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과 유학·연수 붐으로 서비스 수지 악화… 상품과 서비스 ‘쌍둥이 적자’ 시대 오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작은 무역업체를 운영하는 교포사업가 이아무개(44)씨는 지난 1월 말 사업차 서울을 방문했다가 뜻하지 않은 휴가를 보내야 했다. 국내 일정이 불투명해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하지 못했는데 설 연휴가 낀 것을 깜박한 게 화근이었다. 부랴부랴 항공사에 연락해봤지만 연휴를 해외에서 즐기려는 국내 여행객들이 몰리면서 임시 운항기는 물론 웬만한 우회노선까지 모두 동난 상태였다. 이씨는 꼬박 이틀을 하릴없이 호텔방에서 시간을 허비하다 설 연휴 마지막날 비행기편에 몸을 실었다. 이씨는 “연휴 때 해외 여행객이 많다는 얘긴 들었지만 우회 노선까지 바닥날 정도인지는 상상하지 못했다”며 혀를 찼다.
해외 씀씀이도 갈수록 커져
외환위기 때 주춤한 해외여행과 유학·연수 바람이 다시 거세지면서 나라 살림 전체를 적자로 내모는 주범이 되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제수지동향을 보면, 지난해 연간 경상수지 흑자는 60억9천만달러로 5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지만, 흑자규모는 2001년의 82억4천만달러에 견줘 26%나 줄었다. 특히 수출이 호조를 보인 덕분에 상품수지는 141억8천만달러로 전년보다 흑자폭이 조금(6억9천만달러) 커진 반면, 해외여행 경비, 유학연수비, 로열티 등의 명목으로 해외에 지급한 돈이 급증하면서 서비스수지 적자규모가 전년의 38억2760만달러보다 2배나 불어난 74억6060만달러에 이르렀다. 열심히 수출해 번 돈의 절반가량을 고스란히 다시 해외에 갖다바친 셈이다.
서비스수지 악화의 일등공신은 식을 줄 모르는 해외여행과 유학·연수 붐이다. 경기불안 심리가 퍼지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 이후에도 해외 출국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사상 최대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최대 성수기인 지난 1월에는 전년동기보다 18%가 늘어난 74만2059명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이는 같은 기간 입국자 수의 2배에 가까운 것이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1월 증가세는 방학이라는 계절적 요인에 주5일 근무제 시행, 원화 강세, 설 연휴 등의 요인이 겹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절 요인을 제외하더라도 1998년 이후 해외 출국자 수는 해마다 20~30%씩 급증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실제 98년 이후 외국인 입국자 수는 400만~500만명 수준에서 정체하고 있는 반면, 내국인 출국자 수는 해마다 100만명꼴로 급증해 지난해에는 연간 70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특히 지난해 관광 목적과 유학·연수 목적 출국자 수는 2001년보다 각각 30%(344만명)와 23.8%(34만3천명)가 늘어, 10% 미만 증가에 그친 업무 또는 친지방문 목적 출국자 수 증가율을 크게 앞질렀다. 유학·연수 목적 출국자 수는 97년의 33만5천명을 넘어서 지난해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해외 씀씀이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관세청 집계를 보면, 지난해 1년 동안 해외여행객이 고급 카메라·귀금속·캠코더 등 고가 사치품을 국내에 반입하려다 적발된 건수는 모두 60만4565건으로, 전년(49만712건)에 견줘 23.2%나 증가하며 사상 최대 적발 건수를 기록했다. 전체 출국자 수와 견줘보면 12명에 한명꼴로 해외에 나가 사치품을 사들고 온 셈이다. 또 국내관광 외국인 1명이 우리나라에서 쓰는 돈은 평균 1080달러인 반면, 외국에 나간 한국인이 쓰는 돈은 평균 1165달러에 이른다. 해외 서비스 사용료도 심각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행수지 적자폭도 예상보다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일반 여행수지 적자규모는 23억6460만달러로 전년(1억7380만달러 적자)보다 무려 13배 이상 커졌다. 내국인이 해외에 나가 쓴 돈(지급)은 65억달러에서 76억달러로 크게 증가했다. 반면 외국인 관광객이 국내에서 쓴 돈(수입)은 63억달러에서 52억달러로 줄었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등 굵직굵직한 관광특수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여행수지 적자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유학·연수를 위한 지급액도 2001년 10억6천만달러에서 지난해에는 14억900만달러로 급증했다. 이는 불법 유학생 수가 1999년 1650명에서 2000년 3728명, 2001년에는 7378명으로, 해마다 2배씩 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해외여행과 유학·연수 등을 합쳐, 우리나라가 지난해 전체 여행수지에서 까먹은 돈은 37억7천만달러로, 전체 경상수지 흑자규모의 60%를 넘는다. 여행수지는 96년과 97년 각각 26억달러와 22억6천만달러 적자를 냈으나, 외환위기 직후인 98년과 99년에는 해외여행객이 급감하면서 각각 34억4천만달러와 19억6천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0년 3억달러 적자로 돌아선 뒤 적자폭이 2001년에는 12억3천만달러, 지난해에는 37억7천만달러로 눈덩이처럼 커졌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도 여행수지는 45억달러를 웃도는 사상 최대 적자행진을 이어갈 것이라는 게 한은의 전망이다.
해외로 돈이 빠져나가는 또 다른 구멍은 각종 해외 서비스 사용료다. 지난해 국내기업들이 해외에 로열티, 특허권료, 통신료, 마케팅과 컨설팅 비용 등으로 지급한 돈은 158억5천만달러인 반면, 같은 명목으로 거둬들인 수입은 97억7천만달러에 그쳐, 이 부문 적자가 60억8천만달러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해외여행이나 유학비용이 증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우리 경제가 구조적으로 해외에 지불하는 서비스 대가가 크다는 점도 수지 악화의 주된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수출이 잘돼 상품수지가 제아무리 흑자를 유지해도 서비스수지가 이처럼 급속히 악화된다면 전체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한국은행 국제수지통계팀 이인규 차장은 “자동차나 반도체를 아무리 열심히 팔아도 해외로 빠져나가는 돈이 많으면 밑빠진 독에 물 붓기다. 로열티 등 고정적으로 외국에 돈을 내줘야 하는 구조적 비용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해외여행·유학·연수 등 여행수지 적자폭이 커지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구조적 침체 가능성 배제 못해
특히 갈수록 수출입단가 등 교역조건과 수출 채산성이 나빠져 상품수지 흑자폭이 체감하는 상황이어서, 상품수지와 서비스수지의 ‘쌍둥이 적자’에 따른 경상수지 적자가 고착화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경상수지가 올해부터 적자로 반전해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까지 적자가 지속될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보고서는, 연평균 적자규모가 60억달러로 채무상환에 문제가 없는 ‘지속가능한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성장률이 7%대로 높아지고 인구고령화로 인구부양비율이 높아지면 더 악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LG경제연구원 김기승 연구위원은 “최근 국내 경제상황은 3대 지표인 성장률과 물가, 경상수지가 모두 선순환구조를 위협받고 있다. 이라크 전쟁 등 대외여건의 주요 변수긴 하지만 구조적 침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경상수지 흑자가 절대 선은 아니지만 우리처럼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는 기업신용이 떨어지는 등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김회승 기자/ 한겨레 경제부 honesty@hani.co.kr

