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화되는 개인 워크아웃 제도… 자격요건 까다로워 실제 혜택받기는 쉽지 않아
“직장생활을 한 지 1년쯤 되는 사회초년생입니다. 제 이름으로 발급받은 카드가 12장이고, 카드로 대출받은 금액은 모두 2100만원 정도입니다. 총부채는 7천만원 조금 넘습니다. 제 나이에 웬 빚이 이렇게 많나고요 저희 어머님이 사채 돈을 빌리셨는데요, 이자 갚기가 너무 힘드셨나봐요. 그래서 제 이름과 언니 이름으로 카드를 많이 발급받으셨어요. 처음에는 일명 ‘카드깡’으로 현금을 융통해서 쓰시다가 계속 돌려막기를 하셨죠. 카드는 대부분 대환으로 돌려서 이자와 원금을 조금씩 갚아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카드에 들어가는 한달 돈이 230만원이나 됩니다. 저는 한달 월급으로 150만원 정도 받아요. 월급이 다 들어가도 70만~80만원 정도가 부족해서 저녁에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카드로만 끝나면 별 문제가 없는데, 상호저축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이 너무 많아서 혼자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한달 이자만 거의 100만원 정도가 들어가 제 능력으로는 너무 힘이 듭니다.”(ID 회사원)
빚에 짓눌린 사람들
“작년에 언니가 가져온 서류에 아무것도 모른 채 이름 쓰고 도장 찍었다가 언니가 카드빚 1600만원과 사채 빚 1600만원을 진 채 도주해버려서… 신용불량으로 등록한다고 하기에 겁이 나서 이것저것 있는 카드를 모아 현금서비스로 일단 급한 사채이자와 00카드사의 이자만 지불하고 원금은 갚지도 못한 채 빚에 쪼들리고 있습니다. 병원에 입사해 한달 월급은 170만원이고, 병원에서는 월급 압류가 들어가기 전에 이자라도 일단 갚으라고 해서 퇴직금까지 미리 받아 조금 갚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한계에 온 것 같아 상담 신청을 합니다.”(ID 이윤정)
“경제위기 때 실직하고 이것저것 하다 결국 집 날리고 이혼하고 결국은 빚에 쪼들리는 신용불량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파산신청을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잘 안 받아준다며 하지 말라고 해서 그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디 일을 하면 빚 독촉에 결국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선배의 도움으로 작년부터 어느 개인병원 관리인으로 일을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금융사로부터 월급압류니 뭐니 하고 매일 전화가 오니 이마저도 그만둬야 할 형편입니다. 전 지금 친구집에서 출퇴근하고 있습니다. 월급은 130만원 정도 받는데 이 중에서 아이들 키우고 있는 아내에게 매달 70만원을 송금합니다. 그리고 어머니 약값으로 20만원가량 나갑니다.나머지는 제 생활비와 신협 대출 이자로 나갑니다. 빚은 5천만원 정도 됩니다. 워크아웃을 받게 되면 나중에 얼마나 입금해야 되는지….”(ID 이석준)
지난 10월 문을 연 신용회복지원위원회 인터넷 상담 코너에 올라온 사연들은 절절하다. 사연마다 평생을 벌어 갚아도 다 갚을 길이 없는, 빚의 함정에 빠져버린 사람들의 절망감이 짙게 배어 있다. 경제활동인구 2500만여명 중 10%에 육박하는 245만명이 신용불량자이고, 지금도 카드를 이용해 그달그달 이자를 돌려막기 하는 사람들이 신용불량자 대열에 계속 합류하는 상황에서, 새로 도입된 신용회복지원제도(개인 워크아웃)가 신용불량자들에게 새 삶의 희망을 불어넣어줄 수 있을까?
