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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대우는 악몽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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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1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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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괄인수 추진하는 GM과의 씁쓸한 인연… 독자적 제품 개발 외면한 부실의 뿌리

(사진/지난 5월 대우자동차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참여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GM의 경영진)
동거와 결별을 경험한 두 남녀가 재결합을 추진하는 모양을 지켜보면 일단 불안감이 앞선다. 더욱이 한쪽이 여러모로 심하게 기우는 만남일 때는 이런 불안감은 배가된다. 그뿐인가. 이번엔 동거가 아니라 결혼이다. 살다가 싫으면 쉽게 걷어치울 수 있는 동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결합이다. 과거 동거 기간 중 남자쪽의 행태가 곱지 않았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딸 시집보내는 부모 마음은 천근만근으로 무거워진다.

다른 짝이라도 있으면 오죽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동거했던 옛 남자 외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내키지 않지만 울며겨자먹기로 떠나보낼 수밖에 별다른 뾰족수가 보이지 않는다. 못난 신세를 한탄해야할지, 가난한 부모를 원망해야 할지 예비신부 마음도 천갈래 만갈래로 뒤얽혀 혼란스러울 뿐이다.

잇속만 챙겼던 GM, 불행했던 동거 시절


미국의 포드가 인수포기를 선언한 뒤 대우자동차를 사겠다고 나선 제너럴모터스(GM)의 행보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대우차와 GM의 동거(합작) 경험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과거 경험에 대한 씁쓸한 반추를 미래의 결혼(GM 주도에 의한 대우차 인수·합병)생활에 대한 어두운 전망으로 이어간다면 지나친 비관일까. 자동차업계 전문가들은 GM의 과거 행태나 현재 대우차 매각 과정에서 보여주는 발걸음에서 이런 어두운 전망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대우와 GM간의 인연은 지난 1972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대우자동차의 전신인 신진자동차가 그해 GM에 50% 지분을 넘기면서 회사명을 GM코리아로 바꾼 것이다. 60년대부터 70년대 초반까지 국내 자동차업계 1위 업체였던 신진이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기존 합작 파트너였던 일본의 도요타가 중국의 ‘저우언라이 4원칙’(대만이나 한국과 거래하는 업체와는 사업하지 않겠다) 발표에 자극받아 급작스럽게 철수를 결정한 터라 새로운 협력관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기아는 국내 첫 종합자동차공장인 소하리공장을 지어 엔진을 국산화하고 현대는 여기서 더 나아가 고유모델 포니를 개발하며 한발 앞서나가고 있었다. 반면, GM코리아는 ‘시보레1700’의 부품을 들여다 조립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었는데 오일쇼크가 닥치자 연료소비가 많은 시보레는 현대 포니나 기아 브리사를 당할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GM은 해마다 75만달러의 경영지도료와 매출액의 3%에 해당하는 로열티를 꼬박꼬박 거둬갔으며 GM코리아는 경영난으로 76년 들어 산업은행 관리대상기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산업은행 관리 아래서 회사명이 새한으로 바뀐 뒤에도 GM은 현지화에 큰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의 조성재 연구위원은 “GM이 한국시장에 진출한 것은 기본적으로 내수시장을 목표로 삼은 것이었으며 이런 기본방향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분석한다. 대우자동차를 키워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시장에 진출하는 교두보로 삼는다는 따위의 전망이나 비전은 여러 정황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앞날은 겪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GM의 과거 행태를 볼 때 이는 매우 설득력있는 분석이다.

대우차의 자체 기술력 확보나 제품개발 능력의 향상보다는 GM의 부품을 들여다가 조립하는 경영방식이 수정없이 이어졌던 것이다. (주)대우의 무역 사업으로 출발해, 70년대 들어 부실기업 인수로 몸집을 불려나가던 대우그룹은 78년 새한자동차 지분 50%를 인수하면서 자동차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대우와 GM간의 실질적인 관계맺음은 이때부터라고 볼 수 있다.

