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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금융산업 먹구름 걷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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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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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력 내세운 2차 구조조정 걸림돌 많아… 미래 청사진 바탕한 개혁의 관점 절실

지난 9월25일 서울 여의도 하나증권 6층 노사정위원회 회의실에서는 노사정위 금융부문 구조조정특별위원회(위원장 김황조 연세대 교수) 회의가 열렸다. 1주일에 한번씩 열리는 모임인데 이날 회의에선 아주 드문 일이 벌어졌다. ‘은행 경영평가위원회’ 구성을 둘러싼 위원들의 의견이 엇갈려 유례없이 표결이 벌어진 것이다.

지난해 10월 노사정위에 금융특위가 설치된 뒤 숱하게 회의가 열렸지만 특정 사안을 두고 이처럼 표결을 벌인 것은 처음이었다. 이때까지는 모든 사안에 대해 노사정위의 기본 정신에 따라 만장일치로 타협을 이끌어내온 터였다.

노사정위 금융특위가 표결을 벌인 까닭


갈등의 발단은 김기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을 비롯한 노조쪽 위원들이 은행 경평위 구성 과정에 추천권을 주도록 요청하면서 비롯됐다. 그러나 정부(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 등)와 사용자(은행연합회,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관계자 등)쪽은 노조쪽의 추천권 부여 방안을 거부했다. 이에 노조쪽은 금융특위 위원장 명의로 금감위 및 은행 경평위원장에게 노조쪽이 추천한 위원 후보 명단을 전달해 수용을 요구하는 수준으로 하자고 한발 물러섰다. 정부쪽은 이런 수정안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급기야 표대결을 벌여 결정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고 말았다. 당시 재경부 당국자는 회의에 불참했으며 금감위 관계자는 회의 도중 자리를 떠나 사용자 및 노조 관계자들 중심으로 표결을 벌였다. 결국 양쪽이 추천한 인사들을 금감위 및 은행 경평위원장에게 특위 위원장 명의로 전달하기로 결정했다.

언뜻 단순해 보이는 노사정위의 이날 갈등은 2차 금융구조조정 작업이 간단치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은행 경평위는 공적자금을 수혈받았거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8%를 밑도는 조흥, 한빛, 외환 등 6개 은행들의 ‘성적표’를 매겨 각 은행의 진로를 결정하는 막중한 구실을 한다. 실제 평가작업은 10월중에 이뤄지며 각 은행들의 경영개선계획은 이미 지난 9월 말 금감위에 제출돼 있는 상태이다. 이들 은행에 대한 경평위의 평가 작업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사태 초기의 1차 구조조정에 이은 2차 개혁의 신호탄이 되는 셈이다. 김광수 금감위 은행팀장은 “1차 개혁이 망가진 금융시스템을 복원·유지하는 것이었다면 2차 개혁은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은행 경영평가 및 이에 따른 조처는 이미 예정돼 있던 일정이다. 지난 9월22일 재경부가 40조원에 이르는 금융구조조정용 실탄(공적자금)을 추가로 조성하겠다고 공식 발표함에 따라 ‘금융빅뱅’은 더욱 가시권에 들어왔다. 구조조정 대상은 금감위가 지목한 경영평가 대상 은행뿐만이 아니다. 이른바 ‘우량은행’들의 이합집산 분위기도 감지돼 은행권 전체가 또 한 차례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모습이다.

금융가에선 한미은행이 미국의 JP모건·칼라일 컨소시엄으로부터 5천억원을 유치하는 조건으로 다른 우량은행과 통합하겠다고 정부에 약속했으며 이를 지키기 위해 주택·하나은행과 통합논의를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정부에서는 주택은행도 한미은행이나 하나은행과 통합을 추진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관측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이에 앞서 하나·한미은행은 지난 9월19일 합작전산회사 설립사무국을 발족시키고 양쪽 은행장이 참석한 가운데 현판식을 가졌다. 이는 지난 6월 두 은행이 포괄적 업무제휴를 맺은 뒤 이뤄진 일로, 합병 또는 지주회사를 매개로 한 통합의 전단계 과정으로 풀이되고 있다.

정부가 갖고 있는 2차 은행구조조정의 방향은 크게 두 갈래다. 공적자금 투입은행은 오는 11월까지 금융지주회사로 묶고 우량은행의 합병을 유도해 적어도 2개의 초대형 선도은행을 출범시킨다는 복안이다. 보험사를 비롯한 2금융권에 대해선 매각, 합병, 업종전환 유도 등의 조처를 통해 은행권으로 부실이 이전되는 것을 막을 방침이다.

