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경제부처 요직 독차지한 재경부 출신들…막강 권력으로 금융계 지배하던 모피아의 부활인가
경기도 과천시 관문로 88번지. 쾌적한 관악산 자락에 터를 잡은 정부과천청사 중 재정경제부 건물은 단연 두드러진다. 법무부(1~4층)와 함께 재경부(5~8층)가 들어서 있는 1동 건물은 뒤쪽 터 중앙의 도드라진 언덕에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다. 건물의 겉모양에서 이미 재경부는 다른 부처를 압도하고 있다.
재경부 건물을 나서면 저 아래 왼쪽으로 공정거래위원회, 오른쪽으로는 산업자원부·건설교통부·농림부가 마치 호위하듯 서 있다. 이 때문에 재경부가 법무부를 깔고 앉아 다른 경제부처들을 호령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는 단지 외부인의 느낌에 머물지 않는다. 건물을 나설 때 기분이 어떠냐는 물음에 재경부의 한 국장급 간부는 “(다른 부처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사실, 기분은 좋다”며 웃었다.
건물 배치에서 드러나는 재경부의 위세는 단지 풍수지리적 측면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재앙 만난 다른 경제부처들
지난달 27일 단행된 새 정부의 개각은 재경부의 막강한 ‘힘’을 보여준 또 한번의 사건이었다. 정통 재경부 관료인 김진표씨가 재벌개혁론자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제치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에 발탁된 게 대표적 예다. 뿐만 아니라 옛 재정경제원(1994~97년)에서 한솥밥을 먹던 윤진식 재경부 차관이 산업자원부 장관에, 재경원에 뿌리를 두고 있는 박봉흠 기획예산처 차관이 장관에, 경제기획원 예산실장을 지낸 이영탁 KTB네트워크 회장이 국무조정실장에 뽑혔다. 옛 경제기획원, 재무부 등 범 재경부 출신으로 분류되는 관료가 무려 5명이나 새 정부 초대 내각에 장관으로 발탁된 것이다. 경제부처 가운데 재경부 관료들의 표적에서 벗어난 곳은 정보통신부(진대제), 해양수산부(허성관) 두곳에 불과하다.
김 부총리는 재무부 세제심의관, 재경부 세제실장 등 세제 분야의 요직을 두루 거친 세제통이다. 국무조정실장으로 재직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에 발탁된 데 이어 이번에 경제부처 수장 자리에 올랐다. 김 부총리의 행시 13회 동기인 박 예산처 장관은 차관에서 곧바로 승진한 예산분야 전문가로 역시 범 재경부 출신으로 분류된다. 옛 재경원에서 경제개발예산심의관으로 일한 바 있다. 윤진식 장관, 이영탁 실장 역시 모두 재경원에서 한식구였다. 조달청장으로 재직하다가 청와대에 입성한 권오규 정책수석 역시 마찬가지다. 뚜렷한 개혁성을 표방해 관료사회에 불신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던 노무현 정부의 조각 내용으로는 뜻밖이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조각을 포함한 다섯 차례의 개각에서 범 재경부 출신이 많아야 3명 정도였다는 것과 비교할 때 더욱 그렇다.
재경부 관료 출신들의 약진에 대해 재경부 안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빠르게 극복하면서 재경 관료들이 새롭게 평가받은 것이라며 득의만면한 반면, 일각에선 외환위기의 주범으로까지 몰렸던 ‘모피아’(옛 재무부의 영문명칭 MOF와 폭력조직인 마피아의 합성어)가 부활했다며 냉소를 보내고 있다.