조립 경영방식 고수해 92년에 결별

당시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GM과 50 대 50의 합작관계가 유지되고 있던 82년에 경영의 주도권을 잡으면서 회사명을 대우자동차로 바꾸었다. 대우차는 80년 중화학공업 합리화 조처로 이뤄진 국내 자동차산업 복점체제(기아는 중소형상용차 전문업체로 일원화, 승용차는 현대와 새한으로 이원화) 아래서 많은 이윤을 남기기도 했으나 여전히 고유모델이나 독자엔진을 개발하는 데는 소홀했다. 이는 물론 합작파트너인 GM의 반대 때문이었다.

결국 대우차는 GM의 차종을 들여다 부품조립해서 판매하는 전략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도입한 것이 GM의 월드카였던 독일 오펠(GM의 유럽 현지법인)의 카데트였다. 카데트는 한국모델명을 르망으로 하고 내수시장 공략에 나섰으나 내수와 수출에서 모두 계획치를 밑도는 실패의 쓴 경험만 하나 더 추가하고 만다. 자동차업계 전문가들은 르망의 실패에 대해 “주행성보다 조용함과 편안함을 선호하는 한국 소비자들의 취향에 잘 맞지 않았고 대우 협력사들의 기술과 품질 수준이 낮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사업확장 의욕이 남달랐던 김우중 당시 회장은 92년 들어 대모험을 결행한다. 사업확장 및 기술개발에 사사건건 제동을 거는 GM과 결별을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대우와 인연을 끊은 지 8년 만에 GM은 또다시 대우에 접근해오고 있다. 이번엔 합작파트너가 아니라 인수자 자격이다. 그동안 대우차의 처지는 한결 어려워져 있어 인수자와 피인수자의 처지는 더욱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포드가 대우차 인수를 포기한다고 전격 선언(9월15일)한 뒤 GM은 전광석화같이 발빠른 움직임으로 우리 정부나 채권단을 압도하고 있다. 포드쪽의 포기 선언 뒤 정부나 채권단이 핵심을 벗어난 매각실패 ‘책임론’으로 소모적인 논란에 휩싸여 있던 10월7일 GM은 대우차 일괄인수 카드를 불쑥 들이밀었다. GM이 홍콩에 머물고 있던 오호근 당시 대우구조조정추진협의회 의장에게 대우차를 일괄인수하겠다는 의향서(LOI)를 제출한 것이다.

GM의 이런 발표 직전 대우차 주요채권 금융기관 대표들은 모임을 갖고 대우차를 분할매각하기로 의견을 모은 터였다. 일괄매각이 최선이나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방안이라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

이 때문에 GM의 일괄인수 방침은 협상의 주도권을 쥔 뒤 본격적인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입맛대로 인수대상을 선별하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인수의향서에서 밝힌 GM의 기본 방침은 일괄인수지만 대우자동차의 국내외 41개 법인 가운데 국내법인만을, 그것도 선별인수하는 방안이 될 것이란 게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GM이 일괄인수 의향을 밝히면서도 폴란드 FSO공장 등 해외공장이 대상에 포함되는지 여부를 명확히 공개하지 않고 있는 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부실 껴안지 않으려는 선별인수 전략

(사진/대우자동차와 GM의 오래된 악연.대우차는 GM의 소극적지원으로 독자적 생산체계를 뒤늦게 확립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GM의 주된 관심은 한국시장 자체에 국한돼 있다”며 “GM이 자사의 생산 및 판매망과 중복되지 않는 국내법인만을 인수하는 쪽으로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관계자는 “서유럽시장의 경우 GM 계열인 피아트·오펠이 선점하고 있으며 폴란드 내수시장도 피아트가 장악하고 있어 폴란드 FSO공장 등 현지법인을 추가로 인수할 의욕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대우차의 폴란드 FSO공장에서 생산하는 모델과 피아트·오펠의 주력모델은 서로 경쟁관계에 있다.

다른 해외지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과 일본에는 GM이 이미 현지에 합작공장을 설립했거나 현지업체와 대거 제휴관계를 맺고 있고 우크라이나와 우즈베크 공장의 경우 사업성이 높지 않아 인수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다.

GM의 주된 관심이 한국시장 자체에만 있다는 분석은 과거 GM이 보여준 행태와도 맥락이 닿아 있다. 이는 GM인수에 따른 대우차의 앞날, 나아가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에 대한 어두운 전망으로 이어진다.

