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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코스닥 거품, 아직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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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3-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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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고치라는 40대 지수도 고평가된 상태… 부진한 기업실적에 시장 불투명성 등 악재 산적

사진/ (한겨레 강창광 기자)
광전송장비와 네트워크장비 제조업체인 이오정보통신은 지난 1월 중순 코스닥 등록을 위한 공모주 청약을 실시했다. 주식시장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KT와 데이콤에 장비를 납품하면서 연간 10억~20억원의 순이익을 내는 이오정보통신에는 많은 투자자들이 몰려들었다. 공모주 청약결과는 무려 623.37 대 1. 최근 보기 드문 높은 경쟁률이었다. 그러나 불과 이틀 뒤 금융감독원의 지시로 코스닥 등록절차가 중단됐다. 이오정보통신이 2000년과 2001년 사업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회계장부를 조작했다는 제보가 금감원에 접수됐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특별감사에 들어갔고, 제보는 사실로 드러났다. 1주일 뒤 오세경 이오정보통신 대표는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서울지검에 구속됐다. 코스닥 등록을 위해 수백억원의 가공매출을 만들어 실적을 위장했으며, 이를 통해 코스닥 등록 예비심사를 통과한 것이었다.

회계장부 조작으로 코스닥 입성 시도

사진/ 천당에서 지옥으로! 벤처 신화의 주역으로 떠올랐던 김진호 골드뱅크 대표, 오상수 새롬기술 사장, 전제완 프리챌 사장, 김도현 모디아 대표.(사진 왼쪽부터)

만일 제보가 없었다면 이오정보통신은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코스닥에 입성했을 것이고, 오 사장은 수십억원의 공모자금을 손에 쥐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그뿐 아니다. 1900원(액면가 500원)에 공모한 주식가격은 3천~4천원 정도로 올라 오씨를 비롯한 대주주들에게 막대한 자본이득을 안겨줬을 것이다. 물론 이들에게 이익을 안겨주기 위해 동원되는 자금은 수많은 개미투자자들의 돈이다. 이오정보통신의 오 사장은 코스닥 등록을 통해 수십억원대 재산가로 올라서려는 순간 제보에 의해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사실 벤처기업들이 코스닥 등록이나 유상증자를 앞두고 분식회계를 해왔다는 것은 비밀이라고 할 수도 없다. 수많은 코스닥 기업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투자자들을 우롱해왔다. 재일동포 손정의씨가 투자한 소프트뱅크유통코리아의 이창현 사장도 코스닥 등록을 앞두고 40여개 기업과 가짜 세금계산서를 주고받는 방법으로 3천억원 상당의 허위 매출실적을 만들어냈다가 지난 1월 구속됐다. 새롬기술의 오상수 전 사장은 닷컴기업들의 주가가 폭등하던 1999년 말 매출과 이익을 부풀려 분식회계를 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구속됐다. 이들뿐 아니다. 자네트시스템은 2000년에 재고자산과 매출액을 부풀려 16억원의 적자를 5억원의 흑자로 둔갑시켰고, 창흥정보통신은 제조원가로 처리해야 할 외주비를 개발비로 처리해 2000년 25억원의 적자를 17억원의 적자로 축소했다가 금감원에 적발됐다.

벤처기업의 코스닥 등록은 이처럼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한판의 게임이다. 벤처라는 말은 원래 모험사업을 뜻하지만, 최근 몇년 동안 벤처기업의 목적은 코스닥 등록이었다. 성공만 하면 수십억원, 수백억원의 자본이득으로 단번에 거부반열에 올라서기 때문이다. 그 수단으로 분식회계, 가장납입, 허위 외자유치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등록 이후에는 유상증자를 앞두고 분식회계를 하거나 허위공시를 내는 방법으로, 심지어는 대주주가 주가조작에 직접 참여하는 방법으로 주식시장의 자금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적당한 때 회사를 팔아치운다. 몇몇 대주주는 회사 돈을 횡령하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혼돈의 극치를 보여준다.

