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 입김에 속수무책인 세입자들의 분노… 시민단체와 함께 무권리 해소할 법제정 촉구 
 
 
 우리 경제관행에서 비상식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수수께끼 하나. 없는 사람에게는 보이고, 있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비용은? 정답은 ‘상가 권리금’이다. 상가에 세들어 장사를 해보려는 사람에게는 권리금이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지만, 건물주인이 임대상인을 내보낼 때에는 권리금이란 게 없다.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정문 앞 2층 건물 한켠에서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는 이삼수(46)씨는 요즘 ‘파리목숨’이란 어떤 것인지 실감한다. 건물주인 경희재단쪽에서 자리를 비워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내는 바람에 생계 터전을 잃을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건물주가 마음만 먹으면 세입자 거덜내 
   
 
이씨가 지금 있는 자리만큼 목좋은 데를 부근에서 구하려면 적어도 2억원 이상의 권리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이씨가 받을 권리금은 한푼도 없다. 경희재단에서는 줄 수 있는 돈은 임차보증금 9700만원과 이주비 500만원이 전부라고 한다. “지난 96년 12월에 이곳에 들어올 때는 원래 커피숍 주인에게 시설권리금으로 2억6천만원을 줬습니다. 또 2층의 커피숍 바로 옆에 있던 재단 사무실까지 학교쪽에서 임대하라고 요구해 권리금조로 2천만원을 지불했습니다. 여기에다 지난해와 올해 내장공사를 하느라 6천만원 정도를 투자했습니다. 지금 이대로 나가면 3억4천만원을 고스란히 날리는 셈입니다.” 이씨보다 더 딱한 지경에 몰리는 상인들도 많다. 건물주가 부도를 내 주인이 바뀌는 바람에 권리금은 물론이고 임차보증금까지 한푼도 건지지 못하는 경우이다. 특히 IMF 구제금융 한파가 몰아닥친 뒤부터 건설회사나 대형 유통업체들의 잇단 부도로 영세상인들의 이런 피해 사례가 부쩍 늘었다. 영세상인들은 소비가 위축돼 가뜩이나 벌이가 시원치 않은 판에 건물주들이 ‘배째라’며 배짱을 내밀면 속수무책으로 쫓겨나야만 하는 현실이라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서울시 논현동 강남구청 네거리의 나산백화점 뒤편 ‘나산웰비스포츠센터’는 건물주인 나산유통이 지난 97년 11월에 부도를 낸 뒤 채권은행단이 관리를 하다가 얼마 전 경매절차를 거쳐 48억원에 낙찰을 받은 개인에게 넘어갔다. 이 건물 2층에서 93년 미용실을 차려 지금까지 생계를 꾸려온 김동식(53)씨는 요즘 미용실 일보다 “대한민국 법은 법이 아니다”라는 설교(?)를 하러 다니느라 더 바쁘다. 김씨는 “악덕 건물주와 은행, 사채업자끼리 서로 짜서 자기들 잇속만 챙기고 임차인들은 눈뜨고 당할 수밖에 없는데 이게 법이 통하는 사회입니까? 더구나 이번 일을 당하고 보니 현행 법은 건물주가 임차인들에게 의도적으로 사기를 칠 수 있는 권한까지 보장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지상 6층, 지하 5층짜리 나산웰비스포츠센터의 옛 주인 나산유통은 임차인 25명과 스포츠센터 회원 1천여명으로부터 임대보증금 및 회원가입비 90여억원을 받은데다 은행과 사채업자들로부터 100억원 이상의 담보대출을 받았다. 부도를 낸 다음에 나산유통이 임대보증금과 회비를 돌려줘야 할 의무는 면제되고, 담보대출을 해준 은행과 사채업자들은 경매처분대금을 나눠가지고, 새 건물주는 임차인들의 보증금을 ‘나 몰라라’하며 무조건 나가달라고 요구할 뿐이다. 시설투자금 날리기 일쑤… 따로노는 법·관행
  서울 여의도의 거평마트도 사정이 똑같다. 원래 라이프주택 소유였던 이 건물은 94년 라이프그룹이 부도를 내자 거평유통이 경매에 참가해 120억원에 낙찰을 받았다. 거평은 이 상가를 담보로 서울은행과 농협으로부터 490억원을 빌렸고, 한때 계열사였던 새한종금으로부터 400억원의 무담보 대출을 받는 등 모두 890억원의 금융권 빚을 지게 됐다. 49명의 임차상인들로부터 받은 보증금 100억원까지 감안하면, 거평유통은 이 건물을 120억원에 낙찰받아 무려 그 8배에 이르는 1천여억원의 현금을 조달할 셈이다. 그리고 거평은 이 엄청난 남의 돈을 어디에 썼는지 알 수 없지만 98년 초 “갚을 돈이 없다”며 부도를 냈다. 이후 거평마트는 자산관리공사로 넘어가 올해 초 국제입찰을 통해 미국 투자회사 골드만삭스에 200억원에 낙찰됐다. 골드만삭스는 다시 이 건물을 경매에 부치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현재 임차상인들이 100억원의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이 전혀 없다는 것.  
  상인들은 보증금보다 임대계약을 유지할 수 없는 게 더 큰 걱정거리이다. 보통 상가별로 보증금의 약 3배에 이르는 시설투자비가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현행 민법은 임대차계약을 당사자들끼리의 채권·채무관계로 규정한다. 즉 채권자인 임차인은 임대인 이외의 3자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다. 다만 일반주택의 경우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세들어 사는 사람이 다른 담보채권자들보다 우선권을 갖는다. 하지만 상가의 경우 주인이 부도를 내고 달아나 다른 채권자들과 다투면 임차인의 우선변제권을 보장받을 법적 장치가 없다. 이 때문에 건물주가 과실 또는 공의로 임대목적물을 경매에 넘길 경우 세입자가 낸 임대보증금 및 시설투자비를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잔여 임대기간도 보장받지 못한다. 
  정부와 법원에서는 전세등기제도로 임차인들의 권리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부분 건물주들이 담보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우려해 전세등기를 거부하고 있고, 민법은 계약자유의 원칙을 존중하고 있어 주인의 동의없이는 전세등기가 불가능하다. 또 상가건물은 건물의 객관적인 가치를 유지하고 높이는 여러 가지 시설투자비용을 대부분 임차인이 부담을 하는데, 이에 대해 보장해주는 법률규정도 없다. 현행 민법이 ‘시설투자비 상환청구권’을 임차인들에게 부여하고 있지만 이 역시 강행규정이 아니다. 건물주들은 처음 계약서를 쓸 때부터 임차인들의 법적 권리를 포기하도록 특별약정을 요구한다. 아니면 다른 데 찾아보라는 식으로 대응한다. 관행과 법이 따로따로 놀고 있는 것이다. 
   
