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기업 유치인가 국내 IT밸리 조성인가… 송도 새도시를 둘러싼 인천시·재경부와 인수위의 대립
2월5일 인천시 연수구 송도유원지 앞. 인천의 겨울바다가 오후 햇살에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해안도로를 사이에 두고 수십대의 덤프트럭들이 흙먼지를 날리며 시뻘건 흙을 바다쪽으로 끊임없이 실어날랐다. 곳곳에 흙더미가 쌓이면 포클레인이 흙을 바다로 밀어 메웠다. 끝간 데 없이 드넓은 공사현장 앞에는 ‘송도1공구 공유수면 매립공사’란 팻말이 큼직하게 내걸렸다. 인천 남동공단 너머 앞바다는 그렇게 날마다 조금씩 뭍으로 변하고 있다.
동북아 경제중심국가의 꿈
바다 건너 왼쪽으로는 시화공단이, 오른쪽으로는 멀리 영종도공항 관제탑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국제업무단지’, ‘송도테크노파크 건립부지’, ‘지식정보산업단지’ 등으로 나뉜 송도 새도시 매립현장은 1994년부터 공사가 시작된 터인지 곳곳에 풀도 꽤 자라 있었다. 2011년까지 총 530만평의 바다를 매립하는데, 현재 300여만평 정도 매립이 끝났다. 송도는 지난해 4월 경제특구 지정얘기가 나오면서 급부상한 뒤 땅값이 치솟아 이미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됐다. 송도 2공구에 들어설 금호아파트와 풍림아파트(총 3800세대) 분양도 과열 속에 일찌감치 끝났고, 평당 감정값이 200만원이던 근린생활시설 용지는 벌써 600만∼700만원을 웃돈다. 이미 매립이 끝난 한쪽에는 테크노파크본부동이 착공에 들어가 철골 구조물이 올라가고 있다. 해양경찰청사 부지도 터닦는 작업이 한창이다.
노무현 새 정부가 표방한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의 중심축이 이곳 송도 새도시다. 노 당선자는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은 단지 장사 잘하고 부자되는 단순한 꿈이 아니라 수백년간 중국의 변방으로서 고통스러운 역사를 극복하고 민족의 팔자를 바꾸는 계기”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민족 인생역전’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것인데, 송도 새도시는 철강·자동차·반도체에 이어 한국을 먹여살릴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송도 새도시의 기본개념과 추진전략을 둘러싸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재정경제부, 그리고 인천시 사이에 갈등이 커지고 있다. 동북아 경제중심국가의 기본구상과 외국기업에 대한 금융·세제 지원의 폭, 경제특구법 개정 등을 놓고 적잖은 의견대립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정부는 이미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방안을 내놓았다. 인수위쪽의 ‘동북아 경제중심국가’와 마찬가지로 송도를 동북아시대의 거점으로 삼겠다는 구상이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기본전략에서 차이가 난다. 애초 정부는 서비스·금융업종 중심의 외국기업 유치를 추진했다. 하지만 인수위는 정보기술(IT)업체를 중심으로 국내기업들을 먼저 끌어들이는 단계적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이 대목은 뒤에 살펴보고 인천시쪽의 구상부터 들여다보자.
외국자본 70% 이상 유치가 목표
송도 새도시 땅을 매립한 쪽은 인천시다. 땅 임자가 인천시란 뜻이다. 인천시는 지난 1월 중순 미국의 부동산투자개발회사인 게일(Gale)사와 송도 새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계약을 마쳤다. 인수위쪽 구상과는 별도로 530만평에 이르는 송도땅 가운데 167만평을 국제비즈니스센터(IBC)로 개발하는 데 이미 합의한 것이다. 인천시는 외환위기 이후 매립비용 부족으로 송도 매립사업이 위기에 맞닥뜨리자 2001년부터 외자유치에 나섰다. 그동안 매립된 토지를 일단 외국자본에 판 뒤 이 돈으로 추가매립에 드는 비용을 조달하고 기반시설도 닦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인천시는 게일사 관계자들을 헬기에 태워 아직 매립이 덜된 바다 위를 다니며 인천국제공항, 항만, 그리고 중국과 가깝다는 점을 적극 설득했다. 그러던 중 2002년 봄 정부에서 송도를 경제자유구역(경제특구)으로 지정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협상은 가속도가 붙었고, 송도 역시 관심지역으로 급부상했다. 인천시와 게일사가 맺은 양해각서(MOU)와 본계약은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공개경쟁 입찰 없이 수의계약으로 이뤄졌다.
