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 경제지표 좋으나 경제주체들의 경기전망 부정적…대출 통해 소비 늘리기 보다는 소득 높여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오는 2월 대통령에 취임한 뒤 가장 먼저 마주칠 고민거리는 무엇일까 지금 추세대로라면 ‘나빠지는 경기상황’일 가능성이 크다. 성장·생산·수출 같은 실물 경제지표는 아주 좋게 나오지만, 경제주체들의 체감경기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특히 최근 조사결과들은 새 정부가 출범하는 1분기에 경기가 급격히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암시하고 있다.
산업생산 등 일부 실물지표만 보면, 우리 경제는 아주 좋은 상태로 보인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2년 10월 중 산업활동동향 자료에 따르면, 10월 산업생산은 전년동기대비 12.7%나 늘었다. 10월의 산업생산 증가율은 최근 2년 새 가장 높다. 출하도 13%나 늘면서 재고율은 전달보다 2.8%포인트 줄어든 66.8%였는데, 이는 1980년 1월 재고율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에 힘입어 6월 이후 8월까지 3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인 경기종합지수도 9월 이후 상승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경기가 여전히 ‘확장’ 국면에 있다는 이야기다.
1분기 급격히 악화될 가능성
산업활동 지표가 이처럼 좋은 것은 무엇보다 수출이 잘 되기 때문이다. 해외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인데도, 수출은 정보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수출액은 2002년 10월에 전년동기대비 25%나 늘었으며, 11월에도 전년 동기대비 22.1% 늘어난 153억2천만달러였다. 이는 월간 기록으로 사상최고치라고 산업자원부는 덧붙였다. 산업생산이나 수출지표로만 보면, 경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상태다. 그러나 앞으로의 경기상황에 대한 기업과 소비자들의 전망은 아주 부정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12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95.6으로 두달째 100 이하로 떨어졌다. 이 지수는 기업인들에게 경기가 좋아질 것인지, 나빠질 것인지를 물어 산출하는 것으로, 100 이하면 경기가 나빠질 것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더 많았음을 뜻한다. BSI는 특히 제조업(88.8)에서 아주 낮게 나왔는데, 기업인들은 수출(99.5)과 채산성(99.1)이 나빠질 것이라고 대답했다. 다만 비제조업체는 지수가 113.1로 아직은 영향권에서 한발 비켜서 있다. 전경련 조사결과는 조사시점이 대통령 선거를 앞둔 때였다는 점, 12월이 건설업체들에게는 비수기여서 지수가 조금씩 낮게 나오는 특징이 있다는 점을 물론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제조업 업황전망 조사결과는 기업인들이 2003년 1분기에 경기가 더욱 급격히 나빠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1분기 업황전망 BSI는 91에 지나지 않는다. 2002년 4분기의 111에서 급추락한 것이다. 수출기업은 104에서 86으로, 내수업체들은 114에서 93으로 모두 큰 폭으로 떨어졌다. 수츨 늘어도 소득에 도움 안 돼
기업들의 전망이 이렇게 급격히 나빠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수출 기업들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1월 중 개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과, 해외경기의 회복이 예상보다 더디다는 점을 꼽는다. 당분간 수출이 더 늘어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경련 이기백 연구원은 “내수업체들의 경우 내수소비가 위축되고 있는 것을 많이 우려한다”고 말했다. 기업들로서는 판매가 줄더라도 고정비용 지출에는 큰 차이가 없으므로, 내수판매 감소는 채산성 악화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내수소비 위축은 그동안 급증한 가계대출이 다시 줄어들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계가 지갑을 닫은 진짜 원인은 그동안 소득이 그다지 늘지 못했다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출은 많이 늘고, 이로 인해 산업생산이 크게 늘었지만 그것이 국민의 주머니 사정을 넉넉하게 만들지는 못한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우리나라 기업의 수출단가는 전분기보다 2.7% 떨어졌다. 반면 수입단가는 3.4%나 올랐다. 수출가격은 떨어지고 수입물가가 올랐다는 것은 성장의 혜택이 상당부분 외국에 넘어갔음을 뜻한다. 한국은행은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5.8%지만,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은 3.8%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산업생산 증가율은 9~10월에도 전년동기대비 8% 안팎의 비교적 높은 수준을 지속했으나 반도체 산업을 제외하면 증가율이 2% 안팎”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생산이 늘었으나, 국제가격은 오르지 않아 산업생산 증가로 인한 혜택을 국민이 별로 보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그런 가운데 그동안 크게 는 가계대출이 가계와 경제에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상당수 가계가 손쉬운 대출에 의존해 소비를 늘려왔으나, 소득 증가가 이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한계에 이른 것이다. 