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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햄버거를 보면 환율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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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5-0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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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의 ‘빅맥 지수’와 함께 환율의 적정 수준을 따져본다

지난 1997년 말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은 것은 정부가 원화를 지나치게 고평가 상태로 묶음으로써, 그것이 경상수지 적자와 외환보유고 감소를 부른 것도 한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 많다. 당시 정부가 원화를 고평가 상태로 유지한 것은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1996년)이라는 정치적 상징 확보에 너무 집착했기 때문이었다는 게 정설로 돼 있다.

원화가 고평가돼 있던 상황에서 1997년 하반기 들어 대기업의 연쇄부도로 금융기관 부실이 확대되자 외국인 투자가들은 우리나라에서 돈을 앞다퉈 빼갔다. 환율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정부는 그해 11월20일 상하 2.25%로 제한돼 있던 환율 변동폭을 10%로 확대하고, 이어 12월16일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정책권고를 받아들여 환율의 변동폭을 완전 폐지했다.

우리나라는 적정수준


일러스트레이션/ 박현미
환율이 시장에 의해 자율적으로 결정되도록 한 이런 조처는 달러당 1800원선까지 치솟던 환율을 어느 정도 안정시켰다. 이후 원-달러 환율은 1100~1350원에서 움직이고 있다. 외환위기 전 800~900원에 머물던 것과 비교하면 달러당 300원가량 높아진 것이다. 이런 환율 수준은 과연 적정한가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1986년부터 발표하고 있는 ‘빅맥지수’는 각국 통화의 적정 평가 여부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시도다. 빅맥은 세계 120여개국에서 판매되고, 품질과 크기, 재료가 세계적으로 표준화돼 있다. 환율은 해당 통화의 구매력 수준을 반영한다는 이른바 구매력 평가설에 따르면, 빅맥 햄버거 값은 어느 나라에서나 같아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빅맥 햄버거 값이 3달러고, 원-달러 환율이 1천원이라면 우리나라에서 빅맥 값은 3천원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빅맥 값이 3300원이라면, 이는 원화가 고평가돼 있음을 뜻한다. 적정환율은 1100원(3300원/3달러)인데, 시장 환율이 1천원이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각국에서 팔리는 햄버거 값을 달러로 환산해 비교해보면 각국 통화의 고평가, 저평가 여부를 계산할 수 있다는 게 빅맥지수에 깔린 발상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올해도 지난 4월24일치에 빅맥 값(4월22일 기준)으로 따져 각국 통화의 고평가, 저평가 여부를 계산해 발표했다. 미국의 4개 도시에서 팔리는 빅맥 햄버거 값은 평균 2.71달러, 우리나라에서는 2.63달러(3300원)였다. 빅맥 값이 우리나라에서 조금 싸기는 하지만, 달러당 1220원인 원-달러 환율은 적정 수준(1218원)에 아주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빅맥지수는 원-달러 환율에 어떤 신호를 보냈을까 1998년 4월 원-달러 환율이 1474원일 때, 빅맥지수는 원화가 31%나 저평가돼 있다고 평가했다. 1999년 환율이 1235원으로 떨어지자 1% 정도 고평가돼 적정수준이라고 보았다. 2000년에는 환율이 1108원으로 지금보다 크게 낮아지자 적정수준보다 8%가량 고평가돼 있다는 게 빅맥지수가 내린 결론이었다. 지난해 4월의 경우 조사시점의 환율이 1304원이었는데, 이때는 원화가 5% 저평가됐다고 보았다. 대체로 1999년 이후 우리나라 환율은 1200~1250원이 적정수준이라는 게 빅맥지수의 결론이었다.

그러나 빅맥지수가 평가한 다른 나라 통화가치는 ‘적정’수준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올해 빅맥지수로 본 적정환율을 보면, 스위스 프랑이 69%나 고평가돼 있고, 덴마크 크로네는 51%, 스웨덴 크로나는 33%, 영국 파운드는 16%가량 고평가돼 있다. 반면 중국(위안, -56%), 말레이시아(링기트, -56%), 홍콩(홍콩 달러, -46%), 싱가포르(싱가포르 달러, -31%), 대만(대만 달러, -26%) 등 우리나라와 수출경쟁을 벌이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는 아주 저평가돼 있다. 이런 현상은 지난해에도 마찬가지였다.

경상수지가 환율에 가장 큰 영향

빅맥지수를 이용한 통화가치 평가는 어느 정도나 믿을 만한가 햄버거가 비만을 부추기는 원흉으로 지목돼 판매량이 떨어지면서 맥도널드가 가격할인 전략을 쓰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이로 인해 빅맥지수는 그저 심심풀이로 보는 지표로 권위가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요즘엔 세계적으로 ‘뜨고’ 있는 스타벅스의 카페라테 값으로 환율을 적정 여부를 판단하는 ‘카페라테 지수’도 새로 등장했다. 그러나 홍익대 전성인 교수는 “맥도널드가 지역에 따라 특별한 가격정책을 쓰는 경우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한다면 빅맥 값으로 평가한 통화가치 평가는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론적으로 환율의 적정수준을 계산해낼 수 있다고 해도 환율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일은 없다.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어느 순간 한쪽으로 급격히 쏠릴 수 있기 때문에 자유변동환율제 아래서 환율은 큰 폭으로 출렁거리곤 한다. 환율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경상수지, 생산성 등인데, 그 중에서도 경상수지가 가장 큰 영향을 준다. 경상수지는 그 나라가 해외에서 경제활동을 통해 얼마나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지 반영하는 것이고, 경상수지에 따라 외환의 수요와 공급이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경제활동을 하면서 환율변동에 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라면, 북한 핵문제만이 아니라 올 들어 적자로 돌아선 경상수지 추이도 눈여겨봐야 할 일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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