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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자주국방’이 그렇게 비쌉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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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5-2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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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비 증액’ 주장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우리는 북한보다 군사력이 열세인가

“전우야 전우야 사랑하는 전우야/ 얼굴은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 전우야 전우야 피로 맺은 전우야/ 그 누가 우리들을 여기서 불렀나/ 그것은 조국 그것은 겨레/ 그것은 조국 우리의 겨레/ 그것은 우리의 젊은 젊음이어라/ 사랑하는 전우야.”(군가 <사랑하는 전우야>)

도덕 교과서는 국방을 신성한 국민의 의무라고 강조하지만 경제학은 국방을 공공재(public goods)라고 설명한다. 국방, 치안, 공공시설 같은 공공재는 시장(market)이 공급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공급을 맡는다.

통계수치의 장난


사진/ 훈련 중인 국군. 정부는 국가안보와 경제성장 사이에서 적정 분기점을 ‘선택’해야 한다.(한겨레 이정용 기자)
분단된 우리 현실에서 국방은 매우 중요하다. 누구나 철통같고 물샐 틈 없는 안보를 원한다. 하지만 정부는 한정된 예산으로 나라를 지켜야 하고, 소녀소녀 가장을 도와야 하고, 불쌍한 노인을 챙겨야 하고, 도로를 닦고 다리도 놓아야 한다. 돈 쓸 곳은 많고 쓸 돈은 모자라는 정부는 ‘선택’을 해야 한다.

경제학을 알기 쉽게 설명한 <맨큐의 경제학>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대개 다른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한다.” 철통같은 안보를 위해서는 국방비를 무한정 투입하면 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재정을 운영하면 나라살림이 거덜나기 십상이다. 2차 대전 이후 서구 사회에서는 군비와 경제성장 사이의 적정 분기점이 어디인지를 따지는 ‘대포 vs 버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국가안보와 경제성장 사이에는 상쇄(trade-off)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군 대장 출신들이 대통령을 하던 한국에서는 ‘국방비’에 대한 논의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1990년대 들어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막대한 무기도입 사업에 숨은 검은 거래가 드러났다. 북한의 남침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들었다. 자연히 국방비 증액 주장의 설득력이 떨어졌다.

몇년 동안 한국 국방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8%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국방부는 ‘북한 위협은 물론 미래의 다양한 안보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GDP 3% 이상을 국방비로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며 불만이 대단하다. 국방부는 일본의 국방비가 우리보다 3배 이상 많고, 이스라엘·대만 등 안보위협이 높은 국가의 국방비는 GDP의 평균 7.6%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방부는 GDP 대비 국방예산 ‘비율’과 국방예산 ‘총액’이란 2가지 잣대를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00년을 기준으로 보면, 일본의 국방비(404억달러)는 우리(128억원)보다 많지만 GDP 대비 국방예산 비율은 0.9%다. GDP 대비 비율로 따지면 우리(2.8%)가 일본보다 3배 높다. 이스라엘·대만 등 안보위협이 높은 나라의 평균 국방비가 GDP 대비 7.6%지만, 이스라엘(88억달러), 대만(149억달러)의 국방비 총액은 우리 국방비(121억달러)보다 적거나 조금 높은 수준이다.

남북한 정부 예산에서 국방비 비중을 설명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국방부는 한국 국방비가 재정 대비 16% 수준이고 북한은 30% 수준으로 북한이 2배가량 높다고 주장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0년 북한 GDP 추정결과’에 따르면 북한의 경제규모는 남한의 27분의 1이다. 권위 있는 런던국제문제연구소에 따르면 2000년 한국 국방비(121억달러)는 북한 국방비(21억달러)보다 약 6배 많다.

흔히 통계수치를 객관적 사실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대부분 수치는 자료 작성자가 수많은 사실 중에서 알리고 싶은 것을 선택적으로 가공한 것이다.