실제로 가계는 기업들보다 경기상황을 더 나쁘게 보고 있고, 전망도 더 비관적이다. 통계청 조사결과를 보면, 지금과 견줘 6개월 뒤 경기나 생활형편, 소비지출 등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심리를 나타내는 소비자 기대지수가 11월에는 93.4로 지난 2001년 10월의 92.9 이후 최저치를 보였다. 소비지출 항목만 104로 100 이상을 유지할 뿐 경기전망은 81, 생활형편은 96으로 아주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가계와 기업의 우려대로 경기가 나빠질 경우 새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경기가 나빠지더라도 단기적 효과를 노리는 경기부양책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한다. 특히 과거처럼 가계가 대출을 통해 소비를 늘리도록 하는 것은 약보다는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어차피 소득이 취약한 계층은 대출이 늘어나는 만큼 이자부담이 커져 부채함정에 빠질 뿐이라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은 2002년 4분기 경제전망 자료에서 “국민경제의 실질적 소득흐름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는 국민총소득 증가세가 크게 둔화되는 한 ‘체감경기’의 하락을 동반한 내수 조정은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두꺼운 중산층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좀더 장기적인 접근으로, 외환위기 이후 취약한 중산층을 두껍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중산층과 저소득층은 소득 가운데 소비 비중이 높기 때문에 이들의 소득 안정이 내수소비의 안정적 증가를 위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고소득층의 경우 소득이 늘수록 외국의 값비싼 소비재를 수입해 쓰고, 해외여행을 즐기는 쪽으로 소비가 증가한다. 실제로 2002년 들어 해외여행이 급증하면서 여행수지 적자규모가 35억달러에 이르고, 10월까지 골프채를 갖고 해외에 나간 사람도 하루 평균 230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76%가 늘었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수석연구원은 “어느 나라든 중산층이 많아져야 내수주도형 성장을 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이 큰 타격을 입은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상태로는 국내시장의 지속적인 확대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빚을 쉽게 얻을 수 있게 도와주기보다는 실제 소득이 늘어나도록 정책을 펴라는 주문인 셈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사진/ 선적을 기다리는 한국 자동차들. 지금 수출 같은 실물 경제지표는 아주 좋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산업활동 지표가 이처럼 좋은 것은 무엇보다 수출이 잘 되기 때문이다. 해외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인데도, 수출은 정보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수출액은 2002년 10월에 전년동기대비 25%나 늘었으며, 11월에도 전년 동기대비 22.1% 늘어난 153억2천만달러였다. 이는 월간 기록으로 사상최고치라고 산업자원부는 덧붙였다. 산업생산이나 수출지표로만 보면, 경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상태다. 그러나 앞으로의 경기상황에 대한 기업과 소비자들의 전망은 아주 부정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12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95.6으로 두달째 100 이하로 떨어졌다. 이 지수는 기업인들에게 경기가 좋아질 것인지, 나빠질 것인지를 물어 산출하는 것으로, 100 이하면 경기가 나빠질 것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더 많았음을 뜻한다. BSI는 특히 제조업(88.8)에서 아주 낮게 나왔는데, 기업인들은 수출(99.5)과 채산성(99.1)이 나빠질 것이라고 대답했다. 다만 비제조업체는 지수가 113.1로 아직은 영향권에서 한발 비켜서 있다. 전경련 조사결과는 조사시점이 대통령 선거를 앞둔 때였다는 점, 12월이 건설업체들에게는 비수기여서 지수가 조금씩 낮게 나오는 특징이 있다는 점을 물론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제조업 업황전망 조사결과는 기업인들이 2003년 1분기에 경기가 더욱 급격히 나빠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1분기 업황전망 BSI는 91에 지나지 않는다. 2002년 4분기의 111에서 급추락한 것이다. 수출기업은 104에서 86으로, 내수업체들은 114에서 93으로 모두 큰 폭으로 떨어졌다. 수츨 늘어도 소득에 도움 안 돼

사진/ 동남아로 떠나는 골프 관광객들. 고소득층은 소득이 늘수록 해외여행을 즐기는 쪽으로 소비가 증가한다. (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