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브레너 교수의 냉철한 전망…“미 불황이 국제적 불황의 악순환 낳을 것”
미국 주식시장의 지표들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여러 경제지표들도 불황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보다는 연착륙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미국 노동부는 지난 3분기의 비농업부문 노동생산성이 5.1%(연율기준) 증가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상무부는 10월 공장수주가 1.5% 늘어나 전달의 2.4% 감소에서 큰 폭으로 반전됐다고 밝혔다. 미 구매관리연구소(ISM)의 비제조업지수도 11월에 57.4로 나와 전달보다 4.3 높아졌다. 조심스럽겠지만 이제 기대를 가져도 좋을까
70년대 이후 장기침체는 과잉설비 탓
그러나 로버트 브레너 교수(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라면 이런 기대를 하는 사람들을 처량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최근 국내에 번역출판된 그의 책 <붐 앤 버블>은 세계경제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는 지난 98년 <뉴 레프트 리뷰>에 ‘불균등발전과 장기침체’(우리말 번역본은 ‘혼돈의 기원’)라는 논문을 발표해 학계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당사자다. 그는 세계경제의 위기가 노동자들의 투쟁에 따른 자본의 이윤압박 때문이라는 시각을 부정했다. 오히려 자본 간 무한경쟁에 따른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이 세계경제의 위기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지 아래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세계경제의 큰 흐름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책이 <붐 앤 버블- 호황 그 이후, 세계경제의 그 그늘과 미래>다.
<붐 앤 버블>이라는 제목은 이 책이 지난 99년 말 미국 증시에서의 기술주 붐의 원인을 분석한 것임을 내비친다. 그러나 분석을 위해 브레너 교수는 세계경제가 장기침체로 접어들기 시작한 70년대로 거슬러올라간다. 그는 70년대 이후 세계경제의 장기침체를 낳은 원인으로 제조업 부문의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을 꼽는다. 그것이 세계경제에 독소로 작용해 이윤율을 계속 하락시켜 왔으며,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물론 브레너는 장기침체 아래 벌어진 성장국면을 놓치지 않는다. 그는 85년 달러를 약세로 전환시킨 플라자합의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당시의 급격한 달러 약세 전환 이후 미국 제조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80년대 말부터 이윤율이 향상됐다. 그것이 90년대 미국경제의 회복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세계경제의 일시적 회복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반면, 엔 강세에 놓인 일본은 제조업의 이윤율이 하락하는 가운데 극단적 통화공급 확대정책을 씀으로써 거품을 키웠고, 이후 90년대의 장기불황에 빠졌다고 설명한다.
브레너는 90년대 미국경제의 회복, 이를 바탕으로 한 아시아경제의 회복 과정도 과잉설비를 또다시 확대했다고 지적한다.특히 95년 일본경제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엔을 약세로 전환한 역플라자합의가 이뤄지자, 달러에 연동돼 있던 아시아 통화들도 강세로 전환된다. 이 때문에 아시아 나라들은 치열한 가격경쟁에 나섰지만, 제품가격 하락으로 이윤율 급락과 함께 결국 위기를 맞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90년대 후반 미국경제의 호황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브레너는 90년대 말 미국경제의 호황 속에서도 미국 제조업체의 이윤율이 96년부터 이미 하락했다고 지적한다. 전 세계적 과잉생산에 따른 가격압박에 또다시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호황이 이어진 것은 아시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저금리와 통화팽창을 폈고, 그것이 자산효과를 통해 소비와 투자 확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이런 회복은 (이윤율이 상승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가거품에 의존한 것이었기 때문에) 조만간 꺼질 운명”이었다. 그가 98년 예고한 대로, 미국경제는 2000년 들어 거품 붕괴와 함께 또 한번의 과잉설비를 남긴 채 급격한 침체에 빠져들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전망은
“동아시아가 세계 위기의 진원지”
그의 견해는 매우 확고하다. “세계적인 과잉설비와 과잉생산 상황에서 미국 제조업은 고평가된 환율 때문에 경쟁력 확대, 수출과 이윤율 증가에 기반한 성장경로로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막혀 있다.” 이어지는 그의 예언은 우리를 더욱 움츠리게 한다. “미국의 불황이 국제적 불황의 악순환을 낳을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특히 동아시아가 다시 세계경제 위기의 진원지가 될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국에서 지난 5월 출판된 이 책에 필리핀대학 월든 벨로 교수(사회학)는 <한겨레>(12월2일치)에 실은 기고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폴 크루그먼과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명사 반열에 오른 경제학자인지는 모르지만, 지구화한 자본주의의 요즘 위기를 가장 폭넓고 정확히 해명하는 학자는 이들이 아니라 로버트 브레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사진/ <붐 앤 버블>은 세계경제에 드리운 그림자를 보여준다.
<붐 앤 버블>이라는 제목은 이 책이 지난 99년 말 미국 증시에서의 기술주 붐의 원인을 분석한 것임을 내비친다. 그러나 분석을 위해 브레너 교수는 세계경제가 장기침체로 접어들기 시작한 70년대로 거슬러올라간다. 그는 70년대 이후 세계경제의 장기침체를 낳은 원인으로 제조업 부문의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을 꼽는다. 그것이 세계경제에 독소로 작용해 이윤율을 계속 하락시켜 왔으며,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사진/ 주가폭락에 난감한 표정을 짓는 미 주식 중개인들. (AP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