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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SK는 언제쯤 OK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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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3-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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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회계로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 상황…최태원 회장 그룹 지배권도 장담 못 해

사진/ (박승화 기자)
1999년 7월 대우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채권단은 김우중 전 회장의 계열사 주식지분을 모두 담보로 확보했다. 더불어 처분동의서까지 받아냈다. 기업 회생이 여의치 않을 경우 지분을 매각해 손실을 보전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로부터 불과 2~3달 뒤 김 전 회장은 회사 정상화를 포기하고 장기외유를 떠났다. 계열사들은 줄줄이 부도가 났으며, 결국 대우는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물론 김 전 회장의 지분은 지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대우의 파멸을 연상케 하다


4년이 채 안 된 지금 SK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SK글로벌의 대규모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나면서 채권단이 오너인 최태원 SK(주) 회장에 대해 계열사 보유지분을 모두 담보로 확보한 것이다. 나아가 주식처분 동의서까지 받기로 했다. 언뜻 김우중 전 회장의 모습을 연상하게 되는 대목이다.

SK글로벌 분식회계 사실이 터져나오며 SK는 창사 이래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신용평가기관들은 SK 계열사들에 대한 신용등급을 서둘러 낮추고 있다. SK 계열사들의 주가는 50%까지 하락했다. SK글로벌 주가는 2월 초 7900원에서 3200원대로, SK텔레콤 주가는 18만3500원에서 14만원대로, SK(주) 주가는 1만3천원에서 6100원대로 떨어졌다. SK(주)는 3일 연속, SK글로벌은 4일 연속 하한가까지 맞았다.

사진/ 지난 3월14일 열린 SK(주)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들이 최근의 SK사태와 관련해 경영진을 비판하고 있다. (한겨레 김진수 기자)
불과 한달 전만 하더라도 SK는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던 재벌기업이었다. 손길승 SK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에 오른 것도 이러한 사세를 등에 업고 이뤄졌다. 그러나 검찰의 최태원 SK 회장 구속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SK글로벌뿐 아니라 그룹 전체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SK는 지금 몸을 바짝 낮추고 있다. SK증권 외자유치 과정에서의 이면계약, SK(주)와 워커힐 주식의 맞교환 두 가지 건으로 최 회장이 구속될 때까지만 해도 사태가 이렇게 악화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면 정상이 참작될 것이고, 최 회장이 몇달 감방생활을 하면 모든 것이 정상화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다. 이제까지 대부분의 재벌 손보기가 그런 식의 용두사미로 끝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가 터져나오면서 그룹이 뿌리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 특히 최태원 회장의 그룹 지배권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최 회장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은 모두 채권단 담보로 들어갔다.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SKC&C 지분 44.5%를 비롯해 SK(주) 0.11%, SK글로벌 3.31%, SK케미칼 6.84%, 워커힐호텔 40.69% 등이 최 회장의 계열사 지분이다. 물론 채권단이 주식을 담보로 잡았다고 해서 소유권을 당장 빼앗기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최 회장 소유다. 그러나 최 회장은 주식처분 동의서까지 써줘야 할 입장이어서 사실상 채권단에 자신의 모든 운명을 맡긴 상황이다.

최 회장의 입장이 어려운 것은 오너의 지분이 적은 SK 특성 때문이다. 최 회장 지분을 제외하면 동생인 최재원 SK텔레콤 부사장, 사촌형제인 최신원 SKC 회장과 최창원 SK글로벌 부회장, 고종사촌인 표문수 SK텔레콤 사장 등 오너 일가의 지분은 거의 없다. 최종현 전 회장이 숨진 뒤 최태원 회장에게 지분을 대부분 몰아줬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계열사들 지분은 많다. 자기 지분은 없이 회삿돈으로 다시 다른 회사를 사들여 지배하는 과거 선단식 경영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SK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오너의 지분이 적기 때문에 어느 한순간에 경영권을 잃을 수 있는 것이다.

최 회장 출감 뒤 바로 복귀 힘들어

사진/ 지난 3월13일 SK글로벌 분식회계 파문으로 주식 환매 사태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30여개 투신사 사장단이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있다.

현재 SK그룹의 지배구조는 최태원 회장이 44.5%의 지분을 갖고 있는 SKC&C가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SKC&C가 SK(주)를 지배하고, SK(주)가 SK텔레콤과 SK글로벌 등 다른 계열사들을 지배하는 2단계 구조로 되어 있다. 그룹 핵심에 SK(주)가 놓여 있는 셈이다. SKC&C가 갖고 있는 SK(주) 주식지분은 8.6%다. 그러나 2002년 4월1일부터 시행된 출자총액제한 제도 때문에 SKC&C가 2%의 의결권밖에 행사하지 못하게 되자 6.6%에 해당하는 지분을 최태원 회장 소유 워커힐 주식과 맞교환한 것이다. 이로써 최태원 회장은 SK(주)를 직접 지배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SK는 최 회장이 구속되고 SK글로벌 사태가 터지자 3월12일 과거의 주식맞교환을 무효화하고 이를 원상회복시켰다.

이로 인해 지배구조는 2002년 3월의 상태로 돌아갔다. SKC&C가 지주회사로서 SK(주) 지분 8.6%를 보유하고 있지만 2%의 의결권밖에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사실상 지주회사로서의 영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물론 SK(주)에 대한 지배권이 당장 흔들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SK건설(2.37%), SK케미칼(2.26%), 최태원 회장(0.71%) 등 개인과 계열사 지분을 모두 합치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이 8%가량 된다. 그리고 저팬아시아와 이머전트캐피탈이란 회사 명의로 해외에 감춰둔 것으로 밝혀진 SK(주) 주식 1천만주(8%)가 있다. 여기에도 자사주 10.4%를 합치면 26%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사주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지만 필요할 경우 우호적인 세력에게 팔아서 의결권을 행사하게 할 수 있다. SKC&C가 갖고 있는 출자총액 초과지분 6.6%도 마찬가지다. 다른 우호세력에게 넘기면 의결권 행사가 가능하다. 따라서 당장 SK(주)가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되거나 주인 없이 흔들리는 경우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요한 것은 SK 내부의 문제다. 최태원 회장은 출감한 이후에도 예전의 영향력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여론의 따가운 눈길 때문에 경영 전면에 나서기 어렵다. SK 관계자는 “출감 이후에도 상당 기간 경영 일선에 복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5년 안에 정상화?

SK글로벌도 최 회장의 발목을 잡는다. 최 회장 지분은 SK글로벌이 정상화되기까지는 계속 담보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SK글로벌의 정상화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부채가 너무 많다. 현재 파악된 국내외 부채만 모두 8조2천억원이다. 수출금융을 제외하면 5조9천억원으로 추산된다. 게다가 신용도가 크게 손상됐기 때문에 국내외 영업도 지장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해외상사 업무가 우려되는 분야다. 대우사태 이후 가장 영업에 어려움을 겪은 분야가 (주)대우의 해외영업 부문이었다.

SK는 SK글로벌이 안정적인 사업구조를 갖고 있어 정상화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자구계획에는 5년 안에 우량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구상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5년이 아니라 10년 가까이 걸릴 수 있다. 최태원 회장은 오너로서의 영향력을 회복하고 재벌기업 총수 자리에 다시 올라서기 위해 10년 이상 길고도 힘겨운 과정을 거쳐야 할지 모른다.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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