  절대적 강자의 횡포는 막아야 한다 
   상가임차인들의 이런 무권리 상태를 방치할 수 없어 시민·사회단체가 나섰다. 참여연대, 민주노동당, 녹색소비자연대, 함께하는 시민행동,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등은 지난 10월10일 국회에 ‘상가임대차보호법’ 제정을 요구하는 공동청원서를 냈다.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의 이선근 집행위원장은 “국회에서 400만명으로 추산되는 영세상인들이 건물주의 권한 남용과 횡포에 무방비로 시달리는 현실을 직시하고 하루빨리 심의를 해줄 것”을 요구했다. 실제로 민주노동당과 참여연대가 지난 9월 말부터 가동한 ‘상가임차인 피해상담센터’(02-761-1333, 02-723-5303)에는 하루평균 100건이 넘는 피해사례가 들어오고 있다. 이선근 위원장은 피해유형을 △건물주의 임대료 과다인상 요구 △일방적인 계약해지 △임대보증금과 권리금 미반환 △임대차 분쟁처리해주는 기관의 부재 등으로 나누면서 “반드시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제정되어야 임차인들을 이런 피해로부터 구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법은 상가임차인의 특별한 과실이 없는 한 임대기간을 최장 10년 동안 보장받을 수 있게 하고 건물주가 등기를 거부하더라도 사업자등록이나 부가세납부신고 등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세입자가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갖도록 하고 있다.  
  사실 이 법은 지난 15대 국회에서도 ‘점포용건물임대차보호법’이란 이름으로 논의된 적이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소극적인 자세로 제대로 한번 심의도 못하고 15대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됐다. 다만 당시 법사위는 검토보고서를 통해 “민사관계의 대원칙인 계약자유와 사경제불간섭의 원칙 등에 대해 광범위한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민사법체계의 기본질서를 흔들어놓을 수 있고 사유재산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참여연대 김남근 변호사는 “법은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해주는 차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실질적으로 절대적 우위에 있는 세력이 횡포를 부릴 수 있을 경우에는 약자를 보호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순빈 기자sbpark@hani.co.kr 
   

