 시장의 힘으로 부실경영을 제거’하겠다는 정부의 구상과는 어긋나는 조처이다. 다시 문제는 구조조정

(사진/한때 주가 종합지수 500선이 붕괴된 지난 10월 8일 한 증권사 객장의 시세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