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보도자료나 뿌리라고 NO!

453
등록 : 2003-04-03 00:00 수정 :

크게 작게

불황 뚫고 성장하는 홍보대행사들 …컨설팅·위기관리 등 전문화된 분야로 넓혀간다

홍보대행사 퓨처커뮤니케이션은 2002년 9월 덴마크 출신의 한 교포 사업가로부터 12억원짜리 스웨덴 스포츠카 코닉세그 두대를 수입해 판매하려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최고급 벤츠 승용차가 2억원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2억원이란 차값은 그야말로 천문학적 액수였다. 과연 누가 차를 살 것인가 가격을 공개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값비싼 차인데 시승행사를 꼭 해야 하나 모든 것이 쉽지 않았다.

팬택이 골리앗을 이긴 비결

사진/ 팬택&큐리텔 홍보를 맡고 있는 장영수 사장(가운데) 등 미디어엔터 직원들. 홍보대행사들은 예전의 단순한 언론홍보 대행에서 벗어나 컨설팅·위기관리 등 전문화되고 특화된 분야로 성장해가고 있다.


퓨처커뮤니케이션은 고심한 끝에 대대적 홍보를 시작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먼저 언론의 주목을 받아 구매층의 관심을 끄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주저하는 차량 수입선에 대해 “언론의 비판은 부담이 되겠지만 그래도 국민의 관심을 높여야 한다”고 설득했다. 고장이라도 날까봐 시승행사를 하지 않으려던 수입선 관계자들을 설득했다. 이렇게 해서 호화사치성 행사라는 비판 속에 런칭 행사를 치렀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열흘 만에 두대 모두 팔렸다. 홍보대행사 전문성이 진가를 발휘한 프로젝트였다.

휴대폰을 생산하는 중견업체 팬택은 2001년 9월 옛 현대전자 휴대폰 사업부문인 큐리텔을 인수하면서 삼성전자 이성규 전무를 스카우트했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휴대폰 단말기 시장에 중견업체가 야심찬 도전장을 낸 것이다. 심기가 불편하던 삼성전자는 팬택에 대해 소송을 걸었다. 이 전무가 옮겨가는 것은 경쟁업체 비밀을 빼내가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때부터 삼성전자와 팬택은 법정 안팎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형식상으론 법정소송이었지만 실제로는 국내 여론을 어느 쪽이 주도하느냐의 싸움이었다.

이때 역량을 발휘한 것이 미디어엔터라는 작은 홍보대행사였다. 대외적 홍보를 제대로 해본 적 없는 팬택은 미디어엔터에 소송과 관련한 여론조성을 맡겼고, 대우그룹과 LG그룹 구조조정본부 출신인 장영수 미디어엔터 사장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대응논리를 개발하는 데 주력했다. 소송은 1년여의 공방 끝에 2002년 10월 팬택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지만 전략 컨설팅이 전문인 홍보대행사를 동원해 치밀한 전략을 구사한 팬택이 회심의 미소를 지은 것이다. 팬택은 이후 미디어엔터의 제안으로 홍보팀을 설립하고, 새로운 기업문화 형성 방안을 마련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홍보 업무 비중을 크게 늘렸다.

이들뿐 아니다. 최근 들어 이러한 홍보대행사들 활약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퓨처커뮤니케이션의 경우는 홍보대행사의 전문성을, 미디어엔터의 경우는 컨설팅으로까지 영역을 넓힌 홍보대행사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대신 배포해주는 단순 업무에서 벗어나 홍보대행사들이 종합 홍보(PR)회사로서의 전문성과 입지를 다져가는 것이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홍보대행사들 수는 수백개에 이른다. 그러나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홍보대행사들은 한국PR기업협회에 가입해 있는 23개를 포함해 수십개뿐이다. 물론 규모도 다양하다. 인컴브로더 같은 회사는 직원 수가 70명에 이르는 대규모 업체다. 반면 직원 3~4명을 둔 소규모 업체도 있다.

“업무 중 절반이 컨설팅”

사진/ 정혜숙 링크인터내셔널 사장, 김경해 커뮤니케이션즈코리아 사장, 손용석 인컴브로더 사장, 신성인 KPR 사장, 김장열 코콤포터노벨리 사장/ 로버트 피카드 에델만코리아 사장, 정윤영 메리트/버슨-마스텔러 사장, 정미홍 J&A 사장, 이승일 퓨처커뮤니케이션 사장, 조재

