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의 극소수 예술가가 95%의 소득을 독식하는 예술 시장…미디어의 발달이 스타의 가치 높여
흔히 “예술가는 가난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들딸이 예술가의 길에 들어서겠다고 하면 왜 배고픈 예술가냐며 한사코 뜯어말린다. 꼭 돈을 벌겠다는 경제적인 동기에서 예술활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한국 예술가들은 얼마나 가난할까
작은 재능격차가 큰 소득격차 부른다
한국문화정책개발원이 2000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 회원을 무작위로 골라(예술분야별 50∼60명) 예술가 소득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자. 음악가의 예술활동 관련 월평균소득은 115만원으로 나타났다. 200만원 이상 버는 음악가는 5.8%에 지나지 않았다. 영화인은 사정이 조금 나아 월평균소득은 142만원, 200만원 이상 소득자는 19.6%였다. 소득이 가장 높은 분야는 연예인으로 월평균소득이 350만원에 달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10개 예술분야를 통틀어 예술활동을 통한 수입이 한푼도 없는 사람이 18.1%라는 사실이다. 예술가의 궁핍은 음악인 84%, 영화인 92%, 연예인 77%가 “경제적 한계를 느낀다”고 토로한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시인 고은은 어디선가 “배가 불러야 시도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모든 예술가가 가난한 것은 아니다. 세계적 팝가수 마이클 잭슨 같은 슈퍼스타는 ‘가수재벌’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돈을 벌었다. 흥미로운 점은 다른 직업과 견줘볼 때 예술가 내부의 소득분배 격차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노동시장에서 노동자가 버는 소득은 자신이 일하고 노력한 시간과 비례하는데, 예술가 시장은 그렇지 않다. 투자, 즉 재주를 연마하는 데 들인 연습시간과 노력보다는 타고난 재능에 더 의존한다. 탁월한 재능과 능력이 있는 극소수 몇몇 슈퍼스타는 큰돈을 버는 반면 대부분의 예술가는 궁핍보다 더 익숙한 것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다. 전체 예술시장 소득의 95%를 스타급 예술가 5%가 차지하고, 부스러기 소득 5%를 이름을 크게 얻지 못한 대다수 예술가(95%)들이 나눠갖는 격이다. 문화경제학은 이런 현상을 ‘슈퍼스타의 경제학’이라고 이름붙였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마이클 잭슨이 내한공연을 하면 한두번 공연만으로 10억원이 넘는 출연료를 챙긴다. 마이클 잭슨의 노래실력이 밤무대에서 하루 5만원 받고 노래하는 무명가수 너훈아보다 뛰어난 것일까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노래실력이 사실은 종이 한장 차이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마이클 잭슨과 너훈아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무대 뒤에서 두 사람의 노래를 들을 경우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두 사람의 예술적 성취도 차이는 거의 무시해도 될 정도로 미미한데 벌어들이는 소득은 하늘과 땅 차이다. 대중들이 열광하는 몇몇 스타가 그렇지 못한 대다수 예술가들의 몫까지 다 챙겨가는 셈이다.
소비자 선호도 쉽게 바뀌지 않아
이처럼 예술가 시장은 이른바 ‘승자독식’(winner-take-all) 원리가 지배한다. 상지대 임상오 교수(경제학)는 “예술가 시장의 경우 특정한 재능이 있는 스타급한테 소득이 몰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재능은 종이 한장 차이인데 소득은 종이 한장이 아니라 엄청난 차이를 낳는다”고 말했다. 모든 예술가가 자신의 성취도에 따라 각각 보상받는 게 아니라 스타덤에 오른 극소수 승자만이 시장을 독차지하고, 승자 대열에 끼지 못한 대다수는 소득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말이다.
예술상품말고 다른 상품들도 ‘1등’을 추구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예술가 시장에서 승자독식 세계, 즉 슈퍼스타의 경제학이 나타난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미디어·통신·교통의 발달 때문이다. 옛날에는 시골장터 이야기꾼과 동네가수의 재주를 보고 즐겼다. 그러나 매스컴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모두 마이클 잭슨을 알게 된 뒤 동네가수는 명함도 못 내밀게 됐다. 어쩌면 노래 실력에서 마이클 잭슨과 큰 차이가 없을지 모르지만 마이클 잭슨이라는 대중스타가 휘어잡은 시장에서 동네가수는 재주를 썩일 수밖에 없다. 그가 벌어온 수입은 이제부터 모두 마이클 잭슨이 거둬간다. 이런 현상은 정보화 사회가 진전될수록 더 강화된다.