2단계 금융구조조정 추진 계획

 은행

 -한빛등 6개 은행 경영개선계획 평가-10월
 -경영개선계획 평가경과에 따른 조치 준비(공적자금 지원기준 마련,
  금융지주회사 설립방안검토)-10월
 -경영기선계획 평가결과에 따른 조치-10월말

 보험

 -대한생명에 대한 인력·조직등 구조조정 추진-12월말
 -서울보증에 대한 공적자금 지원 방안 확정-10월중

 금고

 -BIS비율 점검 및 적기시정 조치
  (6월말 실적에 따라 10월말까지 점검완료,12월말까지 조치 완료)
 -부실우려 금고 합병때 자금지원 방안 확정-10월말

 증권

 -적기시점 조치에 따른 구조조정 추진
  (영업용 순자본비율(150%)점검)-계속(반기별)

 투신

 -재무건전성 기준 도입 추진-올해중
 -내부통계 운영실태 점검-올해중


인원 감축·은행 경영평가 등 난관

정부의 이런 구조조정 방향은 일부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난관 또한 만만치 않다. 우선 인력·점포 축소를 포함한 구조조정 방안에 노조쪽이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차 때만큼은 아니지만 조흥, 한빛, 외환 등 경영평가 대상 6개 은행에서만 3천명가량의 인원을 줄이는 방안이 제시되어 있다. 전국금융산업노조의 하익준 정책부장은 이와 관련해, “지난번 구조조정에서 5만명이 은행을 떠나 13만명에 이르던 은행원이 지금은 8만명 수준으로 줄어든 상황”이라며 “더이상의 인력 감축은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 부장은 “정부 주도로 강제적인 인력 감축이 이뤄지면 지난 7월의 총파업 사태가 재연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노조쪽에서는 정부가 부정부패형 관치금융 등 은행을 망가뜨리는 진짜 요인들은 제거하지 않는 채, 구조조정의 가시적 성과만을 보여주기 위해 은행원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고 보고 있다.

부실 은행 처리의 잣대가 될 은행 경영평가 작업이 시일에 쫓겨 졸속으로 이뤄질 개연성이 높다는 지적도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는 대목이다. 경평위원 선정이 10월 들어서야 마무리돼 10월 말까지 한달도 채 안 되는 기간에 6개 은행의 경영개선계획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많다.

구조조정 작업의 실질적 힘은 공적자금 투입이다. 하지만 추가 공적자금 40조원을 조성하기 위해선 국회동의를 거쳐야 하는데 지금의 국회 상태로 보아 애초 일정(10월중)대로 진행될지도 미지수다. 야당이 장외투쟁을 끝내고 국회로 복귀하더라도 공적자금 추가 조성에 흔쾌히 동의해줄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나라당이 그동안의 공적자금 투입을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고 비난하며, 공적자금의 사용실태를 밝히기 위한 국정조사 및 청문회 개최를 줄기차게 요구해온 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공적자금 조성이 예정대로 이뤄지지 못하면 전반적인 구조조정 일정에도 막대한 차질이 빚어질 게 뻔하다.

정부의 2차 금융구조조정은 1차 구조조정의 실패, 또는 미흡함을 전제로 한다. 그렇지만 방식은 1차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2차 구조조정의 방향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BIS 비율만 높인다고 경쟁력 높아지나

(사진/금융구조조정이 순탄하지 않을 전망이다.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은행 합병일정을 밝히고 있다)
성공회대 유철규 교수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간 기업(의 영업)이 잘돼 (은행의)부실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선순환 고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업구조조정을 선결하라는 주문이다. 유 교수는 “앞으로 10년간 한국을 이끌어가야 할 전략산업이 무엇이고 이런 산업에 대출을 많이 해줄 수 있는 은행을 키우는 방식의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며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 방식은 BIS 비율만 높이면 된다는 1차 개혁 때와 같은 바탕에 서 있다”고 말했다.

이찬근 인천대 교수는 “정부가 추진중인 구조조정의 방향이 은행업 전체를 보는 게 아니라 개별 은행의 생사 문제에 역점을 두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은행을 통폐합하는 게 구조조정의 본질은 아니다”며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 은행업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청사진을 마련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적자금을 추가로 더 투입하게 된 마당에 은행의 인력·조직을 줄이고 합병을 유도하는 등 (대국민용) 명분을 마련해야 할 정부의 입장이 딱하긴 하나 명분 때문에 또다시 첫 단추를 잘못 끼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이런 비판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2차 금융구조조정은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 돼버렸다. 정부의 기대대로 구조조정의 목표점을 꿰뚫을 것인지, 또 한번 과녁을 빗나가는 실패작으로 추락할 것인지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답답하고 초조하다.

추가공적자금 소요 추정

(단위:조원)

       구분

5월24일 발표

9월22일 발표

기존요인

 BIS 비율 보완 출자

1.8

6.1

 서울보증보험 출자

5.3

8.7

 금고,신협 구조조정 등

3.9

6.5

 부실 종금사 정리,한투·대투출자,제일은행 풋백옵션 등

19.3

20.4

추가요인

 수협,농협 출자

 

1.8

 기업 부실로 인한 은행 추가 충당금 적립 지원

 

2.0

 한아름 종금 손실보정,산은·기은이 투신에 출자한 지분 매입 등

 

4.5

 예금보험공사 자체조달

 

-10.0

          계

30.0

40.0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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