비교적 규모가 큰 업체들은 IBM·화이자·리바이스·아가방 등을 홍보하는 인컴브로더, GM대우·모토로라·프루덴셜생명보험·마이크로소프트 등 홍보를 맡고 있는 KPR, 폴크스바겐·피죤·애플컴퓨터·씨티은행 등의 홍보를 맡고 있는 코콤포터노벨리, 퀄컴 CDMA사업부·존슨앤존슨·골드만삭스·비자 등을 홍보하는 메리트/버슨-마스텔러, 기아자동차·리만브라더스 등의 홍보를 맡고 있는 에델만코리아, 르노삼성자동차·야후코리아·유한킴벌리 등을 홍보하는 커뮤니케이션신화 등 30~40개다. 이들은 전문 홍보대행사로서 입지를 다진 업체들로 계속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 밖에도 1987년 국내 최초의 홍보대행사로 출범한 커뮤니케이션즈코리아, 한국PR기업협회 회장사를 맡고 있는 링크인터내셔널 등이 중견업체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가운데 인컴브로더, 메리트/버슨-마스텔러, 에델만코리아 등은 외국계 홍보대행사들이다.

중요한 것은 홍보대행사들이 최근 극심한 경제불황에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에 민감한 업종임에도 새로운 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힘으로써 시장규모가 커지고 있다. 과거에 홍보대행사를 쓰지 않던 중견기업이나 대기업들이 홍보대행사를 쓰기 시작했다. 기업 이미지 홍보는 본사가 담당하더라도 개별 제품과 브랜드 홍보는 전문적 홍보대행사에 맡기는 것이 낫다는 판단 때문이다. 몸집을 줄이려는 기업들의 아웃소싱 전략도 홍보대행사들의 성장에 한몫했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컨설팅 분야로의 진출이다. 대표적 회사가 코콤포터노벨리다. 코콤은 산하에 코콤커뮤니케이션 전략연구소(소장 백기승)를 설립해 홍보전공 박사 1호인 차희원씨를 영입하는 등 전문인력을 확충해 기업 컨설팅과 위기관리쪽으로 회사 기능을 특화시키고 있다. 단순한 언론홍보에 그치지 않고 기업 이미지를 장기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컨설팅을 제공하려는 목적이다. PR 차원의 위기관리란 기업 이미지가 크게 훼손될 수 있는 위기를 미리 점검해 예방하고, 실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이에 대처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실제로 코콤은 2002년 해찬들의 위기관리 프로그램을 맡아 마스터플랜을 짜주고 설명서를 제작해 전 직원을 교육했다. 관리자급 이상에 대해서는 실제 상황처럼 시뮬레이션 훈련까지 했다. 다른 회사도 비슷하다. 점차 컨설팅 업무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KPR의 신성인 사장은 “예전에는 외국기업을 제외하고는 컨설팅 기능을 요구하는 회사가 없었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전체 업무 가운데 절반을 컨설팅이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고 말했다.

공공기관도 홍보대행사의 고객

더불어 관심을 끄는 것은 홍보대행사들 사업영역이 공공기관들로 넓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부처나 산하기관과 단체, 공기업은 물론 대학이나 지방자치단체 등도 이젠 홍보대행사를 쓰고 있다. 민간기업 마인드를 가진 홍보분야 전문인력을 동원하려면 아무래도 홍보대행사들이 낫기 때문이다. 한국방송 앵커 출신 정미홍씨가 설립한 홍보대행사 J&A는 올해 초 강남구의 온라인행정시스템 홍보를 맡았다. 단순히 구의 사업실적을 포장해서 알리는 것이 아니다. 20%대에 머물고 있는 온라인행정시스템 이용률을 50%대로 올려 행정업무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J&A는 소비재 중심의 제품 런칭 PR를 중점적으로 하면서 공공기관 PR로 영역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월드컵 때 해외홍보를 맡은 것을 비롯해 서울대·대한적십자사 등 여러 공공기관의 PR를 맡고 있다. 정미홍 사장은 “우리나라는 총체적인 홍보부족 국가다. 전문 홍보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하고도 효과를 절반밖에 거두지 못한다. 그런 뜻에서 공공기관 홍보는 예전의 기관장 얼굴 알리기식 홍보가 아니라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정책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의 일환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홍보도 이젠 광고처럼 체계적인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격상되고 있는 것이 최근 추세다. 따라서 홍보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소비자 의식 조사 등이 동원된다. 홍보업무가 광고와 동등한 대접을 받고 있는 미국에서는 국가가 중요 정책을 대외에 공포할 때 반드시 전문 홍보대행사를 통해 이를 시행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 홍보업계는 거대한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국PR기업협회 회장인 정혜숙 링크인터내셔널 사장은 “아직 PR를 투자가 아니라 비용이라고 생각하는 기업들이 많다. 그것이 홍보대행사들의 발전을 막고 있다. 광고가 하나의 전문영역으로 자리잡았듯 홍보도 새로운 전문영역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