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주식 들고 속만 태우는 조합원들…기업들 자본금 충당 목적으로 이용하기도
“주식값이 자꾸 떨어지는 것을 쳐다보면서도 회사 살려보자고 여지껏 주식을 들고 있는 사람도 주변에 많다. 세계 3위의 반도체 회사라는 자부심도 있고…”(하이닉스반도체 청주공장 김아무개씨)
3년째 생사의 갈림길에서 허덕이고 있는 하이닉스반도체 직원들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주식 얘기만 나오면 부아가 치민다. 말로야 회사를 살리자면서 주식을 들고 있다지만,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이 130원대(주당 액면가 5천원)로 떨어진 주식을 팔아봤자 남는 게 없다는 체념이 더 깊게 깔려 있다. 사실 하이닉스 직원 중에 회사를 떠나고 싶어도 주식에 발목을 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수천만원씩 빚을 지고 대출받아 우리사주를 샀는데, 회사를 떠나게 되면 당장 퇴직금보다 더 많은 대출금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빚 내고 산 주식은 종이조각으로
하이닉스 우리사주조합원들은 현대전자 시절인 1999년 12월 유상증자에서 1주당 1만7500원에 우리사주를 샀다. 당시 유상증자 공모 주간사인 현대증권 등은 “증자에 성공하면 현대전자의 기업 가치가 훨씬 높아지고 반도체 경기 호황이 지속될 전망”이라며 목표 주가를 4만5천원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회사쪽은 직원들의 청약률을 높이려고 은행 융자 알선 등 대출 길을 적극적으로 터줬다. 회사쪽의 청약 독려와 장밋빛 주가 전망에 힘입어 우리사주조합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청약에 나섰고, 우리사주에 우선배정된 유상증자 물량 20%는 거의 다 청약됐다. 그 뒤 주가는 한때 3만원대를 웃돌 정도로 치솟았지만 우리사주 의무예탁기간(1년)이 끝나기 전까지는 주식을 내다팔 수 없었다. 그러나 곧바로 유동성 위기가 닥치면서 주가는 폭락에 폭락을 거듭했다. 의무예탁기간이 지났을 때 주가는 6천원대로 빠져 있었다. 하이닉스반도체 우리사주조합 남건욱 차장은 “당시 자신의 연봉과 퇴직금 수준에 따라 개인별 청약 물량을 배정받았는데 1억원어치를 청약한 사람도 있고, 대부분 3천만∼4천만원씩 주식을 받았다. 부채 규모를 줄이기 위해 신규 자금이 필요한 때였는데 유상증자에 성공하면 주식이 한창 뜰 것이라는 기대가 퍼져 있었다”고 돌이켰다. 하지만 반도체 값 폭락으로 경영은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했고 급기야 100원대까지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회사가 부도 직전의 상황까지 내몰린 2001년 6월에도 유상증자가 실시됐다. 회사의 미래가 불안한 국면이라 모두들 청약을 망설였는데, 일부 종업원들은 당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대규모 해외주식예탁증서(GDR)의 성공적 발행에 잔뜩 고무돼 주당 3100원에 주식을 또 청약했다. 당시 하이닉스 주가는 5천원대. 그러나 증자 이후 주식은 또다시 끝없는 추락을 거듭했다. “도중에 주식을 팔아버린 사람도 있고 아직까지 들고 있는 사람도 있다. 손실을 보전해주는 방법이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사주 성격상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회사 사정이 안 좋아져 주가가 크게 빠진 것인데 정부가 나설 수도 없고….” 남 차장이 한숨섞어 말했다. 하이닉스처럼 주식이 반토막에 반토막 나 거의 휴지처럼 돼버린 사업장이 보여주듯, 외환 위기 이후 우리사주조합원 중 ‘주식’ 때문에 호되게 당해보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사주로 재미 본 종업원은 눈 씻고 찾아봐야 할 정도다. 주가 폭락으로 다들 막대한 손실을 본 터라 그런지 “한국의 우리사주조합은 다들 주식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판국에 퇴직(기업)연금제 도입이 급물살을 타면서 ‘주식’이 산업 현장 한복판에 다시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회사 말만 믿다가 낭패 보다
우리나라의 상장·비상장·등록 법인은 모두 16만여곳으로, 이 중 우리사주조합이 설립된 기업은 2036곳(1.3%)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 한국증권금융에 예탁된 우리사주는 3억2천만주(취득가액 2조9천억원)에 이른다. 지난 68년 우리사주가 처음 도입될 당시에는 시가가 아닌 액면가 배정이라서 자사주를 취득한 뒤 기다리면 큰 시세 차익을 챙길 수 있었다. 그래서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 주식을 사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가 배정으로 전환된 뒤부터 우리사주는 ‘양날의 칼’로 바뀌었다. 유상증자 이후 주가는 조정을 거치면서 열이면 여덟, 하락하기 일쑤다. 주가가 빠질 때 일반 청약자들은 취득 이후 시장에 바로 매각해 손실을 줄일 수 있지만 우리사주조합원들은 의무예탁기간에 걸려 떨어지는 주식을 들고 속만 태워야 한다. 이처럼 우리사주가 부실화, 유명무실화됐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데는 제도상의 결함도 적잖게 작용하고 있다.
