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미국 무역적자·재정적자 심각해질 것… 미국 주도의 세계경제 질서도 바뀔 가능성 높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후 한국 주식시장은 기다렸다는 듯 뜨겁게 달아올랐다. ‘전쟁랠리’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주가는 며칠간 폭등했고,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주가상승률을 기록했다. 금융은 실물경제의 거울이란 점에서 주가상승의 바탕에는 전쟁 발발 이후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이 깔려 있다.
2차대전과 지금은 다르다
“미국경제는 전쟁을 기다렸다”는 말처럼 미국도 전쟁을 호재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의 보수파 경제학자들은 전쟁이 터지자 즉각 “전쟁은 미국경제가 회복되는 자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쟁이 국제유가를 하락시키고, 소비·투자 심리를 되살려 막힌 곳을 뚫어줄 것이라고 한다. 전쟁이 단기간(6주∼3개월)에 끝나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0.5% 성장한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기대에 화답하듯 전쟁 직후 국제유가는 안정세로 돌아섰고, 불확실성에 잔뜩 움츠린 세계경제는 일제히 청신호를 보냈다. 전쟁이 과연 세계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까 전쟁이 자본주의 경제에 도움이 되고, 번영을 구가하려면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신화’는 진실일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2차 세계대전이 세계경제를 침체에서 구해냈다 하고, 전쟁은 경제성장의 자극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지만 당찮은 말이다. 1991년의 경기침체를 가져온 걸프전은 전쟁이 경제에 유해하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줬다”고 반박했다. 또 “이번 전쟁은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처럼 유가 폭등을 낳아 어려운 세계경제에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 이후 이라크에 친서방 정권이 들어서면 원유 생산량이 증가하고, 이것이 유가 안정을 낳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이 틀렸다는 것이다. 미국 프린스턴대 폴 크루그먼 교수도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이나 1979년 이란혁명 때도 원유 생산량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않은 반면 간접적인 정치적 파급효과가 유가 폭등을 불렀다”고 지적했다. 물론 1929년 대공황을 겪은 미국은 2차 대전을 기점으로 군비경제를 통해 돌파구를 찾았다. 베트남전도 군수산업 중심의 경제성장을 통해 자본주의의 장기침체를 지연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2차 대전 뒤 군수산업의 기술발달이 경제발전을 촉진시켰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1991년 걸프전 직후 미국의 국내총생산은 오히려 1.3% 감소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경제가 신경제 호황을 누렸지만 걸프전이 1990년대 초 미국경제를 침체에 빠뜨린 것이다. 이라크가 유전을 불태워버린 뒤 유가는 치솟았고 기업 투자는 위축됐다. 삼성경제연구소 오승구 연구위원은 “전쟁 이후 경제가 좋아졌다지만 대부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의 성장이다. 전쟁이 직접적으로 경제성장을 가져온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더이상 달러 지켜주지 않을 것 이번 이라크 침공은 침체된 미국경제에 ‘전후 선물’을 가져다주기는커녕 미국경제를 더 깊은 수렁에 빠뜨릴 공산이 크다. 전쟁 전개양상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미국은 이번 전쟁에 최소한 1천억달러 이상을 쏟아부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종전 이후 미군 약 4만명이 5년에 걸쳐 이라크에 주둔하면 적어도 450억달러가 추가 투입돼야 한다. 미국의 무역적자(약 5천억달러)가 국내총생산의 5%에 달하는 판에 막대한 군비지출은 재정적자를 심화시켜 경제를 더 위협하게 된다. 물론 미국의 석유·군수 산업 이른바 ‘올드 머니’는 큰돈을 챙길 수 있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대규모 전쟁을 기다려온 미국 군수산업의 이익이 미국경제 성장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은 아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전쟁이 조기 종결되더라도 이슬람권의 테러위협 등 불확실성이 남아 있고, 장기화되면 국제유가 급등과 기업수익 악화, 민간소비 위축 그리고 전쟁비용 급증이 미국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해 세계경제가 동반침체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가뜩이나 침체된 세계경제를 다시 폭격하는 셈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번 전쟁이 미국 중심의 세계경제 질서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역사적’ 견해다. 1차 대전의 전쟁특수로 높은 경제성장을 이룬 미국은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지위가 바뀐 뒤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으로 등장했다. 세계금융의 중심은 런던에서 월가로 옮겨졌다. 그러나 거대한 군사비 증강에 따라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적자로 미국은 결국 1985년 채무국으로 전락했다. 당시 엔화는 달러보다 비싸졌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인들은 미국의 부동산과 영화사를 마구 사들였다. 세계 최대 채무국인 미국의 순외채는 2조5천억달러로 국내총생산의 25%에 달한다. 