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사의 일방적인 납품단가 인하와 노조활동 와해 압력에 고통받는 하청 노동자들
지난 7월9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국내 최대의 사내하청 노동조합이 결성됐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조합(위원장 안기호)이 노조설립 신고필증을 받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것이다. 조직대상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안에 있는 1만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지난 11일까지 500여명이 조합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진다. 노조 설립 직후 현대자동차쪽은 “이들은 현대차가 직접 고용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 현대차의 사내 하청업체들에 소속된 노동자이기 때문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라는 명칭은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조설립을 주도해온 양준석(울산노동자신문 편집인)씨는 “현대차 비정규직은 말이 하청업체 소속이지 실질적으로 보면 작업과정에서 현대차의 지휘·감독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름이 전혀 문제될 게 없다”며 “하청업체뿐 아니라 현대자동차도 교섭대상”이라고 말했다.
해마다 납품단가 후려쳐
사내 하청노조의 출범과 노조 명칭을 둘러싼 논란은 오래 전부터 한국 경제에 뿌리내린 원·하청간 종속성 문제를 다시 던지고 있다. 특수한 기업관계로서 대기업 원청과 중소 하청업체 사이의 불평등 구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내 하청노조 결성은 기업간 관계라는 관점을 넘어 원·하청 문제를 ‘노동자의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하청 노동자의 처지에서 볼 때 교섭상대는 어쩌면 하청업체보다는 원청이다. 원청이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생존과 노동조건을 사실상 결정짓기 때문이다.
원청에 종속된 하청업체는 크게 사내 하청업체와 사외 하청업체로 나뉜다. 원청으로부터 사실상 지휘·감독을 받는 사내하청과 달리, 외부 협력업체는 독립된 생산설비를 갖고 있는 개별기업이란 점에서 분명히 성격상 차이는 있다. 그러나 ‘하청’이란 말 대신 다소 고상한 ‘협력업체’란 표현을 쓰곤 하지만, 그렇다고 원·하청간 불평등 구조라는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우선 외부 협력업체와 대기업 원청과의 관계부터 보자. 여기서 나타나는 원청의 대표적인 횡포는 일방적 납품단가 인하와 노조활동 방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지난 3월 중소협력업체 247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원청으로부터 불공정 거래를 당했다는 중소기업(전체의 22.3%)들은 ‘매년 단가인하 요구’(43.3%)를 가장 흔한 유형으로 꼽았다. 원자재값이 뛴 만큼 납품단가를 올려줄 생각은커녕 오히려 원청이 납품단가를 해마다 후려치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기업협력팀 장윤성 과장은 “원청 대기업들이 원가절감을 이유로 협력업체에 납품단가를 5∼10%씩 더 깎겠다고 일방 통보하는 게 관행처럼 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인 (주)만도의 한 노동자는 “원청이 만날 물건값을 깎아 회사쪽의 지급여력도 없다. 대기업이야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대신 그만큼 하청의 납품단가를 인하해 부담을 떠넘기면 된다”고 한탄했다. 원·하청 불평등 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바탕에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희생이 깔려 있다는 얘기다. 금속노조연맹에 따르면, 원청인 현대자동차 안에는 전문적으로 납품단가를 인하하는 부품원가관리팀이 구성돼 있다. 여기서 하청업체의 납품단가를 분석한 뒤 해마다 납품단가를 낮춰 책정하고 있다. 금속노조연맹 김호규 사무처장은 “납품비용 절감은 하청 노동자들의 생산성 향상 노력에 따른 결과다. 