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 삭스의 (주)진로 법정관리 신청 파문…컨설팅해준다며 기업정보 이용해 채권 사모은 의도는?
세계적인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지난 4월3일 기습적으로 (주)진로에 대한 법정관리를 신청한 뒤 양쪽의 해묵은 대립이 갈 데까지 간 최후의 결전양상으로 접어들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법정관리 신청은 1조600억원대의 대규모 외자유치 계약을 눈앞에 둔 진로가 “이제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발표하면서 흥분에 들떠 있던 직후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법정관리가 받아들여지면 진로의 외자유치는 실패로 돌아갈 공산이 크고, 이는 ‘화의중지-법정관리-제3자 매각 또는 청산’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이어질 수 있다. 골드만삭스는 국내 첫 화의(법원 중재에 따른 채권변제 유예 및 기업 회생절차)기업인 진로의 해외 채권자다. 진로의 96개 채권자(국내 68개, 외국 28개) 가운데 채권액을 가장 많이 보유(약 18%로 추정)하고 있다. 외자유치를 코앞에 두고 골드만삭스가 법정관리 카드를 동원해 치고나선 내막은 무엇일까?
외자유치 고비마다 갈등
진로와 골드만삭스 사이 ‘악연’은 1997년 진로가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부도를 맞은 당시로 거슬러올라간다. 진로의 부도 직후 골드만삭스는 곧바로 구조조정 컨설팅에 나섰다. “거대 금융자본인 골드만삭스쪽에서 우리가 한번 컨설팅을 해보겠다고 제의가 들어왔다. 워낙 국제적 회사라 당시에 덮어놓고 좋다고 했다.” 진로 전영태 차장의 회고다. 진로는 회사현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모든 자료를 골드만삭스에 제공했다. 물론 양쪽은 당시 “어떤 목적으로든 기업 내부 기밀자료를 외부에 공개하지도, 이용하지도 않는다”는 비밀유지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골드만삭스는 98년과 99년 두 차례에 걸쳐 당시 성업공사(현 한국자산관리공사) 등으로부터 1700억원대의 진로채권을 인수했다. 골드만삭스가 경영 컨설팅을 해주면서 취득한 기업 내부 정보를 이용해 진로채권을 헐값에 사들였다는 게 진로쪽 주장이다. 진로쪽은 “골드만삭스가, 진로채권이 어디에 얼마나 가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빼낸 뒤 진로의 향후 재무상태 전망을 보고 집중적으로 채권 매집에 나섰다. 비밀유지계약을 깬 것”이라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는 그 뒤로도 진로의 부실채권을 헐값에 사모았고, 현재 골드만삭스가 보유 중인 진로채권은 액면가로 325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진로와 아무런 관계가 없던 골드만삭스가 진로 부도 이후 새로운 최대 채권자로 등장한 셈이다. 진로와 구조조정을 돕겠다고 나선 골드만삭스의 ‘불편한 동거’는 이렇게 시작됐고, 그 뒤 진로와 골드만삭스는 사사건건 갈등을 빚어왔다. 골드만삭스는 2000년부터 진로건설·진로종합식품·진로홍콩법인에 대한 파산신청을 잇달아 낸 데 이어 일본 내 진로 상표권까지 가압류했다. 지난해 8월에는 진로의 본사 부지 매각에도 반대했다. 진로는 외자유치의 중요한 고비 때마다 번번이 골드만삭스가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의도적으로’ 진로의 경영 정상화를 방해했다고 주장한다. 빚쟁이 골드만삭스의 딴죽에 걸려 진로 회생이 자꾸 꼬여왔다는 얘기다. 반면 골드만삭스쪽은 “채권자들의 이익을 해치는 진로 경영진의 불투명한 자산매각을 저지해 모든 채권자를 위한 재산보전 차원에서 불가피하게 취한 조처들”이라며 채권자로서 정당한 권리행사였다고 반박한다. 경영권 탈취해 팔아먹는다?
