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2%경제학] 국가는 ‘푼돈’만 탐낸다?

448
등록 : 2003-02-27 00:00 수정 :

크게 작게

소득세와 재산세는 놔 두고 술·담배·휘발유 세금만 올리는 것은 공평한 일인가

세금 징수와 화폐 발행은 국가의 배타적 특권이다. 국가 외에 누구도 화폐를 찍어낼 수 없고 세금을 거둘 수 없다. 세금, 화폐, 군대·경찰은 국가기구를 떠받치는 세 가지 물질적 기초다. 탈세범과 위폐범을 국가 전복세력처럼 엄하게 다스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가운데 세금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살림에 쓸 자금을 조달하는 것뿐 아니라 소득과 소비를 고르게 하는 정책적 목적도 있다. 사회적 재분배 기능이다.

무엇이든 끌어들여 갖다 붙인다

사진/ 건강보험재정이 파탄나자 정부는 담배에 붙는 국민건강증진기금을 갑당 2원에서 150원으로 대폭 인상하는 것으로 손쉽게 펑크를 메우려 했다. (류우종 기자)
대부분 영수증에 적힌 부가가치세(VAT)를 눈여겨보지 않지만, 국민은 물건을 사고 서비스를 제공받을 때마다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있다. 모든 상품에 부가가치세(공급가의 10%)가 붙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비자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금이 주세·교통세·담배소비세다. 소득 재분배 측면에서 볼 때, 스웨덴은 술과 담배 소비에 세금을 왕창 무겁게 물려 복지국가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물론 세금을 많이 거둘수록 국민은 가난해지겠지만, 이것이 저소득층한테 쓰이면 술·담배·휘발유에 붙는 무거운 세금처럼 신통한 복지수단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복지국가를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선 세 상품값에 포함된 세금은 얼마나 될까. 술부터 보자. 소주의 경우 진로 참이슬의 출고가는 740원이다. 출고가는 세금이 포함된 가격인데, 판매원가는 347원48전이다. 판매원가에는 이윤이 포함돼 있다. 소주에 붙는 세금은 판매원가의 72%다. 즉, 250원18전이 주세다. 여기에다 주세의 30%인 75원5전이 다시 교육세로 붙는다. 이렇게 해서 판매원가와 주세·교육세를 합쳐 소주값은 672원이 된다. 여기에 다시 부가가치세 10%인 67원2전을 더한 것이 출고가다. 소주에 붙는 모든 세금을 다 합치면 392원50전으로, 소주값의 53%(출고가 기준)가 세금인 셈이다.

휘발유는 어떨까. 현대오일뱅크의 휘발유값은 1ℓ당 1287원이다. 여기에서 세금을 추출해보자. 휘발유에 붙는 교통세는 1ℓ당 586원으로 정해져 있다. 여기에 휘발유세의 11.5%(70원32전)가 주행세로 다시 붙는다. 그리고 휘발유세의 15%(88원)가 교육세로 추가된다. 휘발유의 세전 공장도가격은 425원인데, 세금을 합치면 ℓ당 총 1170원이 된다. 물론 부가세 10%(117원)가 다시 붙는다. 따라서 휘발유 1ℓ당 붙는 세금은 총 862원인 셈인데, 세금이 소비자값의 67%를 차지한다. 정유업체들은 “세금을 붙이기 전에는 휘발유값이 생수값보다 싸다. 세금이 70% 가까이 되다 보니 자율적으로 가격을 조정할 여지가 적다. 그런데 가격을 조금만 올려도 우리는 소비자들한테 욕먹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이제 담배로 눈을 돌려 KT&G(담배인삼공사)의 ‘타임’(소비자가격 1800원)을 보자. 타임 한갑당 판매원가는 527원이다. 우선 한갑당 무조건 510원의 담배소비세가 매겨진다. 여기에 교육세(255원), 국민건강증진기금(150원), 폐기물처리부담금(4원), 그리고 연초경작농민안정화기금(10원)이 다시 붙는다. 법정부담금과 기금 등 준조세까지 합쳐 세금은 총 929원이다. 부가가치세(163원6전)까지 더하면 세금 총액은 1092원6전으로 늘어난다. 판매원가와 세금을 합친 가격에 소매상 마진(10%·180원)을 추가하면 정확히 최종 판매가격 1800원이 산출된다. 담배 한갑을 사는 데 치르는 돈의 60.7%가 세금이다.