새한미디어를 보자. 애초 이 회사의 우리사주조합 결성을 주도한 쪽은 회사였다. 그렇게 결성된 우리사주조합은 한 주의 주식도 없이 이름만 유지해오다가 지난 99년 유상증자 20%를 우선 배정받았다. 당시 주가는 5천원대. 회사쪽은 인사권을 쥔 부서장들을 동원해 종업원을 1대 1로 면담하면서 청약을 독려했고, 꿋꿋이 버틴 극소수를 빼고는 대부분 자기한테 배정된 물량을 거의 다 청약했다. 자기 연봉만큼 빚내서 주식을 받은 사람도 있다.
그런데 유상증자 직후 유동성 위기가 퍼지더니 급기야 회사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고 말았다. 당연히 주가는 폭락했다. 새한미디어 이육일 노조위원장은 “당시 노동자들은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정보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유상증자 몇 개월 전부터 회사쪽이 대대적인 청약 설명회를 열면서 돈이 없는 직원에게는 신용대출도 알선해줬다. 옆자리 동료들이 청약하는 상황에서 자기 혼자 청약하지 않기란 매우 어려운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회사쪽은 1년 뒤에 주당 1만원까지 갈 것이라고 선전했고, 받은 주식이 ‘독약’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주가는 폭락하고 도중에 감자 조처까지 이뤄져 막대한 손실을 떠안아야 했다. 이제 주식이란 말만 나오면 종업원들은 몸서리친다.
워크아웃 기업인 신호제지의 우리사주조합원들은 회사가 좋았던 시절인 지난 96년까지 우리사주 물량을 서로 받겠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워크아웃에 들어가고 감자를 거듭하면서 예전에 6천원대(액면가 5천원)를 웃돌던 주식이 지금은 단돈 200원대로 떨어졌다. 우리사주를 사면서 낸 빚은 상여금에서 꼬박꼬박 공제돼 빠져나갔다. 신호제지 진주공장 조동성 노조위원장은 “그동안 수차례 감자된 것을 감안하면 지금 주당 2만7천원은 가야 한다”며 “그런데도 최근 거래소에서 상장폐지될 위기에 몰리면서 퇴출 요건 해소를 위해 또다시 6대1 감자가 결정됐다”고 말했다.