코스닥은 정녕 부도덕한 대주주와 작전세력의 투전판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코스닥은 뭔가 비상한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자본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할지 모르는 상황에까지 왔다. 지난해 문을 닫은 독일 노이에르마르크트(신시장)를 떠올리게 한다. 코스닥 지수는 2월28일 41.78을 기록하는 등 계속 사상 최저치를 경신해가고 있다. 거래량과 거래대금이 형편없이 줄어들었고, 시가총액도 증권거래소 상장기업(236조3300억원)의 15%인 36조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코스닥이 정점에 이른 것은 2000년 3월. 그해 3월10일 코스닥 지수는 283.44로 최고점을 찍었다. 시가총액은 93조원이었다. 이에 한달 앞서 거래대금은 2월14일 6조4천억원을 기록했다. 2003년 2월 말 현재 거래대금은 6240억원으로 10분의 1, 시가총액은 36조4520억원으로 5분의 2로 쪼그라들었다. 코스닥지수는 283.44에서 41.78로 85.26%가 떨어졌다. 쉽게 말해 모든 코스닥 종목의 주가가 2000년 초보다 7분의 1 수준으로 하락했다는 얘기다.

자본시장으로서의 기능 상실할 위기

사진/ 자료: 코스닥 증권시장
코스닥이 이처럼 바닥을 기게 된 것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의 동시불황이란 요인이 작용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증권거래소의 종합주가지수가 2월 말 575.43으로 내려가는 등 600선에서 헤매는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최근의 세계 동시불황이 정보기술(IT) 부문의 과잉생산과 과잉설비에서 초래한 것이라는 점에서 IT 기업들이 몰려 있는 코스닥 시장은 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라크전 위기로 인한 국제유가의 상승, 그리고 이로 인한 기업들의 수익 악화, 갈수록 긴장이 높아가는 북한 핵위기 등 주식시장 주변의 모든 여건이 코스닥을 억누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코스닥 시장의 침체는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코스닥의 침체가 정말 세계적 불황 때문일까 주식시장을 아는 전문가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본질적 문제는 세계경제 상황이 아니라 코스닥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닷컴 열풍이 불어닥친 지 3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수익모델을 제대로 찾은 코스닥 기업은 별로 없다. 코스닥증권시장이 지난해 3분기까지 코스닥 기업들의 실적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매출 40조4천억원에 순이익 1조9천억원을 낸 것으로 돼 있다. 괜찮아 보이는 실적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IT기업이라고 할 수 없는 기업은행, KTF, 국민카드, 강원랜드, SBS, 아시아나항공, LG홈쇼핑, LG텔레콤 등의 순이익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8개 기업의 순이익은 모두 1조7천억원에 이른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800여개 기업들의 전체 순이익은 2천억여원에 그친다는 계산이 나온다. IT 기업 가운데서도 제대로 순이익을 내는 회사는 휴맥스(790억원), 엔씨소프트(468억원), 피케이엘(127억원) 정도다. 부도기업의 수도 2001년 2개이던 것이 2002년 8개로 늘어났다. 올해 들어서 1~2월 중에만 코리아링크·화인썬트로닉스·국제정공 등이 1차부도를 냈다. KTB네트워크의 권오용 상무는 “지난해부터 많은 기업이 코스닥에서 퇴출되고 있다. 올해는 퇴출기업이 더 늘어날 것이다. 부실한 기업들이 빨리 퇴출되는 구조가 돼야 코스닥이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경영진의 분식회계와 투기세력들의 주가조작은 코스닥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를 앗아가고 있다. 이젠 개미투자자들도 코스닥 기업들의 실적 발표를 믿지 않는다. 믿지 않으면서 머니게임에 동참하고 있을 뿐이다. 몇몇 코스닥 기업 경영자들은 주가를 떠받치기 위해 자사주를 사들인다고 발표해놓고 주가가 오르자 지분을 팔아치웠다. 한마디로 코스닥 시장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져 있다. 코스닥 기업인 기업은행이 증권거래소로 이전하기로 한 것도 시장의 신뢰성 문제 때문이다.

상식이 통하지 않아 시장 불신 깊어가

사진/ 코스닥 시장은 한때 벤처기업 육성의 산실로 평가됐다. 2001년 12월12일 코스닥 시장 등록기업 700개 돌파 기념식이 열리기도 했다.

