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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누구를 위한 책임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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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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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호근 대우계열 구조조정 추진협의회 의장

오호근 대우계열 구조조정 추진협의회 의장을 만난 건 지난 10월5일 밤, 서울역 맞은편에 있는 대우센터 25층 의장실에서였다. 오 의장은 대우자동차 매각작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인물.

대우자동차 매각실패에 따른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던 때여서인지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는 저녁에 곁들인 반주로 불쾌해진 얼굴로 마침 의장직 사퇴서를 쓰고 있었다. 10월10일로 의장직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데 따른 것이었다.

-대우차 매각 실패에 따른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는데.

=당사자가 말을 하면 변명이 될 뿐이다. 변명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렇게 마녀사냥 식으로 몰아가는 게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정부나 언론이 대우차의 실상과 국제 상거래 관행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 대우차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파는 문제를 마치 담보로 잡은 아파트 1채를 파는 것과 똑같이 보고 있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대우차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대단히 어려운 과제다. 책임질 사람한테 책임을 지워 대우차의 가치가 올라가고 문제가 풀리면 오죽이나 좋겠나. 지금은 정부, 채권단, 언론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머리를 맞대도 힘든 상황이다.

-우선 협상 대상자로 포드 1곳만 선정한 것은 잘못이었다는 지적도 많았는데.

=대우차 매각 입찰 제안서를 평가한 위원 6명이 만장일치로 결정한 사항이다. GM 등 다른 인수 후보자들이 적어낸 가격이 포드에 비해 워낙 적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가격 외에 다른 조건까지 따지면 격차는 더욱 커진다. GM이 제시한 가격 조건대로라면 채권단에 돌아갈 몫은 아마 한푼도 없을 것이다.

-우선 협상 대상자로 결정할 당시 위약금 조항 등 ‘구속력 있는’(binding) 조건을 붙이지 못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대응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일일이 답변하지도 않았다. 이행보증금을 안 받았다느니, 위약금을 무는 장치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등 말들이 많지만 국제적인 인수·합병(M&A) 관행을 너무 모르고 하는 얘기다. 구속력 있는 조건은 계약이 이뤄졌을 때 붙일 수 있는 것이다. 대우차 매각이 계약단계까지 왔는가. 아니지 않은가.

오 의장은 흘려 듣고 잊으라며 임진왜란 때의 의병 얘기를 꺼냈다.

“임란 때 관군이 잇따라 패해 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 민간인들이 일어나 의병을 조직, 왜적과 대항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이기기도 하고 신식무기로 무장한 왜병에 패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만약 이길 때는 아무 얘기 없다가 잘 싸우다 지니까 (민간인들로 구성된 의병을) 군법회의에 회부한다면 납득할 수 있겠는가.” 대우차 매각무산은 민간부문의 상거래 과정에서 생긴 일인데 정부가 나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을 빗댄 말이다.

오 의장은 지난 98년 6월부터 기업구조조정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아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주도했다. 올해 2월부터는 대우구조조정추진협의회 의장으로 일해왔으며 10월10일로 의장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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