해가 지지 않던 대영제국도 채무국으로 전락한 순간 몰락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대규모 쌍둥이 적자(재정·무역 적자)는 달러가치의 급격한 추락을 가져오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빚쟁이 미국의 달러는 아직 건재하다. 국제사회의 협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미국을 위해 미 재무부 국채를 사주고, 선진국들은 1985년 플라자 합의로 달러가치 하락을 방어해줬다. 미국의 달러패권 유지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월가의 질서’(글로벌 스탠더드)를 앞세운 금융지배가 뒷받침했지만, 사실 국제사회 협조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지 못한 채 전 세계적 반전시위 속에 미국 홀로 치르고 있다. 영국이 합세했지만 동맹 없는 전쟁이다. 이에 따라 무역협정 등 외교통상분야에서도 미국이 국제사회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해 어려운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개발연구원 심상달 연구위원은 “유엔 결의도 없고 명분 없는 전쟁이라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앞으로 크게 삐걱거릴 것이다. 당장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도 김이 빠질 것이다”고 내다봤다. 미국이 주도해온 WTO 뉴라운드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는 등 미국 중심의 경제질서가 흔들리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지난 9·11 테러 이후 전 세계가 동시에 금리를 인하해 경제회복에 나섰지만 이제는 그런 정책공조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국제공조가 깨지고 미국이 ‘동맹 없는 새 시대’로 진입하면서 미국의 세계경제 리더십도 약해지지 않을 수 없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박사는 “미국은 경제적 지위가 약화되자 정치·군사적 우위로 달러가치 하락을 저지하면서 경제적 지배 유지를 꾀해왔다. 그러나 국제적 반발 속에 전쟁을 감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엔론사태로 미국식 자본주의인 글로벌 스탠더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안팎으로 미국 헤게모니가 약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가·달러·IT의 3중 거품
WTO 등 다자간협상이 각국의 저항에 부닥칠 경우 미국은 양국간 또는 몇개국 간 쌍무주의적 해결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자연히 지역간 갈등 속에 보호무역주의가 대두하고 세계경제 위축은 불가피하다. 오승구 연구위원은 “금융·재정에서 미국이 국제사회의 정책적 협조를 얻기가 어려워졌다. 전쟁 뒤에도 테러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미국의 투자·소비 심리 회복은 지연되고 미국과 유럽 간 갈등으로 전 세계 교역이 축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그동안 생산부문, 즉 제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자 투기적 부문(금융자본)과 서비스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WTO와 IMF는 금융·서비스를 통한 미국의 세계경제 지배를 뒷받침하는 기구였다. 그러나 미국식 세계화에 대한 저항의 격화는 미국이 주도해온 경제에 균열을 내고, 이는 세계경제 질서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이미 정점에 달했다는 주장도 있다. 대규모 무역적자와 전쟁수행 비용으로 미국의 재정적 지위는 갈수록 약해지고 있고, 주가·달러·정보기술(IT)의 3중 거품이 미국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게다가 글로벌 스탠더드까지 동요하면서 미국의 헤게모니는 추락하고 있다. 특히 지난 50년간 세계통화로 독주해온 달러는 미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이미 위협받고 있다. 유로화 등장은 더욱 큰 도전이다. 중국 등은 달러의 전횡을 견제할 목적으로 유로화 선호를 일찌감치 밝혀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쟁은 석유수입 의존도가 80∼90%에 이르는 유럽연합에 대한 석유 통제를 통해 유럽경제를 어렵게 만들어 유로화를 공격한다는 다목적 ‘경제전쟁’이다. 군사패권을 통해 달러패권을 보호한다는 구상인데, ‘추락하는 달러’를 한복판에 두고 전후 세계경제 지형은 큰 변화를 겪을 공산이 크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지난 3월24일 이라크전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뉴욕 증시는 폭락했다. 뉴욕 증권거래소의 중개인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시세판을 보고 있다. (AP연합)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2차 세계대전이 세계경제를 침체에서 구해냈다 하고, 전쟁은 경제성장의 자극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지만 당찮은 말이다. 1991년의 경기침체를 가져온 걸프전은 전쟁이 경제에 유해하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줬다”고 반박했다. 또 “이번 전쟁은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처럼 유가 폭등을 낳아 어려운 세계경제에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 이후 이라크에 친서방 정권이 들어서면 원유 생산량이 증가하고, 이것이 유가 안정을 낳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이 틀렸다는 것이다. 미국 프린스턴대 폴 크루그먼 교수도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이나 1979년 이란혁명 때도 원유 생산량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않은 반면 간접적인 정치적 파급효과가 유가 폭등을 불렀다”고 지적했다. 물론 1929년 대공황을 겪은 미국은 2차 대전을 기점으로 군비경제를 통해 돌파구를 찾았다. 