2001년에 걷힌 주세는 2조4천억원으로 국세(95조원)의 2.6%, 교통세는 10조5천억원으로 국세의 11%를 차지한다. 담배소비세(2조5천억원)는 “우리 고장을 위해 담배는 우리 시·군에서 삽시다”는 플래카드가 보여주듯 지방세다. 이런 소비세로 걷힌 세금이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복지에 국한해 사용되는 건 아니다. 교통세는 도로·지하철·공항 건설 등에 사용되며, 주세는 전액 지자체에 양여된다.

국세 수입 중 큰 덩치를 차지하는 건 부가가치세·소득세·법인세지만 술·담배·소주는 나라 살림을 꾸리는 데 가장 ‘만만한’ 세금으로, 세무당국이 애용()해왔다. 필요할 때마다 세율을 늘리고 새로운 세목을 갖다붙이는 식이다. 휘발유 교통세에 주행세·교육세를 붙이고 담배에 조세 저항이 작은 각종 기금과 법정부담금을 새로 붙여왔다. 물가상승을 감안할 때 담배세를 지난 10년간 갑당 360원에서 460원으로 다시 510원으로 올린 건 불가피했지만 술·담배에도 교육세를 새로 붙였다.

건강보험재정이 파탄나자 이번에는 담배에 붙는 국민건강증진기금을 갑당 2원에서 150원으로 대폭 인상하는 것으로 손쉽게 펑크를 메우려 했다. 그동안 휘발유값이 크게 오른 배경에는 고유가 정책으로의 전환도 있지만 열악해진 세수입을 만회하고 금융 구조조정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목적이 깔려 있었다. 물론 ‘즐거운 납세’는 있을 리 없다. 루이 14세 시절 대대적 세정개혁을 단행한 장 바티스트 콜베르는 “과세의 기술이란 가능한 한 많은 털을 뽑기 위해 가능한 한 작은 소리를 내면서 오리의 깃털을 뽑는 것이다”고 갈파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는 무엇이든 새로 끌어들여 술·담배·휘발유에 세금을 갖다붙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소득층 탈루 세원은 방치하고…

사진/ 그동안 휘발유값이 크게 오른 배경에는 고유가 정책으로의 전환도 있지만 열악해진 세수입을 만회하고 금융 구조조정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목적이 깔려 있었다. (류우종 기자)
대신 돈이 돈을 버는 금융소득 또는 부동산값 폭등으로 인한 불로소득에 중과세하는 방식으로 나라 살림의 재원을 마련하는 노력은 적었다. 변호사·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종과 향락업소들이 열심히 숨긴 세금이 즐비한데도 이런 탈루 세원을 색출해낼 궁리보다는 자동차 가진 게 무슨 죄라고 휘발유 세금만 올려온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산세나 소득세에 비해 조세 저항이 적고 손쉽게 세금을 걷어 세수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걸핏하면 해외여행자한테 특별세로 출국세를 걷자는 말까지 나오는 판이다. 대중적 소비상품인 술·담배·휘발유 세금은 빈부격차를 전혀 따지지 않고 똑같이 걷는 세금이다. 바꿔 말해 소득과의 상관관계가 극히 낮다는 얘긴데, 소득이 많을수록 세금을 더 내는 공평과세 원칙에서 벗어나 거꾸로 저소득층에 부담을 더 안기는 성격이 크다. 소득 재분배는커녕 소득 불균형을 악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술·담배가 건강에 결코 유익한 상품도 아니고 소비를 옹호할 이유는 없다. 교통혼잡과 환경오염을 감안할 때 세금을 늘려 휘발유 소비를 줄이는 것도 바람직하다. 한국조세연구원 성명재 박사는 “술·담배·휘발유는 질병 초래와 환경오염 등 국민 건강과 환경 차원에서도 접근해야지 세금을 통한 소득 재분배만 따질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득세율을 찔끔 인하한 데 따른 혜택과 소비세율 상승으로 늘어나는 지출 가운데 어느 것이 클 것인가 나아가 건강·환경문제와 별개로, 교육재정 확보(교육세)를 애연가와 애주가, 휘발유 소비자의 주머니를 터는 것으로 충당하는 게 바람직한 것인가.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