부가가치는 하청 노동자들이 이룬 것인데도 원청이 멋대로 납품단가를 깎으면서 하청 노동자들을 짜내는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수직적 구조 속에서 원·하청 동반자 관계는 구호에 불과할 뿐, 하청업체는 원청의 얼굴만 쳐다볼 수밖에 없다. 지난해 울산 현대중공업에서는 경비반장 자녀 결혼식에 들어온 1억여원의 축의금을 둘러싸고 말썽이 빚어진 적이 있다. 수많은 현대중공업 납품업체들이 급행료 명목으로 축의금을 갖다바친 것이다. 이렇듯 납품단가가 해마다 떨어져도 납품계약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원청에 상납해야 하는 고리 속에서 협력업체 노동자들한테 돌아갈 몫은 그만큼 더 줄어들게 된다. 한쪽에선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데…
원청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노조활동까지 통제하고 있다. 지난 2월 현대자동차는 단체협상 중인 (주)만도에 공문을 보내 “작년과 같은 일이 재발할 시에는 신차종 참여배제, 양산차종 이원화 등 강력한 제제방법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통보했다. 노조의 단체행동을 사전에 통제하라는 것인데, 생산차질이 생기면 납품 물량을 다른 업체로 돌리거나 신차종 참여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불이익을 주겠다는 협박이었다. 특히 현대자동차는 한 하청업체에 금형을 빌려주면서 대신 임차조건으로 무쟁의를 요구하기도 했다. 파업을 하면 회사가 문닫는 지경으로 몰릴 수 있다고 압박하면서 쟁의를 봉쇄한 것이다. 기아자동차에서도 협력업체 선정기준에 노사관계 평가 항목으로 2점을 배정해놓고 파업이 벌어지면 불이익을 줘온 것으로 드러났다.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관행을 통해 하청 노동자한테 돌아갈 몫을 가로채고, 하청 노동자들이 단체행동에 나서면 납품계약 해지라는 무기로 위협해온 것이다.
사내 하청 노동자는 외부 협력업체 노동자에 비해 원·하청 종속관계에 따른 피해를 더욱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같은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힘들고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신분적 차별’로 인한 저임금과 박탈감, 나아가 인간적 모멸감까지 느끼며 일해야 한다. 현대자동차는 최근 몇년간 사상 최대 순이익을 내면서 해마다 200% 안팎의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다. 순이익이 난 요인으로 수출증가를 들 수 있지만 협력업체의 납품단가 인하나 사내 하청 노동자의 저임금이 기여한 바도 크다. 그러나 성과급 잔치에서 소외된 하청 노동자들은 자신의 처지를 또 한번 깨달으며 한숨만 내뱉을 수밖에 없다. 현대자동차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회사창립일에도 쉴 수 없고, 명절 선물은 물론 경조사 특별휴가에서도 정규직에 비해 차별을 받고 있다. 그러나 원·하청 관계라고 하지만 ‘하청’은 형식에 불과할 뿐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원청에 완전히 종속돼 있다. 무슨 말일까?
사내 하청업체들은 사업자등록증만 갖고 있을 뿐 자기 돈은 거의 투입하지 않고 사람만 원청에 공급하는 인력파견 사업을 하고 있다. 하청 노동자의 모든 작업 과정도 사실상 원청이 지휘·감독·통제한다. 현행법상 제조업종의 근로자 파견행위는 금지돼 있는데도 원청 대기업들이 ‘위장된 도급’ 형태로 불법파견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현대모비스 하청업체인 ㄱ기업의 해고 노동자 이영도씨는 “현대모비스쪽이 작업을 감독하므로 하청업체 사장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하청 사장이 특별히 하는 일도 없다. 원청과 하청 사장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사내 하청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적은 임금으로 더 힘들고 위험한 일을 시키고, 필요할 때 계약해지를 통해 언제든 내쫓을 수 있기 때문에 원청이 불법파견 형태로 사내 하청 노동자를 쓰고 있다는 얘기다. 원청으로부터 사내 하청 노동자 1명당 한달 10만원 정도씩 챙기는 하청업체 사장은 ‘바지사장’에 불과하다.