베트남전도 군수산업 중심의 경제성장을 통해 자본주의의 장기침체를 지연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2차 대전 뒤 군수산업의 기술발달이 경제발전을 촉진시켰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1991년 걸프전 직후 미국의 국내총생산은 오히려 1.3% 감소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경제가 신경제 호황을 누렸지만 걸프전이 1990년대 초 미국경제를 침체에 빠뜨린 것이다. 이라크가 유전을 불태워버린 뒤 유가는 치솟았고 기업 투자는 위축됐다. 삼성경제연구소 오승구 연구위원은 “전쟁 이후 경제가 좋아졌다지만 대부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의 성장이다. 전쟁이 직접적으로 경제성장을 가져온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더이상 달러 지켜주지 않을 것 이번 이라크 침공은 침체된 미국경제에 ‘전후 선물’을 가져다주기는커녕 미국경제를 더 깊은 수렁에 빠뜨릴 공산이 크다. 전쟁 전개양상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미국은 이번 전쟁에 최소한 1천억달러 이상을 쏟아부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종전 이후 미군 약 4만명이 5년에 걸쳐 이라크에 주둔하면 적어도 450억달러가 추가 투입돼야 한다. 미국의 무역적자(약 5천억달러)가 국내총생산의 5%에 달하는 판에 막대한 군비지출은 재정적자를 심화시켜 경제를 더 위협하게 된다. 물론 미국의 석유·군수 산업 이른바 ‘올드 머니’는 큰돈을 챙길 수 있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대규모 전쟁을 기다려온 미국 군수산업의 이익이 미국경제 성장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은 아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전쟁이 조기 종결되더라도 이슬람권의 테러위협 등 불확실성이 남아 있고, 장기화되면 국제유가 급등과 기업수익 악화, 민간소비 위축 그리고 전쟁비용 급증이 미국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해 세계경제가 동반침체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가뜩이나 침체된 세계경제를 다시 폭격하는 셈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번 전쟁이 미국 중심의 세계경제 질서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역사적’ 견해다. 1차 대전의 전쟁특수로 높은 경제성장을 이룬 미국은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지위가 바뀐 뒤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으로 등장했다. 세계금융의 중심은 런던에서 월가로 옮겨졌다. 그러나 거대한 군사비 증강에 따라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적자로 미국은 결국 1985년 채무국으로 전락했다. 당시 엔화는 달러보다 비싸졌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인들은 미국의 부동산과 영화사를 마구 사들였다. 세계 최대 채무국인 미국의 순외채는 2조5천억달러로 국내총생산의 25%에 달한다. 해가 지지 않던 대영제국도 채무국으로 전락한 순간 몰락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대규모 쌍둥이 적자(재정·무역 적자)는 달러가치의 급격한 추락을 가져오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빚쟁이 미국의 달러는 아직 건재하다. 국제사회의 협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미국을 위해 미 재무부 국채를 사주고, 선진국들은 1985년 플라자 합의로 달러가치 하락을 방어해줬다. 미국의 달러패권 유지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월가의 질서’(글로벌 스탠더드)를 앞세운 금융지배가 뒷받침했지만, 사실 국제사회 협조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지 못한 채 전 세계적 반전시위 속에 미국 홀로 치르고 있다. 영국이 합세했지만 동맹 없는 전쟁이다. 이에 따라 무역협정 등 외교통상분야에서도 미국이 국제사회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해 어려운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개발연구원 심상달 연구위원은 “유엔 결의도 없고 명분 없는 전쟁이라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앞으로 크게 삐걱거릴 것이다. 당장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도 김이 빠질 것이다”고 내다봤다. 미국이 주도해온 WTO 뉴라운드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는 등 미국 중심의 경제질서가 흔들리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지난 9·11 테러 이후 전 세계가 동시에 금리를 인하해 경제회복에 나섰지만 이제는 그런 정책공조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국제공조가 깨지고 미국이 ‘동맹 없는 새 시대’로 진입하면서 미국의 세계경제 리더십도 약해지지 않을 수 없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박사는 “미국은 경제적 지위가 약화되자 정치·군사적 우위로 달러가치 하락을 저지하면서 경제적 지배 유지를 꾀해왔다. 그러나 국제적 반발 속에 전쟁을 감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엔론사태로 미국식 자본주의인 글로벌 스탠더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안팎으로 미국 헤게모니가 약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가·달러·IT의 3중 거품

사진/ 이번 전쟁은 2차대전과 달리 미국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남부에서 미국에게 포로로 잡힌 이라크 장교들(위).(GAMMA) 지난해 1월2일 유로화 출범을 기념해 프랑스 퐁네프 다리에 붙어 있는 유로화 로고. (SYG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