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현장조사에 맞서 고위공직자 부동산 투기 사례 공개에 나선 공인중개사협회
‘고위공직자 부동산투기 사례 접수처’. 지난 6월12일 서울 강남역 주변 대한공인중개사협회(회장 김부원·이하 중개사협회) 중앙회 사무실 입구에 이런 공고문이 내걸렸다. 국세청이 5월23일부터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한 세무대책’으로 부동산중개업소에 대한 대대적인 현장조사를 벌이자 맞대응에 나선 것이다.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며 ‘공직자 부동산투기 사례 공개’라는 선정적인 방식으로 맞불을 놓은 까닭은 뭘까? 부동산중개인들에 의한 고위공직자 부동산투기 폭로라는 사상 초유의 사건은 과연 현실화될 수 있는 것일까?
정부의 ‘책임전가’인가
중개사협회 유평호 과장은 이날 “오늘 하루 회원들로부터 두세통의 제보전화가 걸려왔다. 협회 감사실에서 접수된 내용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제보 대상자의 신원을 밝힐 순 없지만 일반인들이 대부분 아는 고위공직자다”고 말했다. 제보한 회원들은 △공개 여부와 공개에 따른 책임은 협회 중앙회가 질 것 △제보자의 신변비밀은 보장해줄 것 등 몇 가지 조건을 단 것으로 알려진다. 중개사협회는 이달 말까지 고위공직자 투기사례를 접수받아 7월 초에 공개할 예정이다. 협회 산하 전국 각 지회에 구체적인 신고요령과 방법을 담은 지침까지 내려보냈다. 중개사협회의 김학환 소장(부동산연구소)은 “조만간 탈세 혐의가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공직자들의 부동산투기에 대한 제보가 많이 들어올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국세청은 부동산시장안정대책에 따라 사상 최대 규모인 3천여명의 조사요원을 투입해 부동산투기를 조장한 혐의가 있는 서울·경기·충청 지역 중개업소 800여곳에 대한 현장입회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중계약서를 작성해 세금을 빼돌리거나 미등기전매 부동산중개 등 불법거래 혐의가 짙은 업소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조사에 나선 것이다. 현장입회 조사는 2인1조로 구성된 국세청조사반이 날마다 부동산중개사무실에 나가 거래 동향을 감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세청 김철민 조사3과장은 “간이의자를 갖다놓고 부동산중개인 옆에 앉아서 거래 동향을 파악하고 있지만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하루종일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주변 다른 업소들도 들러보기 때문에 영업에 큰 방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 “탈세 혐의가 있는 부동산업소들이 주요 대상일뿐 정상적으로 영업을 해왔거나 나이든 영감님들이 하는 업소는 손도 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조사가 시작되자 대상 업소 중 190곳은 이미 문을 닫아버렸다. 소나기를 피해 일찌감치 숨어버린 것이다. 고위공직자 부동산투기 사례 공개라는 극단적인 카드까지 들이대며 반발하고 있는 중개사들은 ‘책임전가’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중개사협회는 “투기 단속이라는 완장을 차고 들이닥쳐 무차별조사를 실시하는 바람에 영업활동을 봉쇄당하고 있다”며 “무등록 ‘떴다방’ 등 거래질서를 문란시키는 투기세력은 따로 있는데도 국세청이 대다수의 선량한 중개사들을 투기꾼으로 몰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부동산값 폭등은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 탓이 큰데도 엉뚱하게 공인중개사를 희생양으로 지목해 책임전가식 단속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개사협회 유평호 과장은 “부동산시장이 과열되면 정부가 연례행사처럼 중개업소들을 한꺼번에 족치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근본대책은 외면하고 중개업소만 타작하는 꼴”이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부동산값 폭등에 대한 정부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 고위공직자 부동산투기 사례를 공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꺼번에 문닫는 ‘동맹파업’도
어찌 보면 그럴 듯한 대목도 있는데, 과연 부동산중개업소는 중개사협회의 주장대로 희생양인 것일까 국세청 김철민 과장의 반박은 간단했다. “가만히 있는 아파트를 부동산중개업자가 끼어들어 몇번씩 사고팔고 하면서 한번 거래할 때마다 몇천만원씩 값을 끌어올리지 않았나. 등기하지 않은 부동산을 몰래 사고팔도록 중개하는 수법으로 세금을 피할 수 있게 도와주고, 이 아파트를 사두면 막대한 프리미엄이 붙는다고 일반인들을 꼬셔 거래를 성사시켜왔다. 중개인들이 부동산값 폭등에 가담해왔음을 보여주는 사실은 많다.”