노동자 내부에서 문제 해결 노력도
사내 하청 노동자나 외부 협력업체 노동자 모두 원청의 계약해지 압박 앞에서는 숨죽일 수밖에 없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사내 하청업체인 삼화산업과 태금산업 노동자들은 그동안 파업 찬반투표 한번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 원청인 포스코가 협력업체와의 계약 약관에 “협력사가 노사간 쟁의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거나 “노동쟁의 등 기타 사정으로 협력작업의 수행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될 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을 강요해왔기 때문이다. 쟁의에 돌입할라치면 어김없이 포스코쪽에서 계약해지 협박공문이 날아오고, 협력업체는 이를 버젓이 공지하면서 노동자들의 침묵을 강요해왔다. 회사쪽은 “포스코에서 계약해지하겠다고 한다. 노조가 조용히 해주는 게 다 같이 사는 길이다“고 주장하고, 그 중간에서 노동조합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흥미로운 건 원·하청 기업간 불평등 관계에서 비롯되는 하청 노동자들의 고통을 노동자 스스로 해결해보자는 흐름이 점차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자동차노조는 지난해 임금협상에서 교섭 사상 처음으로 비정규직 성과금 200% 지급 등을 따낸 데 이어 올 임단협에서는 “사내외 협력업체에 대해 적정한 납품단가를 보장할 것”을 별도 요구안으로 제출했다. 이번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 결성 역시 원·하청 문제 해결을 위한 노동자 내부의 노력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포스코 하청업체 노조의 시위. 광양제철소 사내 하청업체인 삼화산업과 태금산업 노동자들은 그동안 파업 찬반투표 한번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
원청에 종속된 하청업체는 크게 사내 하청업체와 사외 하청업체로 나뉜다. 원청으로부터 사실상 지휘·감독을 받는 사내하청과 달리, 외부 협력업체는 독립된 생산설비를 갖고 있는 개별기업이란 점에서 분명히 성격상 차이는 있다. 그러나 ‘하청’이란 말 대신 다소 고상한 ‘협력업체’란 표현을 쓰곤 하지만, 그렇다고 원·하청간 불평등 구조라는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우선 외부 협력업체와 대기업 원청과의 관계부터 보자. 여기서 나타나는 원청의 대표적인 횡포는 일방적 납품단가 인하와 노조활동 방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지난 3월 중소협력업체 247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원청으로부터 불공정 거래를 당했다는 중소기업(전체의 22.3%)들은 ‘매년 단가인하 요구’(43.3%)를 가장 흔한 유형으로 꼽았다. 원자재값이 뛴 만큼 납품단가를 올려줄 생각은커녕 오히려 원청이 납품단가를 해마다 후려치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기업협력팀 장윤성 과장은 “원청 대기업들이 원가절감을 이유로 협력업체에 납품단가를 5∼10%씩 더 깎겠다고 일방 통보하는 게 관행처럼 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인 (주)만도의 한 노동자는 “원청이 만날 물건값을 깎아 회사쪽의 지급여력도 없다. 대기업이야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대신 그만큼 하청의 납품단가를 인하해 부담을 떠넘기면 된다”고 한탄했다. 원·하청 불평등 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바탕에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희생이 깔려 있다는 얘기다. 금속노조연맹에 따르면, 원청인 현대자동차 안에는 전문적으로 납품단가를 인하하는 부품원가관리팀이 구성돼 있다. 여기서 하청업체의 납품단가를 분석한 뒤 해마다 납품단가를 낮춰 책정하고 있다. 금속노조연맹 김호규 사무처장은 “납품비용 절감은 하청 노동자들의 생산성 향상 노력에 따른 결과다. 부가가치는 하청 노동자들이 이룬 것인데도 원청이 멋대로 납품단가를 깎으면서 하청 노동자들을 짜내는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수직적 구조 속에서 원·하청 동반자 관계는 구호에 불과할 뿐, 하청업체는 원청의 얼굴만 쳐다볼 수밖에 없다. 지난해 울산 현대중공업에서는 경비반장 자녀 결혼식에 들어온 1억여원의 축의금을 둘러싸고 말썽이 빚어진 적이 있다. 수많은 현대중공업 납품업체들이 급행료 명목으로 축의금을 갖다바친 것이다. 이렇듯 납품단가가 해마다 떨어져도 납품계약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원청에 상납해야 하는 고리 속에서 협력업체 노동자들한테 돌아갈 몫은 그만큼 더 줄어들게 된다. 한쪽에선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데…

사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같은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힘들고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신분적 차별’로 인한 저임금과 박탈감, 나아가 인간적 모멸감까지 느끼며 일해야 한다.(한겨레 이정용 기자)

사진/ 경기 안산 반월공단의 한 중소 제조업체. 납품단가가 해마다 떨어져도 납품계약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원청에 상납해야 한다.(한겨레 김종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