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짓값·노임 따졌을 때 비쌀 수밖에 없어… 불가피한 개방 맞아 가격 올리기도 어려워
정부가 올해 벼 수맷값을 2% 내리기로 했다. 지금까지 몇 차례 벼 수맷값이 동결된 적은 있었지만, 쌀 수맷값 인하는 해방 이후 50년 만에 처음이다. 정부는 “불가피한 쌀시장 개방에 대비하려면 비싼 국내 쌀값을 떨어뜨려 시장 경쟁력을 갖춰나가야 한다”는 논리를 폈지만 농민단체들은 “벼농사를 짓지 말라는 것”이냐며 반발하고 나섰다. 수맷값이 2% 인하되면 벼(조곡) 40kg들이 한 포대에 1등품 기준으로 5만9230원, 도정을 거친 80kg 쌀(정곡) 1가마로 환산하면 16만4370원이다.
생산단가 낮추기도 불가능
한국 쌀값은 왜, 얼마나 비싼가 우리 쌀과 외국 쌀값의 차이는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 이후 더욱 벌어졌다. 추곡수맷값이 해마다 4∼5%씩 오르거나 동결됐기 때문이다. UR협상에 따라 국내에 최소시장접근물량(MMA)으로 들어오는 외국 쌀값을 보면, 2001년 기준으로 한국까지 운송되는 데 드는 운임·보험료에 수입관세 5%까지 모두 포함해 미국쌀은 t당 300달러(약 36만원), 중국쌀은 270달러(약 32만원), 오스트레일리아쌀은 250달러(약 30만원)다. 반면 국산 쌀값은 t당 200만원이다. 미국쌀의 5.5배, 중국쌀의 6.2배, 오스트레일리아쌀의 6.6배나 비싼 셈이다. 가격에서의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전 세계 쌀 수출국들이 줄기차게 시장개방을 압박하는 것도 당연하다.
쌀값의 구성요소를 보자. 2001년 통계청에 따르면, 10a(302평·보통 1마지기)당 쌀 생산비는 평균 53만5천원이다. 생산비 가운데 농짓값인 토지용역비(임차료)는 24만1천원, 인건비인 자가노력비는 11만5천원이다. 생산비의 60%를 농짓값과 노임이 차지하므로, 쌀값이 비싼 이유는 수요공급 논리보다는 농짓값과 노임이 구조적으로 비싼 데 있다.
간편하게 따지면 이렇다. 쌀 10a당 평균소출은 471kg(80kg들이 5.8가마)인데 쌀 1가마당 드는 생산비가 9만∼10만원 선이고, 이 가운데 토지용역비가 5만원가량을 차지한다. 현행 법은 원칙적으로 농지의 임대차를 금지하고 자작농주의를 표방하지만 쌀 재배농가 가운데 임차농가는 72%에 이른다. 도회지로 떠났더라도 조상한테 물려받은 땅이라서, 고향과 인연을 이어주는 끈이라서 논을 안 팔고 그대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차농의 토지용역비는 쌀값을 비싸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농짓값과 인건비가 비싼 현실에서 시장개방이 닥쳤다고 해서 생산단가를 금방 낮추기도 힘들다. 땅값과 인건비가 거저에 가까울 정도로 싼 중국쌀과는 도무지 경쟁이 안 된다.
쌀농사짓는 데 드는 투입재가격지수(농기계·농약·비료값)도 95년(100)을 기준으로 2000년 127로 뛴 데 이어 2001년 138로 크게 증가했다. 종묘는 물론 비료·농약 업체들 상당수가 외국자본에 넘어가 외국기업들이 독과점형태로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비료값·농약값은 해마다 오르고 있다. 생산비는 껑충 뛰는데 출하가는 찔끔 오르는 구조 속에서 농가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쪼들린다.
쌀농가 수입은 얼마나 될까. 생산비와 자가노력비 등을 뺀 쌀농가의 1ha당 순수입은 503만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쌀농가 평균재배면적은 1ha(약 3천평) 정도의 영세소농이다. 1년 쌀농사만 지었다면 500여만원 수입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형편이다. 쌀 1가마에 16만원 받아서는 논 사려고 빌린 돈의 이자갚기도 벅차다.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논이 있어서 짓는 것이지 빚내서 논을 샀다면 곧장 보따리싸야 한다. 농가가 그나마 근근히 버텨온 것은 쌀농사 외의 다른 작물재배나 농공단지 취업 등으로 다른 소득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쌀소득은 보통 농가소득의 25%에 지나지 않는다.
영농규모화는 가능한가
그런데 농짓값을 떨어뜨려 쌀 생산비를 줄임으로써 쌀값을 낮추는 방법은 매우 위험하다. 왜 그럴까. 농짓값은 전국평균 평당 3만6천원이다. 공장 부짓값이 거기서 얻을 기대수익에 따라 정해지듯 쌀값이 떨어지면 농짓값도 떨어져야 정상이다. 그러나 농지는 다르다. 농지 전용에 대한 기대심리 때문이다. 아파트·공장이 들어서는 등 비농업부문으로 이용될 기대가 작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농짓값은 쌀 수익률이 떨어짐에도 96년 이후 연평균 16.2%나 올랐다. 특히 농짓값 하락은 개별 농가파탄뿐 아니라 논을 담보로 농가에 영농자금을 빌려준 농협의 파산까지 불러와 농업공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방치할 수 없다.