‘책임전가’ 못지않게 중개사협회가 유독 강조하는 대목은 ‘국민불편’이다. “국세청의 과잉단속이 고객과 국민들의 부동산거래에도 큰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개사협회 유평호 과장은 “국세청 조사가 시작되자 실거래 고객들도 내놓았던 매물까지 거둬들이고 있다. 부동산거래가 마비되면서 집을 구해야 할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했다. 세무조사를 도중에 좌절시키고 단속을 모면하려고 온갖 논리를 동원하고 있는 셈이다. 중개사협회는 각 업소에 세무조사의 부당성을 알리는 표어까지 부착하기로 했다. 그러나 국세청 김철민 과장은 “부동산거래 내역은 등기하면서 국세청에 다 넘어오게 마련이다. 거래 현장에 국세청 조사요원이 있다고 방해받을 이유가 없다. 중개업자들이 괜히 선량한 고객들을 핑계로 대고 있다”고 일축했다.
국민불편이란 논리는 다급해진 중개사협회가 사태의 반전을 꾀하려고 의도적으로 생산해낸 측면이 짙다. 국세청과의 대결 구도가 마치 여론의 향배에 따라 결정될 문제인양 몰아가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세금내기 좋아하는 국민은 없다”는 생각이 은근히 깔려 있다. 집 가진 가구가 전국적으로 54%에 이르는 상황에서 국세청 조사를 환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낙관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단속 중인 800개 업소는 전국 부동산업소(6만여개)의 1.3%에 불과하고, 서울(2만여개)만 봐도 대상업소 564개는 전체의 2.8%밖에 안된다고 밝혔다. 고객불편은 중개업자들이 불순한 의도를 갖고 일부러 과장해 유포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특정 지역의 중개업소들이 한꺼번에 문을 닫는 현상이 뚜렷한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서울 서초구 잠원역 주변을 비롯해 몇몇 지역에서는 한 동네의 중개업소들이 일제히 문을 닫아버리는 ‘동맹파업’을 벌이고 있다. 국세청 김철민 과장은 “특정 아파트단지 부동산업소들이 일제히 문을 닫는 집단행동을 벌이면서 주민들의 불편과 항의를 일부러 유발시키고 있다. 자꾸 시끄럽게 만들어 국세청 조사를 무산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뒤가 구린 중개업소가 담합해서 문닫고 도망치면 정상 영업을 하는 부동산업소들은 오히려 장사가 더 잘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중개사협회쪽은 “우리를 믿고 거래한 고객들의 거래내역이 국세청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처”라는 그럴싸한 말을 동원해 국민들의 ‘응원’을 유도하고 있다.
공직자 투기 사례 과연 공개될까
이런저런 공방이야 어찌됐든, 고위공직자 부동산투기 사례 공개는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부동산중개업법은 ‘중개업자들은 그 직무상 알게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개사협회쪽은 “직무상 비밀유지 조항이 있지만 고위공직자 투기 사례는 처벌을 감수하더라도 꼭 공개할 것”이라고 자못 비장한 결의를 내보였다. 중개사협회 김학환 소장은 “부동산 거래내역은 세무서에 다 통보된다. 이미 사실상 공개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고위공직자의 재산은 다 등록·공개되고 있지 않은가. 공익성이 큰 경우 공개해도 위법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탈세행위 외에 최근 부동산거래로 얼마나 시세차익을 냈는지를 보여주는 단순 거래내역도 공개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이에 대해 중개사협회 감독기관인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공직자 투기 공개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직업윤리를 위반하는 문제도 있고, 그런 사례가 있어도 중간에서 공인중개사가 묵인했거나 방조해 공범일 가능성이 높은데 쉽게 까발릴 수 있겠는가. 공개 운운하는 건 단순한 엄포에 불과하다. 자정결의를 하는 것만이 회원들이 사는 길이라고 중개사협회쪽에 전달했다”고 잘라 말했다. 지금처럼 정부와 투쟁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면 더 강도 높은 단속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한 셈이다. 국세청 김철민 과장은 오히려 “우리야 고위공직자 세금탈루 내역이 공개되면 세수확보 차원에서도 좋은 일 아니냐”고 웃어넘겼다.