재경부의 득세는 산업자원부·건설교통부 등 다른 경제부처에는 재앙이었다. 오영교 코트라(KOTRA) 사장 등 전직 차관급 관료가 장관으로 유력하다는 소식에 기대를 걸었던 산자부는 뜻밖에 윤진식 재경부 차관이 임명되자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금융전문가가 실물경제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겠느냐며 은근히 비꼬는 분위기가 나돌기도 했다. 산자부에는 이전에도 임창렬·정덕구씨 등 재경부 출신이 장관으로 내려온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각종 금융 기관도 싹쓸이
건교부 관료들 역시 추병직 차관의 내부 승진을 기대하다 범 재경부 출신인 최종찬씨에 밀려 허탈해졌다. 모피아의 부활이란 표현이 나올 만도 한 상황인데, 정작 재경부 관료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새 정부의 장·차관급 인사를 잘 봐라. 재경부가 득세하고 있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인사 숨통이 트인 것은 기획예산처뿐이다. 차관이 내부 승진하고, 정부개혁실장이 조달청장으로 가지 않았나. 예산처는 이제 재경부와 같은 식구가 아니다. 재경부는 극심한 인사 적체에 빠져 있다.”(재경부 고위 간부) 당연히 재경부 출신이 차지해야 할 자리인 조달청장을 예산처에 빼앗겨 1급 고위직들이 나갈 자리가 없어지고, 연쇄적으로 내부 승진 인사도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자칫 옷을 벗게 될지 모를 당사자들로선 이런 푸념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이는 그다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산자부·건교부를 재경부 출신들이 접수한 것은 제쳐두고라도 후속 차관급 인사에서 국세청·관세청장에 당연히 정해진 수순인 듯 모피아로 분류되는 이용섭 관세청장, 김용덕 재경부 국제업무정책관이 등용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관료사회 영역을 넘어 국책 은행, 증권 유관기관, 각종 협회 등에 재경부 출신이 드넓게 포진하고 있다. 이들 기관의 대표는 너무나 당연한 듯 퇴직한 재경부 출신 관료들이 주거니 받거니 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재경부 출신이 대표를 맡고 있는 기관만 해도 숱하게 많다. 증권거래소·선물거래소·코스닥증권시장·증권전산·증권예탁원 등 증권 유관 기관은 속된 말로 ‘싹쓸이’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은행·수출입은행·기업은행 등 3대 국책 은행의 기관장은 당연히 재경무 몫이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던 예금보험공사·자산관리공사의 사장 역시 재경부 출신 관료들이 대대로 바통을 이어받고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보증을 서주는 구실을 하며 수수료를 챙기는 신용보증기금·기술신용보증기금 역시 재경부 출신들이 내려가 접수하는 관행은 여전히 굳건하다.
그래서인지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들에게 재경부는 다른 경제부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재경직 행시를 통과해 지난해 4월부터 수습과정을 밟고 있는 행정고시 45회 기수의 포진에서 이는 잘 드러난다. 당시 재경직 행시 합격자는 88명이었는데, 극히 일부를 빼고는 합격 성적 순으로 위에서 22명까지 줄줄이 재경부를 희망해 들어왔다. 이들 22명은 면면도 화려하다. 출신 대학을 보면, 연세대 6명, 부산대 1명을 뺀 나머지 15명은 모두 서울대였다.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합쳐져 예산·금융·세제를 총괄한 공룡부처인 재경원이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몰려 재경부·기획예산처·금감위로 쪼개지면서 한때 모피아는 몰락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이 때문에 새로 행시에 합격해 부처에 배치되는 이들 사이에서 공정거래위원회·정보통신부 등이 인기 부처로 떠오른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는 반짝 인기에 불과했으며 재경부는 여전히 건재함을 지금의 현실이 잘 보여주고 있다. 조각 내용에서 볼 수 있듯 새 정부 들어 ‘파워’가 더욱 커지고 있는 분위기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다.