생산비 절감이 어려운 현실에서 쌀농가가 살길은 영농 규모화다. 그러나 쌀 전업농 7만 가구 가운데 5ha 이상 대규모로 짓는 농가는 6천 가구뿐이다. 농촌에 가서 쌀농사짓는 농가 나오라면 대략 열에 여덟이 노인이다. 물론 쌀농사래봤자 1ha 미만이다. 그런데 쌀소득만으로 농가 평균수준의 소득(연 2400만원)을 올리려면 최소한 3ha 이상을 지어야 한다. 그래야 쌀값이 떨어지더라도 단위당 생산비가 줄어드는 규모의 경제효과 덕분에 먹고살 수 있다. 구멍가게는 물건 하나 팔 때마다 이윤 폭이 커야 살 수 있지만, 대형 슈퍼마켓은 박리다매로도 운영할 수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농협중앙회쪽은 “미국 농가의 경우 100ha를 지으면 ha당 10만원만 벌어도 1천만원의 수입으로 먹고살지만 우리 농가는 단 1ha뿐이므로 ha당 100만원을 벌어도 살기 빠듯하다”고 말했다.
쌀 유통구조는 어떨까. 채소 등은 후진적 유통구조 탓에 산지에서 도매상-소매상-소비자한테 전달되는 과정에서 터무니없이 값이 뛰지만 쌀은 다르다. 벼 출하 이후 미곡처리장을 거치면서 10%, 운송·유통 과정에서 다시 10% 정도가 붙어 중간마진이 별로 없는 효율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저장성이 높기 때문이다. ‘녹색혁명’으로 불린 통일벼처럼 다수확품종을 개발해 소출을 획기적으로 늘리면 쌀값이 떨어져도 먹고살 수 있을까. 그러나 올해 말 쌀 재고량이 1190만섬에 이르러 적정재고량(600만섬)의 두배에 이를 정도로 쌀이 넘쳐나는 판에 다수확품종은 쌀값을 더 폭락시키고, 오히려 농촌 몰락을 재촉할 뿐이다. 또 다수확품종일수록 밥맛은 떨어지게 마련이라 품질 승부에서도 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쌀은 필수재기 때문에 많이 생산되었다고 많이 먹어주는 상품이 아니라서 공급이 1% 초과하면 쌀값은 2% 떨어진다.
외국의 쌀과 우리의 쌀의 맛을 분석한 결과도 농민들을 더욱 우울하게 한다. 농촌경제연구원 조사결과 쌀 맛은 중국쌀이 1위, 전북 동진쌀이 2위, 미국 캘리포니아쌀이 3위를 기록했다. 일조량이 풍부하고 밤낮 기온 차가 커서 맛있고, 값싼 중국쌀의 강력한 도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다시 쌀시장 개방이라는 근본문제로 돌아가보자. 쌀 개방에서 예외를 인정받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2005년 이후 빗장이 풀리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관세화로 개방되면 첫 해에는 관세 400%로 갈 공산이 크다. 문제는 관세를 내리는 속도와 폭이다. 미국 등은 2010년에 관세를 25%까지 낮추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80kg당 2만원 하는 중국쌀이 관세 400%를 물고 들어와봤자 13만∼14만원이다. 관세 400%에서도 현재 국내 쌀값으로는 경쟁이 안 되는 구조다.
덮어놓고 농사지을 때 지났다
농업경제학자들은 쌀과잉을 고려할 때 국내 쌀시장이 완전경쟁이라면 쌀값은 80kg당 10만∼11만원선이 되는 게 정상이라고 본다. 수매량이 전체 생산량의 15%에 지나지 않지만 정부가 수매해서 끌어안고 수맷값이 가이드라인으로 가격지지 노릇을 하는 덕에 16만원에 팔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가격을 떠받쳐주며 쌀을 전부 수매해주면 걱정할 게 없다. 하지만 그동안 쌀 수맷값 인상은 과거 30%에 이르던 수매량을 대신 절반으로 크게 줄이면서 이뤄진 것이다.
국제적인 농업개방 질서 아래서 덮어놓고 쌀 농사지을 때는 지났다. 농민들은 “쌀 농사 포기를 종용하는 정책을 거두고 쌀 소비확대와 농가소득 보장을 위한 대책을 세우고, 북한에 쌀 300만섬을 지원하는 법률을 제정해 쌀값을 보장하라”고 요구한다. 물론 쌀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며, 식량안보와 환경적 가치를 반영해 쌀값을 책정해야 한다는 논리에도 귀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농민 표가 아직 정치적으로 무시 못할 수이고 농민들이 횃불 들고 고속도로를 점거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어도 개방은 엄혹한 현실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쌀 생산량은 3422만석(493만t)으로 세계 10위권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2001년 11월 열린 전국농민대회. 농민들의 저항이 계속돼도 개방은 엄혹한 현실이다. (박승화 기자)


사진/ 너른 황금 들녘 풍경. 그러나 벼가 익을수록 농민들의 시름은 깊어간다. (강재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