실직자는 취업에 힘써야
신용회복지원제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뜨겁다. 지난 10월 한달 동안 위원회 홈페이지를 방문한 사람은 5만명을 넘었다. 홈페이지에 있는 워크아웃 신청 가능 여부 자가진단 프로그램을 이용해 신청자격 여부를 확인한 사람도 3339명이었다. 한달 동안 상담을 신청한 채무자는 모두 5398명이다. 위원회는 이 중 절반가량인 2653명이 개인 워크아웃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11월 들어 우선 1단계로 5개 이상 금융기관에 2천만원 이하의 빚을 진 채무자로 신용불량정보가 등록된 지 1년 이상 경과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개인 워크아웃 신청을 받았다. 그러나 신청 자격요건이 까다로운 1단계 신청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위원회는 이에 따라 11월18일부터 신청대상을 ‘2단계’로 확대했다. 2단계 신청 대상자는 3개 이상 금융기관에 5천만원 이하의 빚을 진 신용불량자다. 이제 신용불량자라면 등록된 지 얼마가 됐든 모두 신청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를 통해 실제 지원을 받기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신용회복 지원제도는 지금은 과도한 부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경제적으로 재기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신용회복을 도와주자는 게 취지다. 현재도 금융기관들은 채무상환 유예 등을 통해 부분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금융기관이 빚을 회수해버리면 개별적 지원이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금융기관들이 협의해 여러 금융기관에 빚을 진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따라서 신청자격부터가 매우 까다롭다.
우선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정한 최저생계비 이상의 수입이 현재 있거나 곧 그만한 소득이 있을 것으로 확인돼야 한다. 안정적인 소득이 있어야 최저생계비를 제한 나머지를 활용해 빚을 갚아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직자라면 취업에 힘을 쏟아야 한다.
“채무자들 사이에 도덕적 해이가”
또 1개 금융기관 채무액이 총채무의 70%를 넘거나, 워크아웃 협약에 참가하지 않는 사채업자 등에 대한 빚이 총채무의 20%를 넘어서도 안 된다. 개인 사업자로 사업성 대출이 빚의 30%를 넘는 경우, 내지 않은 세금이 빚의 30%를 넘어도 워크아웃 신청자격이 없다. 이 밖에도 신용불량 정보가 등록되기 전 5개월 동안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 돈이 총채무액의 30%를 넘는 경우(기존 빚을 갚은 경우는 제외)도 신청할 수 없다. 빚을 갚기 어렵다고 해서 누구나 워크아웃을 신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자신이 워크아웃 신청자격이 되는지를 확인하려면 위원회 홈페이지(www.pcrs.or.kr)에 들어가 조건을 따져보면 된다.
신청자격이 있는 사람은 우선 빚을 지고 있는 채권금융기관들을 일일이 방문해 상담하고 상담목록표, 부채증명서, 1차 적격확인서를 발급받아 신용회복지원위원회 사무국에 채무자신고서를 접수한다. 그러면 위원회에서 1차 심사를 해 금융기관들에 넘기고, 금융기관들이 동의하면 워크아웃을 적용받는다. 워크아웃의 내용은 금융기관의 모든 채무에 대해 상환기간 연장, 분할상환, 이자율 조정, 일정기간 변제유예, 채무 감면 등의 방법으로 이뤄진다. 채무상환 유예는 1년, 분할상환 기간은 최장 5년이다.
위원회 관계자는 “원리금 감면폭이 지나치게 과장되게 알려져 있다. 채무자들 사이에 도덕적 해이가 조장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워크아웃을 받으면 원리금이 많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고 고의로 연체를 하는 사례들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리금의 감면액은 총채무액의 3분의 1을 넘지 못하도록 돼 있다. 본인의 소득, 가족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를 모두 따지기 때문에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원리금 감면이 적용될 수 있다고 위원회쪽은 설명했다. 원리금 감면을 노리고 고의로 빚을 갚지 않았다가 오히려 신용불량자로 등록되고 고율의 연체이자만 물게 될 수 있다는 얘기다.