오히려 노사관계의 걸림돌로 작용
우리사주는 소유경영 참가와 이를 통해 생산성 향상을 꾀하는 것이 본래 목적이다. 장기 보유하면서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고, 이러한 경영 견제·감시 기능을 통해 회사가 좋아지면 주가도 뛰어 나중에 종업원 복지도 증진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사주조합 명의로 의무예탁하는 기간이 끝나면 개인들이 주식을 인출해 가버리고 우리사주조합은 한 주도 없는 빈껍데기로 전락해 휴면법인이 되고 만다. 현재 우리사주조합 중 자사주를 한 주라도 보유한 조합은 793개(39%)에 불과하고, 우리사주 평균지분율도 고작 1%다. 자연히 경영 참여는 헛된 구호에 그친다. 또 주가 폭락으로 우리사주가 오히려 노사관계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게 현실이다.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를 위한 우호지분 확보 차원에서, 또는 손쉽게 자본금을 충당하려는 목적에서 우리사주를 이용하기도 한다. 반면 우리사주의 권리행사는 제한되거나 아예 봉쇄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송태경 정책국장은 “주가가 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증자 물량을 안 받으면 회사 망한다는 말을 앞세워 종업원들을 빚내서 주식 사게 만든다. 그런데 의무예탁 기간이 끝나면 주가가 오르든 떨어지든 모든 책임은 개인한테 돌아가고, 우리사주조합은 아무런 권리도 행사하지 못하게 된다. 노동자 복지 차원에서 우리사주가 도입된 만큼 기업의 우리사주 기금 무상출연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의 재무 상태를 전혀 모른 채,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우리사주를 샀다가 깡통 차고 마는 사태를 막을 길은 없을까. 노동부 근로복지과 쪽은 “우리사주 지분 중 종업원들이 자기 돈으로 취득한 주식에 대해서는 스톡옵션을 도입해 주가 변동에 따라 우리사주 취득 권리를 행사하거나 포기할 수 있게 선택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한국의 우리사주조합원들은 모두 주식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 신우리사주제도(종업원지주제) 개선을 위한 토론회.(이용호 기자)
하이닉스 우리사주조합원들은 현대전자 시절인 1999년 12월 유상증자에서 1주당 1만7500원에 우리사주를 샀다. 당시 유상증자 공모 주간사인 현대증권 등은 “증자에 성공하면 현대전자의 기업 가치가 훨씬 높아지고 반도체 경기 호황이 지속될 전망”이라며 목표 주가를 4만5천원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회사쪽은 직원들의 청약률을 높이려고 은행 융자 알선 등 대출 길을 적극적으로 터줬다. 회사쪽의 청약 독려와 장밋빛 주가 전망에 힘입어 우리사주조합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청약에 나섰고, 우리사주에 우선배정된 유상증자 물량 20%는 거의 다 청약됐다. 그 뒤 주가는 한때 3만원대를 웃돌 정도로 치솟았지만 우리사주 의무예탁기간(1년)이 끝나기 전까지는 주식을 내다팔 수 없었다. 그러나 곧바로 유동성 위기가 닥치면서 주가는 폭락에 폭락을 거듭했다. 의무예탁기간이 지났을 때 주가는 6천원대로 빠져 있었다. 하이닉스반도체 우리사주조합 남건욱 차장은 “당시 자신의 연봉과 퇴직금 수준에 따라 개인별 청약 물량을 배정받았는데 1억원어치를 청약한 사람도 있고, 대부분 3천만∼4천만원씩 주식을 받았다. 부채 규모를 줄이기 위해 신규 자금이 필요한 때였는데 유상증자에 성공하면 주식이 한창 뜰 것이라는 기대가 퍼져 있었다”고 돌이켰다. 하지만 반도체 값 폭락으로 경영은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했고 급기야 100원대까지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회사가 부도 직전의 상황까지 내몰린 2001년 6월에도 유상증자가 실시됐다. 회사의 미래가 불안한 국면이라 모두들 청약을 망설였는데, 일부 종업원들은 당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대규모 해외주식예탁증서(GDR)의 성공적 발행에 잔뜩 고무돼 주당 3100원에 주식을 또 청약했다. 당시 하이닉스 주가는 5천원대. 그러나 증자 이후 주식은 또다시 끝없는 추락을 거듭했다. “도중에 주식을 팔아버린 사람도 있고 아직까지 들고 있는 사람도 있다. 손실을 보전해주는 방법이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사주 성격상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회사 사정이 안 좋아져 주가가 크게 빠진 것인데 정부가 나설 수도 없고….” 남 차장이 한숨섞어 말했다. 하이닉스처럼 주식이 반토막에 반토막 나 거의 휴지처럼 돼버린 사업장이 보여주듯, 외환 위기 이후 우리사주조합원 중 ‘주식’ 때문에 호되게 당해보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사주로 재미 본 종업원은 눈 씻고 찾아봐야 할 정도다. 주가 폭락으로 다들 막대한 손실을 본 터라 그런지 “한국의 우리사주조합은 다들 주식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판국에 퇴직(기업)연금제 도입이 급물살을 타면서 ‘주식’이 산업 현장 한복판에 다시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회사 말만 믿다가 낭패 보다

사진/ 권기홍 노동부장관이 기업연금제 도입방안을 보고하고 있다. 기업연금제 도입으로 산업현장에서 주식은 다시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청와대사진기자단)

사진/ 하이닉스 반도체 이천공장. 직원들은 휴짓조각이나 다름없이 떨어진 주식때문에 허탈해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