이번 진로에 대한 법정관리를 신청한 곳은 골드만삭스 계열사인 세나인베스트먼트라는 법인. 진로에 따르면, 세나인베스트먼트는 골드만삭스가 지난해 11월 아일랜드 소재 법률사무소를 통해 급조한 서랍 속의 페이퍼컴퍼니로, 1월 초 골드만삭스의 또 다른 계열사로부터 진로의 부실채권 870억원을 양도받았다. 진로쪽은 “느닷없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세나인베스트먼트가 도대체 뭔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처음에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본 결과 정체불명의 이 회사가 홍콩에 있는 골드만삭스 아시아 지사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고 말했다. 비밀유지계약을 위반한 골드만삭스가 나중에 “법인이 다르다”는 핑계를 내세워 책임을 회피할 요량으로 자신은 뒤에 숨고 제3자한테 채권을 넘겨 위장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로의 대규모 외자유치를 앞두고 골드만삭스가 돌연 법정관리를 신청한 진의는 무엇일까 진로는 골드만삭스가 ‘진로 문제’에 깊숙이 개입한 뒤 지난 5년간 착착 진행해온 ‘음모’의 결정판이 법정관리 신청이라고 분석한다. 파산신청을 무기삼아 진로를 압박한 뒤 △헐값에 집중 매집한 부실채권을 비싸게 되팔고 △경영권을 탈취한 뒤 제3자한테 팔아먹으려는 고도의 노림수라는 것이다. 진로쪽은 “악질 채권자이자 투기자본인 골드만삭스가 진로채권을 줄기차게 사모은 뒤 보유채권 투자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법정관리 신청으로 뒤통수를 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투자자로서 회사를 정상화시킬 노력은커녕 어떻게 하면 진로에서 돈을 더 빼낼 수 있을까만을 궁리해왔다. 기업회생을 위해 진로가 5년간 공들인 외자유치 노력이 물거품될 위기에 놓였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물론 골드만삭스도 나름의 논리를 편다. 골드만삭스는 진로가 5년간 구조조정을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며 국제입찰에 부쳐 매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골드만삭스의 제이슨 메이나드 상무는 “기업부실의 책임을 져야 할 현 진로 경영진이 추진해온 외자유치 비밀협상으로는 진로의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다. 법정관리인이 주도하는 국제입찰을 통한 자산매각이나 인수·합병이 회생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양쪽의 치열한 공방 속에서 실체적 진실은 쉽게 가려지지 않는다. 다만 골드만삭스는 진로에 대한 투자원금 이상의 수익을 이미 챙긴 것으로 알려진다. 진로채권에 대한 이자지급은 1998년 화의 성립 당시 99년까지 유예하고, 원금은 올해부터 분기별로 지급하기로 돼 있었다. 이에 따라 2000년부터 이자지급이 시작됐다. 진로 전영태 차장은 “진로채권은 액면가 기준 7∼11%의 이자율이 적용되고 있다. 따라서 골드만삭스가 2000년부터 3년간 채권 이자로 챙긴 돈만 해도 투자원금보다 많다”고 폭로했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진로계열사 채권들은 부도 이후 유통시장에서 발행가격의 1∼20%선에서 팔렸다. 진로쪽은 골드만삭스가 평균적으로 채권 발행가의 10% 수준에서 진로 부실채권을 매집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골드만삭스가 보유 중인 진로채권은 액면가로 쳐 3250억원이므로, 산술적으로 액면가의 10%에 샀다면 채권 투자원금은 약 325억원이 된다. 그동안 받은 이자수입만 쳐도 거의 1천억원(3250억원×평균이자 10%×3년)에 이른다. 진로는 “골드만삭스가 그것도 모자라 (최대 채권자 지위를 이용해) 다른 채권자 몰래 액면가의 100% 상환을 집요하게 요구해왔다”며 거대 금융자본 골드만삭스의 탐욕을 성토했다.