국세청은 부동산업소 현장조사는 집값이 안정될 때까지 당분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중개사협회는 “국세청이 애초 6월 중순까지 하겠다던 조사를 무기한 연장으로 바꾼 건 우리에 대해 다분히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무조사 칼바람이 휩쓸고 지나가면 그 어떤 기업도 풍비박산이 될 정도로 막강한 힘을 휘두르는 국세청과 고위공직자 투기사례 공개로 위협하며 맞장뜨고 있는 중개사협회. 이 싸움이 실제로 고위공직자 투기사례에 대한 폭로로까지 치달을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공인중개사협회는 이달 말까지 고위공직자 투기사례를 접수받아 7월 초에 공개할 예정이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김진수 기자)
국세청은 부동산시장안정대책에 따라 사상 최대 규모인 3천여명의 조사요원을 투입해 부동산투기를 조장한 혐의가 있는 서울·경기·충청 지역 중개업소 800여곳에 대한 현장입회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중계약서를 작성해 세금을 빼돌리거나 미등기전매 부동산중개 등 불법거래 혐의가 짙은 업소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조사에 나선 것이다. 현장입회 조사는 2인1조로 구성된 국세청조사반이 날마다 부동산중개사무실에 나가 거래 동향을 감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세청 김철민 조사3과장은 “간이의자를 갖다놓고 부동산중개인 옆에 앉아서 거래 동향을 파악하고 있지만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하루종일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주변 다른 업소들도 들러보기 때문에 영업에 큰 방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 “탈세 혐의가 있는 부동산업소들이 주요 대상일뿐 정상적으로 영업을 해왔거나 나이든 영감님들이 하는 업소는 손도 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조사가 시작되자 대상 업소 중 190곳은 이미 문을 닫아버렸다. 소나기를 피해 일찌감치 숨어버린 것이다. 고위공직자 부동산투기 사례 공개라는 극단적인 카드까지 들이대며 반발하고 있는 중개사들은 ‘책임전가’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중개사협회는 “투기 단속이라는 완장을 차고 들이닥쳐 무차별조사를 실시하는 바람에 영업활동을 봉쇄당하고 있다”며 “무등록 ‘떴다방’ 등 거래질서를 문란시키는 투기세력은 따로 있는데도 국세청이 대다수의 선량한 중개사들을 투기꾼으로 몰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부동산값 폭등은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 탓이 큰데도 엉뚱하게 공인중개사를 희생양으로 지목해 책임전가식 단속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개사협회 유평호 과장은 “부동산시장이 과열되면 정부가 연례행사처럼 중개업소들을 한꺼번에 족치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근본대책은 외면하고 중개업소만 타작하는 꼴”이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부동산값 폭등에 대한 정부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 고위공직자 부동산투기 사례를 공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꺼번에 문닫는 ‘동맹파업’도

사진/ 지난 6월3일 서울 종로구 삼성래미안 모델하우스에 국세청 투기대책반 직원들이 ‘떴다방’감시활동과 분양에 관한 세무상담을 하고 있다.(한겨레 김종수 기자)

사진/ 서울 몇몇 지역에서는 한 동네의 중개업소들이 일제히 문을 닫아버리는 ‘동맹파업’을 벌이고 있다. 문닫은 마포의 한 중개업소.(강재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