소비자들이, 마이클 잭슨 공연료 20만원이 너무 비싸다고 해서 대신 밤무대 너훈아를 찾아가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어떤 상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상품의 가치는 증가하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집 전화의 가치가 전화를 갖고 있는 다른 사람이 많을수록 더 커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집 전화로 걸 수 있는 곳이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이다. 예술가 시장도 마찬가지다. 어떤 책·음악·영화 등이 사람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거나 평론가들한테 좋은 평을 얻으면 그 예술상품에 소비가 집중된다. 자연히 스타급 몸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반면, 나머지는 시장에서 밀려난다. 예술상품의 질이 타고난 재능에 주로 의존한다고 전제할 때, 재능은 공급이 제한돼 있는데 수요는 과잉인 데서 승자독식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수없이 뜨고 지는 게 스타지만, 사실 한번 스타덤에 오른 예술가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가 금방 바뀌는 것도 아니다. ‘영원하지 않다’는 뜻에서 명멸할 뿐이다. 예술적 성취도가 높은 예술가가 등장하더라도 소비자들이 그쪽으로 소비를 쉽게 대체하지 않는 것인데, 이 때문에 예술가 시장의 소득 불평등은 더 심화된다.
영화판, 스타보다는 장르다
“열정은 있되 재능이 없는” 예술가는 곁에서 지켜보기 딱하다. 그런데 승자독식의 시장에서 더 안타까운 건 아주 오랜 그리고 피나는 노력과 훈련을 통해 연마한 재능이 다른 상품을 생산하는 데는 전혀 쓸모없다는 점이다. 영어와 컴퓨터 능력은 폭넓게 활용될 수 있지만, 피아노 연주기술은 피아노 치는 것 외에 달리 쓸 데가 없다. 지나치게 많은 예술 지망생들이 나도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소박한 낙관주의를 품고 예술가 시장에 진입하고, 결국 대부분은 스타에 오르지 못한 채 갈고닦은 기술을 썩이고 만다.
스타가 예술가 시장에서 소득을 독식하고 있는데, 실제로 영화 흥행에서 간판스타는 어느 정도 기여하는 것일까 추계예술대 김휴종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997년 한국영화에서 ‘스타파워’(스타 출연이 미치는 흥행 기여도)는 약 3만명으로 나타났다. 스타가 출연했다는 사실이 3만명의 관객을 추가동원한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그 뒤 2001년까지 영화관객을 다시 분석한 결과 스타파워는 3만2천명, 감독파워는 3만7천명으로 감독이 누구냐 여부가 스타 출연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코믹영화가 3만6천여명, 액션영화가 5만8천여명의 관객을 추가동원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제는 영화장르가 스타보다 더 흥행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스타급 가수와 무명가수의 실력차이는 작아도 소득은 하늘과 땅 차이다. 밤무대 홍보전단. (박승화 기자)

사진/ god(위)와 서태지(아래). (한겨레 윤운식 기자)
![]() <경제학 개론서를 읽다 보면 다음 두 가지 언급이 곳곳에 등장한다. 하나는 경제학자들만큼이나 많은 경제이론이 존재하고, 경제현상을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과 처방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경제학자들은 한편으로는(on the one hand)… 또 다른 편으로는(on the other hand)… 식으로 충고한다”며 “외팔이(economist with one hand) 경제학자를 데려다 달라”고 농담했을 정도다. 또 한 가지는 안타까운 현실을 뜨거운 가슴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을 높여주려고 노동생산성 이상으로 월급을 주게 되면 회사가 쓰러지고, 결국 실업의 고통이 닥치므로 노동자에게 좋지 않다는 논리다. 물론 뜨거운 가슴 없이 차가운 시장논리만으로 문제가 다 풀리는 것은 아니다. ‘부자의 돈 버는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책들을 보는 시각도 이와 비슷할까 부자 되는 법은 부자 지침서 수만큼이나 많아서 별것 없다거나, 부자 되는 법을 깨우치겠다는 허망한 생각을 접고 작은 것도 함께 나누는 뜨거운 가슴부터 가지라고 점잖게 충고할지 모른다. ‘자수성가한 알부자 100인의 돈 버는 노하우’란 부제가 붙은 <한국의 부자들>은 “부자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거나 “그들은 어떻게 부자가 되었을까” 등 부자의 철학과 노하우를 보여준다. 이 책에는 저자가 만난 부자 100명(재산 20억∼1천억원대)이 등장하는데, 대기업 총수들이 아니다. 증권사·은행·보험사 영업 담당자들한테 소개받은 부자들로, 의사·변호사 등은 한두명에 불과하고 시장바닥을 전전했거나 일찌감치 사업전선에 뛰어들어 돈을 번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부자가 대부분이다. <한국의 부자들>, 한상복 지음, 위즈덤하우스(02-704-3861) 펴냄, 300쪽, 1만1천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