11월 들어 22일까지 개인 워크아웃을 실제 신청한 사람은 모두 23명이다. 이 중 17명이 신청 적격자로 판정돼 현재 금융기관들에 서류가 넘어가 있다. 따라서 아직 워크아웃이 구체적으로 적용된 사례는 없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소득이 있고, 빚을 갚을 의지가 있는 채무자는 최대한 지원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기관들도 고민은 많다. 지원대상을 엄격하게 선별하지 않을 경우 “빚을 갚지 않고 기다리면 빚을 탕감해줄 것이라는 생각이 퍼질 수 있다”는 우려다. 금융기관들은 또 워크아웃 신청자들이 제출한 서류를 보면 부채상환 능력을 제대로 적은 것인지, 부채상환 계획이 현실적인지 판단할 근거가 매우 부족하다고 걱정했다. 금융기관들이 도덕적 해이 방지에 치중할 경우 워크아웃을 적용받는 사람은 기대보다 적을 수도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신용불량자들이 개인 워크아웃 제도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걸어서는 곤란하다고 충고한다. 금융기관들이 채무자의 총채무액에 불신을 가지는 경우가 우선 문제다. 금융기관들의 채무 정보는 서로 공유되지만, 사채 같은 채무는 당사자가 신고하지 않으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현실적으로 취업이 어려운 신용불량자들로서는 안정적인 소득이 없을 경우 워크아웃 제도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취업 알선 등과 병행하지 않으면 개인 워크아웃 제도가 큰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워크아웃 신청대상 계속 확대할 예정
고리 사채를 제한하는 대부업법이 시행되고, 개인 워크아웃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도 불법 카드깡 업체들의 활동은 그다지 줄지 않고 있다. 가입비 2만~5만원을 내면, 카드연체 푸는 법, 하루에 2천만원 대출비법을 알려준다는 인터넷 업체들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업체들을 이용하면 당장 현금은 확보할 수 있지만 빚이 늘어나 빚의 함정에서 빠져나오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전문가들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기 전에 빚이 늘어나는 것을 하루빨리 중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그리고 빚을 진 금융기관을 찾아가 협상을 하거나, 여러 금융기관에 빚을 졌다면 신용회복지원위원회의 도움을 얻는 것이 현재로서는 신용불량의 나락에서 좀더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라는 설명이다.
신용회복지원위원회는 2단계 워크아웃 신청 현황을 봐가며, 2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1억원 이하의 빚을 진 사람(3단계), 2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3억원 이하의 빚을 진 사람(4단계)으로 워크아웃 신청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다. 위원회는 3단계 신청 때 워크아웃 신청자가 가장 많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10월 중 상담을 한 사람 중 워크아웃을 신청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 사람은 모두 2745명이었다. 이 가운데 1단계 신청 대상자는 250명, 2단계 831명, 3단계 1074명, 4단계 498명이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사진/ 개인 워크아웃은 신청자격부터 매우 까다롭다. 자신이 신청자격이 있는지 확인하려면 신용회복지원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조건을 따져보면 된다.

사진/ 빚을 견디다 못해 개인 워크아웃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경제위기 때 실직하고 이것저것 하다 결국 집 날리고 이혼하고 결국은 빚에 쪼들리는 신용불량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파산신청을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잘 안 받아준다며 하지 말라고 해서 그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디 일을 하면 빚 독촉에 결국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선배의 도움으로 작년부터 어느 개인병원 관리인으로 일을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금융사로부터 월급압류니 뭐니 하고 매일 전화가 오니 이마저도 그만둬야 할 형편입니다. 전 지금 친구집에서 출퇴근하고 있습니다. 월급은 130만원 정도 받는데 이 중에서 아이들 키우고 있는 아내에게 매달 70만원을 송금합니다. 그리고 어머니 약값으로 20만원가량 나갑니다.나머지는 제 생활비와 신협 대출 이자로 나갑니다. 빚은 5천만원 정도 됩니다. 워크아웃을 받게 되면 나중에 얼마나 입금해야 되는지….”(ID 이석준)

사진/ 신용회복지원위원회의 상담 모습.

사진/ 신용회복지원위원회의 전화 상담원들. 앞으로 워크아웃 신청 대상이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