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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팔자’와 ‘사자’의 눈치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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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1-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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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바람 그치며 거품 꺼지는 부동산 시장…하락세 지속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사진/ 집값 폭등 바람을 타고 뒤늦게 시장에 뛰어든 사람들이 하락세로 돌변하자 앞다퉈 매물을 쏟아내고 있다. 목동 아파트단지 전경. (류우종 기자)
서울 강남에 사는 김아무개(52)씨는 요즘 하루하루 지나가는 게 무섭다. 세월타령이 아니다. 지난해 부랴부랴 사들인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아파트 때문이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고 했는가. 재건축이 추진돼온 이 아파트(16평형)는 지난해 말 시공사 선정 때만 해도 3억3천만원에 거래됐지만 지금은 2억7천만원에도 살 사람이 없다. 김씨는 집값이 한창 오를 때 은행에서 1억9천만원을 빌린 뒤 전세 8천만원을 안고 자기 돈 6천만원을 투자해 이 집을 샀다. 그러나 불과 몇 개월새 6천만원이나 빠지고 말았다. 고덕·둔촌 지구 재건축 안전진단 반려에 이어 40년 이상 된 아파트만 재건축을 허가하겠다는 서울시 방침이 직격탄이었다.

‘깡통 아파트’ 매물 쏟아져

사진/ 지난해 9월 말 8만5천건이던 서울지역 아파트 매물은 1월에 10만7천건으로 급증했다. (류우종 기자)
이 아파트 입주자들 사이에 급속히 퍼지고 있는 말이 이른바 ‘깡통아파트’다. 집값 폭락으로 투자원금까지 모두 까먹은 바람에 대출금 갚고 전세 보증금 내주면 한푼도 못 건진다는 것이다. 김씨는 “집을 내놓았지만 연락이 없다. 며칠새 1천만원씩 떨어지는데 사겠다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고 초조해했다. 둔촌주공 주변의 으뜸공인중개사쪽은 “재건축 바람이 빠지면서 매물이 날마다 나오지만 팔리는 건 없다. 하지만 무작정 싸게 내놓는 쪽은 융자를 많이 끼고 있거나 돈이 급한 사람들뿐이다. 대다수는 갖고 있으면 여전히 투자가치가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부동산은 본디 무거운 것이라 쉽게 폭락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기대심리야 어찌됐든 지표로 볼 때, 서울과 수도권 부동산 시장은 점점 얼어붙고 있다. 서울의 매맷값은 4주 연속 떨어졌다. 1월3일 -0.05%, 10일 -0.14%에 이어 17일에는 -0.19% 떨어지는 등 갈수록 하락폭이 커지고 있다. 수도권 지역도 2년 만에 처음으로 매맷값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새도시·수도권으로 하락세가 번지는 양상이다. 사려는 사람이 실종된 탓에 거래는 끊기다시피했고, 각 중개업소에는 매물만 쌓이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인 ‘스피드뱅크’ 조사결과, 지난해 9월 말 8만5천건이던 서울지역 아파트 매물(매매)은 1월에 10만7천건으로 급증했다. 강남구 매물은 넉달 전보다 36%, 양천구 매물은 61%나 늘었다. 집값 폭등 바람을 타고 뒤늦게 시장에 뛰어든 사람들이 하락세로 돌변하자 앞다퉈 매물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스피드뱅크 박선홍 대표는 “은행 대출을 무리하게 많이 끼고 재건축 등에 단기투자한 사람들이 매물로 내놓고 털어내는 상황이다. 집값이 올랐다고 해서 자기가 살던 집을 내놓는 사람은 드물다”고 말했다. “입주자들도 시세가 어떠냐고 묻는 게 아니라 솔직하게 얼마 더 떨어졌느냐고 묻는다. 급히 팔아야 하는 처지야 애가 타서 값을 연거푸 낮춰 부르지만 급할 것 없는 사람은 그냥 내버려두고 안 팔리면 말지 뭐 그러는 양상이다. 집 보러 온 사람은 더 떨어진 집 없느냐고 묻고 망설이다 돌아서버리고….” 목동에 있는 부동산114공인중개사쪽의 설명이다. 집값 떨어진다는 불안감이 확산되는 와중이지만 시장은 아직 큰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혼미스럽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지역 아파트 평당 평균매맷값은 2001년 3월(622만원)부터 가파르게 치솟기 시작해 지난해 8월 800만원대를 돌파한 뒤 이달 초에는 990만으로 1천만원대를 넘보고 있다. 1년 10개월새 60%(370여만원)나 뛴 것이다. 분당 등 수도권 5개 새도시도 올 초 평균 749만으로 1년 전보다 25% 상승했고, 전국 주요 도시의 매맷값은 지난해 평균 16.4% 올랐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집값은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그렇다면 올해 집값은 어디까지 더 떨어질 것인가. 조만간 하락세를 끝내고 다시 오름세를 탈 것인가 아니면 하향 안정세가 지속될 것인가. 전국적으로 54%에 이르는 내 집 가진 사람뿐 아니라 내 집 마련 꿈에 부푼 서민들한테도 올해 집값 동향은 초미의 관심사다.