물론 그동안의 대우차 실패 원인을 온통 GM에만 돌릴 수는 없다. GM과 결별한 뒤에 나타난 대우의 무리한 확장경영도 실패 원인이다. 대우는 GM과 등을 돌린 뒤 내수시장에서 무이자할부판매를 주도하며 시장점유율을 올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한편으로 ‘세계경영’을 표방하면서 세계 각지에 완성차 조립공장과 엔진공장을 건설하고 출혈판매도 불사하는 대량수출 전략을 감행한다. 이런 확장지향 경영은 결국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에 맞닥뜨려 극심한 자금난으로 이어지고 채권단에 의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처해지는 운명에 처해지게 된다.

대우는 자체제품 공백을 최단 기간 안에 메운다는 전략 아래 라노스(96년), 누비라·레간자(97년)에 이어 98년에는 히트 모델인 마티즈를 내놓아 제품공백을 어느 정도 메웠다. 이런 부분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생산·기술 능력 부족의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이는 대우의 강점인 마케팅과 영업능력만으론 극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이었으며 GM과 합작한 기간 중에 뿌려진 씨앗에서 배태된 것이기도 했다. 대우차의 실패 원인이 외견상 양적 신화에 매몰된 대우의 무리한 전략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보다 더 깊은 뿌리는 과거 GM과의 동거에서 찾을 수 있다는 얘기이다.

대우자동차 기술연구소의 김대호 과장은 “지난 92년까지 대우차가 생산한 모든 모델은 GM과 그 자회사들이 개발한 것을 GM쪽이 도입한 것이었다”며 “이 때문에 대우는 제품 또는 모델을 독자적으로 설계·개발할 능력을 갖출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GM에 끌려다니는 협상은 국민적 재앙

(사진/대우자동차의 조기 매각 방침은 자칫 GM에 끌려다닐 빌미가 될 수 있다.대우채권단의 엄낙용 산업은행 총재가 지난 9월18일 대우차 조기 매각 방침을 밝히고 있다)
GM은 지난 10월12일부터 대우자동차 인수를 위한 예비실사 작업을 벌이고 있다. 대우차 및 채권단쪽은 GM이 지난 3월 이미 1차 예비실사를 거친 만큼 이번 실사가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난관이 많다. GM이 제출한 인수의향서는 양해각서(MOU)의 전 단계에 불과해 본계약까지는 갈길이 멀다. GM은 예비실사에 이어 정밀실사를 다시 벌인 뒤 가격산정을 거쳐 채권단과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할 계획이어서 빠른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와 채권단은 GM과 담판을 벌여 대우차라는 거대 기업의 운명을 조만간 결정해야 한다. GM 외에는 마땅한 인수 후보자가 없어 선택의 폭은 매우 좁다. 그렇다고 처리를 마냥 미룰 수도 없다. 대우차 처리가 기업구조조정의 시금석인 양 인식되고 있는 터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다.

정부나 채권단의 이런 처지를 감안하면 ‘헐값 시비’는 한가한 소리라는 핀잔을 듣기 딱 알맞다. 그럼에도 GM에 마냥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선택 폭이 좁은 와중에도 협상력을 발휘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자동차연구소의 조성재 연구위원은 “정부나 채권단이 하한선을 마음속에 그려놓고 (GM이) 그 이하의 조건을 제시할 경우엔 한시적으로 공기업화하는 방안까지 염두에 두고 협상에 임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위원은 “지금까지 대우차 처리를 둘러싼 논의는 주로 금융부실을 어떻게 털어내느냐를 중심으로 이뤄져왔다”며 “자동차산업의 전후방 효과를 감안해 산업정책적인 측면도 고려하는 자세가 아쉽다”고 덧붙였다.

신랑쪽에서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와 굴욕까지 감수해야 하는 결혼이라면 행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결혼’ 그 자체가 ‘행복’의 앞자리에 서는 ‘목적 뒤바뀜’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행복이 결혼에서만 오는 것도 아닐진대.

대우차 매각 작업을 ‘딸 시집보내는’ 차원으로 이해한다면 너무 지나친 단순화일까.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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