(사진/보호받지 못하는 상가 임차인들이 권리를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영세상인들)
이씨가 지금 있는 자리만큼 목좋은 데를 부근에서 구하려면 적어도 2억원 이상의 권리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이씨가 받을 권리금은 한푼도 없다. 경희재단에서는 줄 수 있는 돈은 임차보증금 9700만원과 이주비 500만원이 전부라고 한다. “지난 96년 12월에 이곳에 들어올 때는 원래 커피숍 주인에게 시설권리금으로 2억6천만원을 줬습니다. 또 2층의 커피숍 바로 옆에 있던 재단 사무실까지 학교쪽에서 임대하라고 요구해 권리금조로 2천만원을 지불했습니다. 여기에다 지난해와 올해 내장공사를 하느라 6천만원 정도를 투자했습니다. 지금 이대로 나가면 3억4천만원을 고스란히 날리는 셈입니다.” 이씨보다 더 딱한 지경에 몰리는 상인들도 많다. 건물주가 부도를 내 주인이 바뀌는 바람에 권리금은 물론이고 임차보증금까지 한푼도 건지지 못하는 경우이다. 특히 IMF 구제금융 한파가 몰아닥친 뒤부터 건설회사나 대형 유통업체들의 잇단 부도로 영세상인들의 이런 피해 사례가 부쩍 늘었다. 영세상인들은 소비가 위축돼 가뜩이나 벌이가 시원치 않은 판에 건물주들이 ‘배째라’며 배짱을 내밀면 속수무책으로 쫓겨나야만 하는 현실이라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서울시 논현동 강남구청 네거리의 나산백화점 뒤편 ‘나산웰비스포츠센터’는 건물주인 나산유통이 지난 97년 11월에 부도를 낸 뒤 채권은행단이 관리를 하다가 얼마 전 경매절차를 거쳐 48억원에 낙찰을 받은 개인에게 넘어갔다. 이 건물 2층에서 93년 미용실을 차려 지금까지 생계를 꾸려온 김동식(53)씨는 요즘 미용실 일보다 “대한민국 법은 법이 아니다”라는 설교(?)를 하러 다니느라 더 바쁘다. 김씨는 “악덕 건물주와 은행, 사채업자끼리 서로 짜서 자기들 잇속만 챙기고 임차인들은 눈뜨고 당할 수밖에 없는데 이게 법이 통하는 사회입니까? 더구나 이번 일을 당하고 보니 현행 법은 건물주가 임차인들에게 의도적으로 사기를 칠 수 있는 권한까지 보장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지상 6층, 지하 5층짜리 나산웰비스포츠센터의 옛 주인 나산유통은 임차인 25명과 스포츠센터 회원 1천여명으로부터 임대보증금 및 회원가입비 90여억원을 받은데다 은행과 사채업자들로부터 100억원 이상의 담보대출을 받았다. 부도를 낸 다음에 나산유통이 임대보증금과 회비를 돌려줘야 할 의무는 면제되고, 담보대출을 해준 은행과 사채업자들은 경매처분대금을 나눠가지고, 새 건물주는 임차인들의 보증금을 ‘나 몰라라’하며 무조건 나가달라고 요구할 뿐이다. 시설투자금 날리기 일쑤… 따로노는 법·관행

(사진/상가 세입자들은 권리금을 날리고 임대보증금을 떼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골드만삭스의 경매결정으로 임차상인들이 보증금 100억원을 떼일 위헙에 처한 서울 여의도 거평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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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법과 상가임채차보호법 비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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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행 민법의 규정 | 상가부동산임대차보호법 | ||||||||||||||||||||||||||||||||||
| 총론 |   
       상가 게입자의 무권리 상태 방치 건물주 권한남용 및 횡포방치  |  
      
       세입자 대항력 보장 과도한 임대료 통제와 시정조치 세입자 계약갱신청구권 보장 임차인의 비용상환청구권 보장 임대차 분쟁 조정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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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항력 문제 |   
       ▷민법 제621조의 규정이 형식적으로 존재, 경제적 약자인 세입자는 건물주에게 등기청구를 요구하는 것 불가능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없음. 계약기간 안에 건물주가 바뀔 경우, 임대차 존속을 주장할 수 없음  |  
      
       <등기제도 개선과 대항력보장> ▷부가세법 5조의 규정에의한 사업자 등록 및 인도를 마치면 대항력이 발생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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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대료 인상 문제 |   
       ▷과도한 임대료의 인상가능 ▷과도한 임대료 인상에 세입자의 무방비 상태 방치  |  
      
       <과도한 임대료 통제와 시정조치> ▷임대료 최고인상률 대통령령으로 제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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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대차 계약 기간의 보장 | ▷임대차 계약기간 보장 안 됨 |   
       <세입자계약갱신청구권 보장> ▷세입자 계약갱신청구권보장 ▷세입자의 계약의무위반이 없으면, 최장 10년간 임대기간 보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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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대보증금 반환의 문제 | ▷임대목적물이 경매에 들어갈 경우, 임대보증금이 반환 불가능 |   
       <대항력 및 우선변제권> ▷경매시 대항력 및 확정일자를 갖춘 임차인의 보증금 우선 변제 ▷소액보증금에 대한 우선변제권 부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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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대차 분쟁시 처리 부서 | ▷없음 |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설치 | |||||||||||||||||||||||||||||||||
| 권리금 보호 | ▷없음 | ▷민법 제626조가 인정하는 "필요비"와 "유익비"에 대한 임차인의 상환청구권을 강행규정으로 하여 권리금의 실질적 보호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