금감위 통해 금융권 장악
물론 옛 재무부 시절 당시의 모피아와 지금의 재경부 출신 관료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난다. 경제기획원 출신이 섞여 있는데다 금융감독·예산 기능이 금감위·예산처로 이관됨에 따라 남아 있는 정책 수단은 세제 및 금융분야의 법제 구실뿐이다. 거시경제 동향을 점검하고 경제정책 전반을 조정하는 중요한 구실이 있긴 하나, 외부에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수단은 되지 못한다. 모피아라는 조어를, 재무부로부터 핍박받던 금융계에서 만들어낸 것으로 추정됨을 감안하면 모피아 본뜻에 가까운 곳은 오히려 금감위·금감원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재경부 관료들에 대해 모피아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왜일까 금융감독 기능이 떨어져나갔지만, 재경부는 한식구로 분류되는 금감위를 통해 금감원, 나아가 금융계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DJ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행은 은행감독원을 통해 금융기관을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그러나 은행감독원이 보험감독원·증권감독원과 합쳐져 금융감독원으로 재편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재경부에서 파견된 금융감독위원회 관료들은 금감위의 조직과 기능을 점점 키워 이젠의 금감원을 완전히 장악하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금감위원장을 비롯한 금감위 고위 관료들의 인사는 금감위 차원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재경부 인사에 맞물려 돌아가게 돼 있다. 예를 들면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을 거친 뒤 금감위 부위원장을 하고, 산업은행 총재로 갔다가 금감위원장이나 경제부처 장관으로 가는 식이다. 현재의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이 바로 재무부 세제실장 출신으로 산업은행 총재를 거쳐 위원장이 됐다. 유지창 부위원장은 재무부 금융정책과장,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출신이고, 전임 부위원장이었던 정건용 산업은행 총재 역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금감위 부위원장, 산업은행 총재의 수순을 밟아왔다. 재경부는 금감위를 통해 한국은행을 누르고 금융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물론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금융권은 제도와 관행 면에서 큰 변화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재경부 관료들의 태도와 위상 역시 크게 바뀌었다. 외환위기 이전만 하더라도 재무부 사무관이 은행 전무에게 전화를 걸어 호통치는 일이 그다지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지만,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됐다. 낙하산 인사의 양상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일었다. 재무부 출신이 시중은행의 주요 임원으로 입성하는 게 당연시되었지만 지금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예전에 견줘 재경부 출신 인사들이 갈 자리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경제부처에 비교할 때 재경부 출신 관료들의 자리는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전체적인 자리는 줄어들었지만 다른 부처들의 몫을 거의 독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사의 구태는 넘을 수 없나
지난 2001년 <돈이 돌지 않으면 사람이 돌아버린다>를 통해 모피아의 행태를 꼬집어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는 조덕중 현 하나은행 강서지역본부장도 현실이 많이 변했다고 진단한다. 옛 은행감독원 검사역으로도 일한 바 있는 조 본부장은 “국민의 권한을 위탁받은 관료들이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따른 결정을 내리고 낙하산 인사로 산하 기관을 좌지우지하던 예전과는 양상이 크게 달라진 것으로 느낀다”고 말한다. 조 본부장은 그러면서도 “본질적인 의미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낙하산 인사의 대상이 되는 기관이 양적으로 줄었을 뿐 재경부 출신 관료들이 산하기관에 대거 포진되는 현실은 여전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새 정부 장·차관 인사가 마무리되기 무섭게 정부 산하기관, 공기업은 대번에 뒤숭숭해졌다. 후속 인사로 본부에서 떨려나온 이들이 밀고 들어오면 기존 기관장들이 옷을 벗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3월 주주총회 시즌에 접어든 시기적 특수성 탓에 인사를 둘러싼 입소문은 더욱 무성해졌다. 해당 기관 대표의 잔여 임기에 상관없이 누가 나가고 누가 들어온다는 등등….
문제는 때이른 입방아보다 그 내용이다. 장·차관이 행시 몇기이므로 비슷한 기수는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터주면서 아무개 기관을 맡는다는 식이다. 자리에 적합한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떨어져나가는 사람을 위해 자리를 장기말처럼 배치하는 식이다. 경제부처와 산하기관, 공기업을 둘러싼 인사가 재경부 고위 관료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현실은 개혁을 외치는 노무현 정권 아래서도 정말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철벽일까
김영배 기자/ 한겨레 경제부 kimyb@hani.co.kr

사진/ 새로 임명된 차관급 인사들. 재경부의 파워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사진/ 청와대에서 열린 새 정부 차관급 임명장 수여식. 재경부의 독식은 차관급 인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김진표, 윤진식, 최종찬, 박봉흠, 이영탁, 이근영(왼쪽부터)

권오규, 김광림, 변양균, 유지창, 이용섭, 김용덕(왼쪽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