이자로 챙긴 돈 원금보다 많아
골드만삭스는 진로가 성토하는 돈벌이 욕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외자유치 계획의 허구성을 집중공략하는 방식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원금 상환기간 10년 추가연장과 무담보채권 이자율 대폭 하향조정(11%에서 5%로)을 골자로 한 진로의 채무재조정안과 이에 대한 채권자들의 동의를 전제로 한 외자유치 계획은 빚을 탕감하기 위한 진로쪽 술책이라는 주장이다. 골드만삭스쪽은 “진로가 제시하는 1조600억원의 투자자가 누구인지조차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도 진로는 외자유치를 위해 채무재조정안에 동의하라고 채권자들한테 요구하고 있다. 채무재조정은 현재 100원짜리인 채권 가치를 50원이나 60원으로 떨어뜨린 다음 외자를 들여와 상환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는 또 “법정관리를 신청한 건 진로의 현 경영진과 기업회계의 투명성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국내 채권자들은 돈을 꿔간 진로가 뭘하는지 제대로 따지고 분석해보지도 않았다. 법원의 투명한 관리감독 아래서 바람직한 채권 회수 방안을 찾자는 것이 골드만삭스의 의도”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뒤쪽에서는 사방으로 뛰면서 우호 채권자 규합에 나서고 있다. 주로 외국 채권자들을 자기 편으로 열심히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진로 채권자 가운데 도이치방크·모건스탠리 등 외국 채권자들을 중심으로 총 진로채권 금액의 30% 정도를 동조세력으로 확보했다고 밝혔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1999년 4월12일 신달호 당시 국민은행장과 골드만삭스 매니징 디렉터 헨리 코넬이 5억달러 투자를 발표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연합)
그런데 골드만삭스는 98년과 99년 두 차례에 걸쳐 당시 성업공사(현 한국자산관리공사) 등으로부터 1700억원대의 진로채권을 인수했다. 골드만삭스가 경영 컨설팅을 해주면서 취득한 기업 내부 정보를 이용해 진로채권을 헐값에 사들였다는 게 진로쪽 주장이다. 진로쪽은 “골드만삭스가, 진로채권이 어디에 얼마나 가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빼낸 뒤 진로의 향후 재무상태 전망을 보고 집중적으로 채권 매집에 나섰다. 비밀유지계약을 깬 것”이라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는 그 뒤로도 진로의 부실채권을 헐값에 사모았고, 현재 골드만삭스가 보유 중인 진로채권은 액면가로 325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진로와 아무런 관계가 없던 골드만삭스가 진로 부도 이후 새로운 최대 채권자로 등장한 셈이다. 진로와 구조조정을 돕겠다고 나선 골드만삭스의 ‘불편한 동거’는 이렇게 시작됐고, 그 뒤 진로와 골드만삭스는 사사건건 갈등을 빚어왔다. 골드만삭스는 2000년부터 진로건설·진로종합식품·진로홍콩법인에 대한 파산신청을 잇달아 낸 데 이어 일본 내 진로 상표권까지 가압류했다. 지난해 8월에는 진로의 본사 부지 매각에도 반대했다. 진로는 외자유치의 중요한 고비 때마다 번번이 골드만삭스가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의도적으로’ 진로의 경영 정상화를 방해했다고 주장한다. 빚쟁이 골드만삭스의 딴죽에 걸려 진로 회생이 자꾸 꼬여왔다는 얘기다. 반면 골드만삭스쪽은 “채권자들의 이익을 해치는 진로 경영진의 불투명한 자산매각을 저지해 모든 채권자를 위한 재산보전 차원에서 불가피하게 취한 조처들”이라며 채권자로서 정당한 권리행사였다고 반박한다. 경영권 탈취해 팔아먹는다?

사진/ 1997년 진로 그룹은 자구노력의 일환으로 보유 부동산 매각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한겨레 이종근 기자)

사진/ 지난 4월23일 진로 노동조합이 골드만삭스의 법정관리 신청을 규탄하는 시위를 열고 있다.(문화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