미군에게 받기만 했을까

사진/ 국방부는 자주국방을 하려면 국방비를 GDP 대비 3.5%까지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영길 장관(맨 왼쪽)이 5월7일 국방부에서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열었다.(한겨레 이종근 기자)
국방비 증강이 벽에 부딪힌 국방부에게 ‘자주국방’이란 돌파구가 생겼다. 조영길 국방장관은 5월6일 대통령에게 중장기 자주국방계획을 보고하면서 국방예산을 2020년까지 국민총생산(GNP) 대비 3.5% 선까지 증액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주한미군의 철수 가능성을 두고 국내에서 다양한 논의가 일고 있다. 철수를 반대하는 쪽은 주한미군의 가치가 약 140억~259억달러라고 한다. 또 미군 철수의 공백을 메우려면 300억달러가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그럼 한국은 주한미군에게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하는 것일까. 1991년 체결된 제1차 방위비협정(소파 특별협정)에서는 주한미군 총주둔비용 중 미국인 인건비를 제외한 비용의 3분의 1을 한국이 분담하도록 되어 있다. 2002년 한국은 주한미군 분담금으로 4억9천만달러를 부담했다..

또 한국은 (1997년을 기준으로) 방위비 분담금 외에도 약 18억3300만달러에 이르는 직·간접 지원을 주한미군에게 하고 있다. 직접지원 3600만달러는 경계지원 등과 같이 한국 정부의 예산이 들어가는 것이다. 간접지원은 토지 무상공여, 각종 조세 감면, 공공요금 할인, 공항·항만 무상 사용 등 같이 한국 정부의 예산이 직접 지출되는 것이 아니지만, 이 혜택이 없으면 미국이 비용 부담을 해야 한다. 한국은 주한미군에게 약 17억9700만달러어치를 간접지원했다.

미국 기업인들은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is no free lunch)는 말을 자주 한다. 경제생활에서 점심을 얻어먹으면 분명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에게 주한미군은 공짜 점심이 아니다.

국방부는 한국의 군사력이 북한의 75% 수준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부족한 25%를 주한미군이 메워주어서 남북한 군사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나오는 국방비 증액 주장도 주한미군 철수에 대비해 25% 부족한 부분을 빨리 보충해야 한다는 논리에 터 잡고 있다. 아직도 한국은 25%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남북한 군사력 가운데 누가 더 우세할까. 군사력 비교 평가 관련자료가 군사비밀로 묶여 있는 탓에 민간전문가가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하기 힘들다.

군대를 구조조정하지 않고서는…

미국의 조지 A. 애컬로프 교수는 정보가 한쪽에만 있고, 다른 쪽에는 없는 ‘정보의 비대칭’ 연구로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으로 받았다. 애컬로프 교수는 정보의 격차가 존재하는 시장에서는 도리어 품질이 낮은 상품이 선택되는 가격 왜곡 현상이 나타나거나 전체 시장이 붕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거 한국형전투기사업(KFP) 등 군의 대규모 무기수입이 불법로비와 금품수수로 얼룩진 것도 군 당국이 관련 정보를 독점한 탓이다.

군 당국은 납세자인 국민에게 자주국방을 위해 돈을 더 내야 한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한국이 북한보다 6배나 군사비를 쓰는데도 군사력이 열세란 주장은 상식과 맞지 않다. 이런 의문에 대해 국방부는 1960·70·80년대에 북한이 워낙 국방비 투자를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도별 국방비 누계로 따지면 아직도 북한이 더 우세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함택영 경남대 정외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980년대 말에 남한은 국방비 투자비 누계만으로도 북한의 투자비와 운영유지비 누계 추정치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한 군사전문가는 “북한보다 군사비가 많은데도 한국 군사력이 열세라면 그동안 쓸 곳에 제대로 못 쓴 탓이다. 그 원인은 △대규모 지상군 위주의 비효율적 인력구조 △군마다 유사기능 부대 중복 편성 △군 수뇌부의 경영 마인드 부재 △중장기 안보전략 부재 등이다. 이런 비효율적인 구조를 구조조정하지 않고 돈만 더 쓴다고 자주국방을 이루기 어렵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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