각종 지표들도 대세 하락 신호

시장이 위축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현재 국면은 팔려는 쪽과 사려는 쪽이 숨죽이며 눈치보기하는 상황이다. 먼저, 집값이 확연히 떨어지는 쪽은 재건축 아파트다. 지난해 집값 급등세를 주도한 재건축 아파트가 이번에는 하락세를 주도하는 진원지인 셈이다. 여기에 강남의 중대형 기존아파트가 하락세 대열에 들어섰다. 대치동 일대 중대형 아파트는 5천만원 안팎씩 떨어졌다. 고가주택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무겁게 물리겠다는 정부 방침 때문이다. 반면 부유층의 고급 수요가 받쳐주는 신규 대형아파트는 별 영향 없이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

사업승인을 받은 재건축 단지도 다시 오름세를 타고 있다. 지난해 12월 사업승인을 받은 잠실주공3단지 15평형은 3억2천만원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2500만원가량 올랐다. 한쪽에서 재건축이 불투명해지면 이미 사업승인을 받은 다른 쪽 아파트는 반사이익을 얻어 되오르는 양상이다. 풍선처럼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그만큼 불거지는 것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연구원은 “본격적 하락세는 재건축대상 아파트 외에 일반아파트 가격이 하락하는 시점이 될 것이다. 일부 재건축 단지의 폭락은 그동안 터무니없이 폭등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물론 지금의 하락세를 고강도 집값 안정대책, 재건축 규제강화, 행정수도 이전 등에 따른 ‘심리적 위축’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부동산시장을 둘러싼 각종 여건과 지표들은 대세 하락 신호를 보내고 있다. 올해 서울의 아파트 입주물량은 지난해보다 35% 늘어난 6만4천 가구에 이른다. 외환위기 이후 분양물량(연 5만가구 이하) 급감이 집값 폭등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올해 입주물량 증가는 집값을 끌어내릴 공산이 크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부동산구입계획지수를 보면, 지난해 1분기 이후 향후 6개월 이내에 부동산을 구입하겠다는 가구 비중이 계속 줄고 있다. 구매계획지수는 지난해 1분기 16에서 4분기에 14로 떨어졌다. 서울 사람의 구매계획은 1분기 19에서 4분기에 14로 크게 낮아졌다. 집값이 지나치게 폭등하자 나중에 떨어진 뒤 사겠다는 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그동안의 집값 폭등은 1998~99년에 분양된 신규아파트가 3년 뒤 입주시점에서 분양가 대비 약 35%의 차익을 내면서 불붙었다. 청약률이 급증하고 집값이 뛰자 단기차익을 노린 사람들이 저금리를 이용해 은행에서 남의 돈을 빌려 재빠르게 주택시장으로 뛰어들면서 선취매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현재 분양가는 기존 아파트 매맷값 수준까지 이르렀다. 분양 매력이 크게 약화된 것이다. 이 역시 집값이 장기간 하향 안정세로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하나경제연구소 김대익 연구원은 “북핵문제, 이라크 전쟁 가능성, 국내경기 불투명 등 대내외 변수가 워낙 불확실한 상황이다. 조금씩 집값이 빠지면서 거래가 이뤄지고 쌓인 매물이 소화되겠지만 국내외 변수가 나빠지고 여기에 금리인상까지 가세할 경우 집값은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2분기 오름세로 돌아선다는 주장도