송도 IBC개발사업에는 국내에서 포스코건설이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게일사와 포스코건설이 70 대 30으로 지분을 투자한 NSC(New Songdo City)란 합작법인이 개발을 주도하게 된다. 게일사의 토지매입대금은 총 10억달러(약 1조3477억원)로 조성원가(평당 100만원 수준)에서 결정됐다. 오는 4월까지 1차 토지매입대금 가운데 절반인 2600억원이 인천시로 들어올 예정이다. 그러나 10억달러는 토지매입대금에 지나지 않고, 167만평에 대한 총 투자규모는 무려 127억달러(약 16조원)에 이른다. 이 돈은 게일사가 해외 로드쇼를 통해 전 세계를 뛰어다니며 투자자를 끌어들여 충당해야 하는데, 이 일을 맡을 외자유치 주간사로는 미국의 모건스탠리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건설 송도신도시개발추진반 이자웅 이사는 “모건스탠리가 송도 개발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제너럴일렉트릭(GM)의 금융 자회사인 GMAC에서 1억달러 투자의향을 이미 비쳤다”고 말했다.
인천시와 게일사쪽이 맺은 IBC지구 마스터플랜이 어떻기에 투자규모가 127억달러나 될까.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1단계로 2010년까지 60층짜리 국제무역빌딩과 컨벤션센터, 오피스빌딩 60동, 호텔 4개동, 백화점, 쇼핑몰, 골프장, 외국인학교, 주거단지(약 8천 세대)를 건설한다. 2013년까지는 2단계로 오피스 빌딩들과 고층 주거단지(약 7천 세대)를 더 짓는다. 한마디로 국제 비즈니스와 금융지구로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인천시 도시개발본부 심헌창 투자유치부장은 미래의 송도에 대해 “홍콩·싱가포르 또는 월 스트리트의 중심 블록 등 국제 비즈니스 중심으로서 전 세계 비즈니스맨들이 움직이고 거주하는 곳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쇼핑몰·오피스텔·학교·병원·골프장까지 갖춰 도시의 쾌적성을 확보해야 다국적기업 유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미국 중심의 외국자본 70% 이상 유치를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인천시쪽은 “송도가 상하이 푸둥과 싱가포르, 홍콩을 앞서면서 동북아 허브로 발전하려면 적극적으로 외국자본 유치에 매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인수위 “퍼주기식 인센티브는 안 된다”
그러나 아직은 게일사 외에 송도 투자를 확정한 외국자본은 별로 없다. 미국의 첨단 생명공학업체인 백스젠이 에이즈백신 개발을 위한 연구소 설립을 위해 최근 일부 부지를 사들였을 뿐이다. 다만, 미국의 인터넷 시스템 업체인 시스코 시스템스와 통신업체인 AT&T, 물류유통업체인 DHL이 송도에 아시아지역본부나 연구센터를 두는 것을 검토 중인데 아직은 ‘관심표명’ 수준이다.
한편, 인천시는 투자인센티브로 IBC지구 땅(13만평)의 20%인 약 2만5천평을 게일사에 무상으로 제공하고 기반시설 조성 등 사업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이에 따라 게일사는 나머지 토지매입 대금은 도로, 상·하수도, 통신, 전기 등 기반시설의 진행상황을 봐가며 지급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인천시가 이행해야 할 조항으로는 홍콩·싱가포르 등 자유무역도시에 준하는 경제활동보장, 세금혜택, 외국 금융자본의 역외금융업 허용, 송도-영종도를 잇는 제2연륙교(10km) 건설, 송도 새도시 지하철 건설, 카지노 영업허가도 들어 있다. 인천시의 권한을 넘어서는 사항도 인천시쪽이 적극 노력해서 해결해야 한다.
송도개발 구상에 대한 재경부의 기존 입장은 인천시쪽 생각과 거의 같다. 송도-영종도-김포매립지를 묶어서 송도는 비즈니스, 금융, IT, 생명공학(BT) 단지로, 영종도는 물류와 주거 및 관광, 김포매립지는 금융과 주거단지로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외국기업 대거 유치를 송도 개발의 기본전략으로 짰다. 반면, 인수위쪽은 송도에 먼저 국내기업들을 끌어들여 IT산업 클러스터(집적단지)로 조성하는 ‘IT밸리’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디스플레이, 시스템IC(비메모리반도체), 생명공학산업 등 국내 최첨단 업종의 IT연구기관과 기업들을 먼저 집적함으로써 ‘R&D허브’를 형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인수위쪽은 “세금감면 혜택 등으로는 홍콩·싱가포르에 있는 다국적 금융기업이나 서비스업체들이 송도로 옮겨오기는 어렵다. 우리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IT부문의 역량을 한데 모아 혁신을 주도하가면서 실리콘밸리화하면 다국적기업은 특별한 혜택을 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들어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허허벌판에 경제특구를 설치한다고 외국자본이 앞다퉈 들어올 리 없다는 것이다.