그뿐 아니다. 코스닥 시장에선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부터 경영권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임원 해임의 요건을 주주총회 참석 주주 90% 이상의 찬성을 정관에 못박아놓은 기업도 있다. 사실상 경영진 교체가 불가능하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 밖에도 △임원이 퇴직할 때 사유를 불문하고 10억원의 위로금을 지급한다 △임원이 정당한 사유 없이 해임될 때는 퇴직금의 3배를 지급한다는 식의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정관을 삽입해 경영을 전횡하는 경우가 많다. 코스닥 투자자들이 머니게임에만 관심이 있고 정작 회사의 경영을 견제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상 최저치라는 40대의 코스닥 지수는 이처럼 부진한 기업실적과 시장의 불투명성, 일부 기업 경영진의 부도덕성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40대를 오가는 형편없는 지수조차 실상은 그렇게 낮은 것이 아니다. 2월28일 현재 코스닥 지수의 가중 주가수익비율(PER)은 적정수치인 10을 훨씬 넘어서는 27.1이다. 주가가 주당순이익(EPS)의 27배라는 얘기다. 코스닥이 성장산업을 대표하는 신시장으로 인정받을 때는 이러한 비율이 그리 높다고 인식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주주와 경영자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기업이 부도나는 현실에서 27배라는 수치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코스닥 등록 기업들도 너무 많은 것도 문제다. 2001년 말 702개이던 코스닥 기업은 2002년 11월 821개(2월 말 현재 868개)로 17%나 늘어났다. 27개 기업이 퇴출됐지만 무려 160여개 기업이 신규로 등록했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에 미국 나스닥 시장의 등록기업은 4128개에서 3671개로 11%(457개)나 줄었다. 독일은 984개에서 946개로, 이탈리아는 605개에서 580개로, 일본은 2141개에서 2139개로 줄어들었다. 멕시코 역시 172개에서 171개로 줄었다. 물론 아시아권은 증가했다. 대만이 586개에서 639개로 9% 늘었으며, 홍콩은 867개에서 973개로 12.2% 증가했다. 그러나 한국의 코스닥 기업 증가속도에 견주면 역부족이다.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한 코스닥 시장이 아직 끊임없이 덩치를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전문가들은 “코스닥 시장의 거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많은 코스닥 등록기업들은 주가관리를 위해 여전히 실적을 뻥튀기하고 있다. 이오정보통신의 경우처럼 등록을 추진하는 기업들도 실적을 부풀리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코스닥 시장의 실제 PER는 27이 아니라 60, 70, 100배에 이를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점이 1~2년 전부터 수없이 지적돼왔지만 코스닥 기업의 등록, 퇴출을 책임진 코스닥위원회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다는 현실이다.

기업 실적 반영하지 못하는 코스닥 주가

사진/ (박승화 기자)

삼성증권의 유시왕 고문은 “코스닥 지수가 40이라고 해서 거품이 빠졌다고 볼 수는 없다. 코스닥의 시장 PER가 27.1이라면 코스닥 시장에 투자해 얻을 수 있는 수익률이 연 3.7%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안전한 국고채 수익률이 4~5%라는 점을 감안하면 리스크가 큰 코스닥 시장의 수익률은 최소한 10%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 고문의 말을 뒤집어보면 코스닥 시장의 PER는 10 정도로 떨어져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코스닥의 주가는 지금의 40% 수준은 더 떨어져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유 고문은 “코스닥 시장의 블루칩이라고 할 수 있는 안철수연구소를 보더라도 2002년 3분기까지 46억원의 순손실을 냈는데도 주가는 1만5천원대다. 5천원 기준으로 하면 15만원짜리 주식이다. 코스닥의 주가는 당연히 더 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주식투자 전문가들이 가장 자주 하는 충고 가운데 하나가 ‘주가가 오를 때 주식을 사라’는 것이다. 반대로 투자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주가가 떨어질 때 주식을 사려는 태도’다. 지금의 코스닥 주가를 보고 “이만하면 충분히 가격조정을 받은 것 아니냐”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수는 있다. 그러나 주가는 결국 기업의 실적에 수렴한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입증돼왔다. 아무리 조정을 받았다 할지라도 주가가 기업실적보다 고평가돼 있다면 그 주식에는 거품이 끼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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