사진/ 공항에서 출국을 준비중인 여행객들. 출국자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해 사상 최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겨레 김진수 기자)
서비스수지 악화의 일등공신은 식을 줄 모르는 해외여행과 유학·연수 붐이다. 경기불안 심리가 퍼지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 이후에도 해외 출국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사상 최대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최대 성수기인 지난 1월에는 전년동기보다 18%가 늘어난 74만2059명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이는 같은 기간 입국자 수의 2배에 가까운 것이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1월 증가세는 방학이라는 계절적 요인에 주5일 근무제 시행, 원화 강세, 설 연휴 등의 요인이 겹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절 요인을 제외하더라도 1998년 이후 해외 출국자 수는 해마다 20~30%씩 급증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실제 98년 이후 외국인 입국자 수는 400만~500만명 수준에서 정체하고 있는 반면, 내국인 출국자 수는 해마다 100만명꼴로 급증해 지난해에는 연간 70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특히 지난해 관광 목적과 유학·연수 목적 출국자 수는 2001년보다 각각 30%(344만명)와 23.8%(34만3천명)가 늘어, 10% 미만 증가에 그친 업무 또는 친지방문 목적 출국자 수 증가율을 크게 앞질렀다. 유학·연수 목적 출국자 수는 97년의 33만5천명을 넘어서 지난해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해외 씀씀이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관세청 집계를 보면, 지난해 1년 동안 해외여행객이 고급 카메라·귀금속·캠코더 등 고가 사치품을 국내에 반입하려다 적발된 건수는 모두 60만4565건으로, 전년(49만712건)에 견줘 23.2%나 증가하며 사상 최대 적발 건수를 기록했다. 전체 출국자 수와 견줘보면 12명에 한명꼴로 해외에 나가 사치품을 사들고 온 셈이다. 또 국내관광 외국인 1명이 우리나라에서 쓰는 돈은 평균 1080달러인 반면, 외국에 나간 한국인이 쓰는 돈은 평균 1165달러에 이른다. 해외 서비스 사용료도 심각

사진/ (한국은행 자료)

사진/ 유학과 연수를 위한 지급액도 2001년 10억6천만달러에서 지난해에는 14억90만달러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한겨레 이정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