인수위 김대환 경제2분과 간사는 “푸둥도 그렇고 다른 나라의 자유무역지역을 봐도 외국기업만 몰아넣는 곳은 없다. 국내기업들이 다 결합돼야 한다. 처음부터 외국기업을 유치하면 끊임없이 특혜를 줘야 하는데, 송도에 국내기업들이 먼저 IT연구개발단지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네트워크 이익을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경제특구를 둘러싼 국내기업 역차별 논란을 줄이고, 외국자본에게 퍼주기식으로 인센티브만 쏟아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노동규제완화, 세금감면, 의료·교육 개방 등 외국기업에 대한 온갖 특혜 중심의 기존 정부안을 수정한 셈이다.
그러나 외국 투자자본을 얼마나 끌어모으느냐에 송도개발 프로젝트의 성패가 달린 인천시와 재경부로서는 인수위쪽 구상에 반발할 수밖에 없다. 인천시 심헌창 투자유치부장은 “한두개 외국기업이라도 일단 들어오기로 확정되면 가속도가 붙어 투자자들이 몰려올 것이다. 국내 IT산업 중심으로 송도개발 구상을 그리면 외양만 동북아 허브일 뿐 서울이나 분당 새도시 등과 다를 게 뭐냐. 외국자본부터 먼저 유치해 붐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했다. 송도를 IT밸리로 육성한다는 인수위 구상은 새로운 또 하나의 산업단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또 다른 인천시 관계자는 “아무리 국가정책이라지만 인천시 땅을 인수위쪽이 콩 놔라 팥 놔라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국내기업이 나서서 여건 조성해야”
인천시는 또, 인수위쪽이 특혜 축소를 언급하고 있는 만큼 오는 7월 시행을 앞둔 경제자유구역법이 수정되면서 외국자본에 대한 혜택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인수위쪽은 “외국자본 유치는 공감하지만 필요하다면 경제특구법 손질도 해야 한다. 미국 투기자본이 판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금융에 치우치지 않고 IT산업 등 복합모델로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투기적 금융자본은 일정하게 자본통제를 가해야 한다는 것인데, 인수위쪽이 화교자본을 끌어들여 송도에 차이나타운을 조성하는 방안을 거론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인수위 정태인 경제1분과위원은 “외국기업에 대해 푸둥과 똑같이 해준다면 우리는 빵을 주고 중국은 우유를 주는 것과 같다. 중국은 10원짜리 우유만 줘도 외국기업을 유치할 수 있지만, 우리는 100원짜리 빵을 줘야 한다. 특혜 중심의 외국기업 유치는 특혜를 끊임없이 줘야 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국내기업들이 나서서 먼저 여건을 조성해놓으면 무리한 특혜 없이도 외국기업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송도 새도시 땅은 넓다. 영종도와 김포매립지까지 더하면 IT밸리든 금융이든 물류든 얼마든지 대상 면적을 넓힐 수 있다. 문제는 송도개발을 둘러싼 기본전략과 밑그림이다. 인천시는 “새 정부에서 경제특구에 대한 혜택을 줄이면 ‘사이비 경제특구’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게일사가 지을 수많은 오피스빌딩이 텅텅 비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송도개발 프로젝트가 도중에 틀어질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서 인천시는 인수위쪽을 설득하고 있고, 인수위쪽도 외국자본에 대한 특혜를 줄이면서 동북아 경제중심국가로 육성하는 지혜를 찾고 있다.
글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류우종 wjryu@orgio.net

사진/ 인천시의 송도 새도시 마스터플랜. 인천시는 미국 게일사와 송도 땅 가운데 167만평을 국제비즈니스센터로 개발하는 데 이미 합의했다.
바다 건너 왼쪽으로는 시화공단이, 오른쪽으로는 멀리 영종도공항 관제탑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국제업무단지’, ‘송도테크노파크 건립부지’, ‘지식정보산업단지’ 등으로 나뉜 송도 새도시 매립현장은 1994년부터 공사가 시작된 터인지 곳곳에 풀도 꽤 자라 있었다. 2011년까지 총 530만평의 바다를 매립하는데, 현재 300여만평 정도 매립이 끝났다. 송도는 지난해 4월 경제특구 지정얘기가 나오면서 급부상한 뒤 땅값이 치솟아 이미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됐다. 송도 2공구에 들어설 금호아파트와 풍림아파트(총 3800세대) 분양도 과열 속에 일찌감치 끝났고, 평당 감정값이 200만원이던 근린생활시설 용지는 벌써 600만∼700만원을 웃돈다. 이미 매립이 끝난 한쪽에는 테크노파크본부동이 착공에 들어가 철골 구조물이 올라가고 있다. 해양경찰청사 부지도 터닦는 작업이 한창이다.

사진/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송도 새도시가 들어설 부지. 2011년까지 총 530만평의 바다를 매립하는 대역사다. (류우종 기자)


사진/ 2월6일 대통령직인수위가 주최한 국정주제 토론회. 인수위쪽은 송도에 먼저 국내기업들을 끌어들여 IT산업 클러스터(집적단지)로 조성하는 ‘IT밸리’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용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