사진/ 목동아파트단지 내에 있는 한 부동산 중개소 사무실. 집값 떨어진다는 불안감이 확산되는 와중이지만 시장은 아직 큰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혼미스럽다. (류우종 기자)
특히 부동산 흐름에 눈치 빠른 큰손들은 집값이 한창 오르던 지난해 여름부터 처분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적체된 매물은 자기 여윳돈에다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들여 뒤늦게 막차 탄 투자자들이 쏟아내는 물량이다. 큰손들의 경우 올해는 부동산에 손대지 않고 조용히 있을 작정인데, 그래도 돈을 굴려보겠다는 부류는 서울을 피해 행정수도 이전으로 주목받는 충청권으로 이미 옮겨탔다. 건설산업연구원은 올해 부동산값은 상승세가 급격히 둔화되고 안정세를 나타낼 것이라면서 올라도 1∼2% 미만의 상승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지금의 하락세는 단기간 소폭 조정에 그치고 올 2분기께부터 오름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찮게 나온다. 실제로 근거 없는 소문에 따라 비정상적으로 폭등한 재건축 대상 아파트를 제외하면 현재 아파트값이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락폭(0.2%가량)도 지난해 상승폭에 비하면 그야말로 미미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오른 집값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게 더 정확하다.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침체가 깊어지기 전에 이 값에라도 서둘러 처분하려는 쪽이 있는 반면 다른 한켠에서는 낙폭이 큰 아파트가 나오면 슬슬 사볼까 하는 심리가 공존하고 있다. 지금 집을 사야 할 때가 아니냐는 것이다. 갈 곳 잃은 시중 유동자금이 급매물들을 기웃거리는 것인데, 일부에서 지난해 말보다 5∼10% 빠진 급매물은 살 만하다는 얘기도 있다. 이 바탕에는 지난해 30% 가까이 오른 거품이 다 빠지기 전에 하락세가 멈출 거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지역별로 강남쪽은 가격하락폭이 더 커지기 전에 투자세력이 다시 들어올 것으로 점치기도 한다. 만성적으로 택지 부족난을 겪거나 재건축이 확정된 단지 등에서는 집값이 곧 오름세로 돌아선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는 아파트 지을 땅의 부족이다. 서울의 경우 아파트 부지가 이미 바닥나서 이제 입지 좋은 대단지는 재건축을 통해서만 공급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유망 지역은 어느 정도 집값이 떨어진 뒤 사려는 세력이 금방 다시 붙을 공산이 크다.

노무현 새정부가 집값을 잡겠다고 표방했지만 폭락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집값 기대심리에 한몫 거들고 있다. 집값이 크게 떨어져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이 부실화하는 부작용이 닥치면 하락세를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다. 주택경기부양책을 다시 꺼내들거나 최소한 고강도 집값 안정대책이 수그러들 것이라는 낙관론이다.

집으로 떼돈 버는 시절 끝났다

1990년대 이후 부동산값 침체는 두번 있었다. 한번은 1991년 중반부터 95년까지로 이는 토지공개념 도입과 새도시 입주가 근본원인이었다. 또 한번은 외환위기 때로 대량실업·소득감소로 인해 실수요자 중심으로 매물이 쏟아져나왔다. 물론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아파트가 대량공급되는 것도 아니고, 투기(혹은 투자)와 상관없는 실수요자들까지 매물을 쏟아내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부동산전문가들은 “그동안 지나치게 집값이 폭등한데다 강도 높은 부동산 안정대책으로 당분간 집값이 하락세를 타겠지만 대세하락의 신호탄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진단한다. 이는 봄철이 되면 집값이 다시 뛸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바닥을 가늠하기 어려운 만큼 시장을 지켜보는 편이 가장 훌륭한 선택이라는 처방으로 이어진다.

크게 보면 집값이 조금씩 떨어지는 지루한 하락세가 한 2년간 이어질 것으로 보는 견해가 주류를 이룬다. 전문가들은 또 1998년과 같은 폭락사태가 나타날 가능성은 낮지만 하락세가 멈추더라도 추가상승해서 집으로 떼돈 버는 시절은 끝났다고 지적한다. 혼돈의 와중에 있는 부동산시장 판도와 방향은 새정부가 출범하고 겨울 이사철이 지난 3월 이후에 뚜렷한 윤곽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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